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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빈 Oct 04. 2018

비슷한 사람 VS 반대인 사람, 누구와 만날까?

20대 초반과 비교해보면 내 연애 스타일은 많이 변했다. 선택의 폭이 좁아지기도 했고(따지는 게 많아졌다), 연애할 때 내게 ‘중요한 것’과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을 제대로 구분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내 전 남친 컬렉션은 <프로듀스 101> 뺨칠 정도로 다양해졌다. 문득 컬렉션을 떠올리다, 이 다양한 분들을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나랑 비슷한 사람’과 ‘나와 반대인 사람’ 부류로. 두 부류의 장단점도 각각 달랐다.



나와 비슷한 사람,

내 단점이 너에게서 보여

스무 살 때는 나와 비슷한 사람(취향이 맞는 사람)만 고집했다. 소개팅에 나가서 내가 물었던 질문들을 되짚어 보자면, ‘좋아하는 가수, 책, 영화가 뭐냐’였다. 대답으로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감명 깊었습니다, 영화 <7광구>⋯’ 이런 말을 들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끝이었다. 아무리 잘생겼어도 안녕. 


그땐 말이 아닌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서울에 혼자 올라와 가족과 오랜 친구들이 곁에 없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겪는 진짜 혼자였다. 누군가의 얼굴을 보며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오늘 내 마음은 이렇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새로 만난 사람들과는 서로 눈치를 보며 형식적인 말을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 나랑 비슷해서 단번에 내 얘길 듣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었다.

 

운명인가 싶을 정도로 나와 비슷한 사람을 몇 명 만났다. 성격, 취향, 전공은 물론, 정치 성향이 같거나 장래희망이 같은 사람, 이름이 같은 사람, 생일이 같은 사람까지 만나봤다. 공통분모가 많으니 술 없이도 대화가 가능했다. (술 없이 내 얘기 하기 어려웠던 때였는데.) 나랑 안 맞는 친구 100명을 만나는 것보다, 나랑 잘 맞는 남친 1명을 만나는 게 내 일상을 훨씬 가치 있게 만들었다. 정서적으로 안정이 됐고, 풍족해졌다. 우린 매일같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눈에서 하트가 나오는 시기가 지나면, 이상하게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는 전형적인 이별 단계를 밟았다. 처음에는 비슷한 게 최고 장점으로 보였는데, 나중에는 그게 참 별로였다. 내가 싫어하는 내 단점이 상대에게서 보였다. 가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싫었다. 


나는 예민하고 감정적이다. 예민 보스 둘이 만나자, 하루하루가 불안한 대치상태였다. 둘 다 사소한 걸 그냥 못 넘어가 자주 싸웠고, 서로 감정이 앞서 흐느끼며 각자 입장만 얘기하기 바빴다. 싸움이 나면 상황에 따라 받아주는 쪽이 있어야 하는데, 그 치고 빠지는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다. 불과 불의 만남이랄까. 처음 시작할 때 불덩이 두 개라 누구보다 뜨거웠었는데⋯ 뜨겁게 사랑하고 개 뜨겁게 이별해버렸다. 



나와 반대인 사람,
너의 머릿속이 이해가 안 돼

비슷한 사람을 여러 번 만난 후, 뭔가 나와 다른 매력이 있는 사람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특히 나의 단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 그런 사람을 곁에 두고 가까이하면, 내 단점도 순화될 것 같았다. 


처음 봤을 땐 되게 멋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좋아졌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예민함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는 싫어하는 사람이 딱히 없고, ‘그러려니~’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인간관계에서 손해 본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할 줄 모르는) 사람. 처음에는 멍청하고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가 나보다 현명한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와 사귀고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다른 점이 많았다. 좋아하는 음식, 자라온 환경, 취향이 달랐다. 그는 책을 싫어했고, 맞춤법도 종종 틀렸다. 난 주변 사람들과 책이나 영화, 음악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와는 그런 걸 할 수 없었다. 한번은 함께 영화를 보고 나와,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얘기하며 주제에 대해 묻자, 그는 그런 건 관심 없단 투로 ‘응? CG랑 렌더링이 죽이더라’ 하고 말하는 식이었다. 서로 보고 싶은 영화가 달라 우리는 영화관도 거의 가지 않았다. 정치 얘기를 시작하면 큰 싸움으로 번지기 직전 ‘아, 그만하자 그냥’ 하고 마무리 짓곤 했다. 


연애 스타일도 달랐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고 싶은데, 그는 그 말을 아껴도 너무 아꼈다. 장난스레 결혼 얘기를 꺼내면, 그는 진지하게 우리의 나이와 현재 아파트 시세에 대해 말했다. 위로받고 싶어 힘들었던 일을 얘기하면, 그 정도 일에 내가 왜 힘들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가 다르다는 사실은 싸울 때 더 크게 느껴졌다. 싸움이 된 사건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랐다. 모든 싸움의 이유가 ‘달라서’였다. 누가 맞고 틀린 게 없는, 해결할 수 없는 싸움. 


우리가 다른 게 답답하고 원망스러웠다. 싸우기 싫어 서로에게 맞추려 노력했지만, 자꾸 원점으로 돌아왔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이해받으려 하고 상대를 이해하려 애쓸수록 더 불행해진다는 걸 알았다.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더 끝이 보였다. 우린 몇 번 이별을 반복하다 헤어져버렸다. 



비슷한 사람, 반대인 사람과 전부 이별해버렸지만 그다지 절망하진 않았다. 사실 나와 완전히 같은 사람도 없고, 완전한 극단에 서 있는 사람도 없다.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의 비율 차이다. 게다가 모든 연애는 케바케. 이렇게 재고 따져도 사랑이 시작되고 끝나는 건 어떤 한 장면이나 타이밍 때문인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여러 모양의 연애를 거치면서 경험치를 쌓을 수 있다는 것. ‘전남친의 이런 점이 견디기 힘들었으니, 이번엔 안 그런 사람으로 만날 거야’ 하고 마음 먹게 된다. 점차 내 연애에 치명적이었던 요소들을 찾아 피해가는 것이다. 이게 바로 전 남친 컬렉션의 가치다. 다양한 레퍼런스가 생기면서 내가 원하는 연애를 정확히 알게 되고, 그걸 누군가와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 그렇다. 처음부터 답이 없는 주제였다. 비슷한 사람과 반대인 사람 누구를 만나든, 연애하며 ‘나’를 찾아나가는 게 우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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