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빈 Mar 07. 2022

갓생 강박증

너의 결과보다 노력을 질투해

세상에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남는 시간에 부업을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자기 계발에 열중이다.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취미는 하나쯤 가지고 있으며, 트렌드는 또 어찌나 잘 파악하는지. 심지어 이 모든 걸 주어진 시간에 해내기 위해 꾸준한 운동으로 기초 체력을 다진다. 무엇보다 이러한 본인의 노력을 SNS로 기가 막히게 드러낸다. 세상 모든 사람이 ‘갓생’을 지향하고, ‘갓생러’ 임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이다.

 

퇴사 후 완전한 백수가 되어버린 나는 오늘도 느지막이 일어나 이불속에서 SNS로 남들의 갓생을 구경했다. 어쩜 다들 이렇게 에너지가 넘칠까? 자괴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뒤처지는 것만 같아 일주일에 두어 번 가는 헬스장 사진을 찍어 올리고, 무작정 노트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써보지만 늘 그러듯 딴 곳으로 새고 말았다. 밥이나 먹어야지.


언제부터일까. 내가 소유한 것보다 지금 나의 과정을 증명하는 것이 트렌드가 된 것 같다. 타인의 과정, 노력으로부터 오는 박탈감은 더 크게 느껴진다. 누군가 근사한 곳에서 밥을 먹거나 비싼 차를 자랑하면 ‘내 세계와는 다르다’며 선을 긋고 외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노력은 외면하기 어렵다.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지는데 나는 왜 시간을 형편없이 날려 먹을까?’ 마음에 돌이 켜켜이 쌓이고 나를 향한 비난이 시작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술에 취하면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나를 발견한다.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쪽팔려서 소리를 질렀다. 나의 불안을 또 가열차게 드러냈구나 싶어서.


물론 누군가의 멋진 삶은 자극제가 된다. 서로 자극받아 모두가 열심히 사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과정이 공정하고, 노력에 맞는 타당한 결과로 무조건 이어진다면. 그러나 모두 ‘말하는 대로’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이룰 수 있는 세상이 아니란 걸 이제는 안다. 오히려, 타인의 속력을 매시간 확인할 수 있는 시대에 산다는 건 나의 속력을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시대에 산다는 것이 아닐까. 


빈 시간이 펑펑 주어지는 요즘, 나는 나의 속력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설정한 나의 적정 속력은 과연 나로부터 정해진 것일까?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자기 계발, 그럴듯해 보이기 위한 취미는 진정 성취로 이어질까? 그 많은 투 두 리스트는 정말 자신을 위해서 작성한 것인가? 갓생을 위한 갓생이라면, 나는 언제 내 삶에 만족할 수 있는 걸까?  


빈 시간이 펑펑 주어지는 요즘, 나는 나의 행복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남들만큼 노력하지 못해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해 불행한 나를 어디부터 손봐야 하는 걸까? 이 좌절을 고치려면 내 인생의 어느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걸까? 예전에는 ‘하루하루만 보고 흘러가는 대로 산다’는 말이 대책 없다 느꼈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너무 먼 곳을 향해 내가 낼 수 없는 속력을 질투하며 달리면 고꾸라지니까. 꼬일 대로 꼬인 인생을 분해해 뜯어고칠 능력이 없는 나는 당장 주어진 내 하루만 생각해야겠다. 할 수 있는 만큼만, 나만 아는 코딱지만 한 성취로도 하루를 괜찮다고 인정해주는 훈련을 먼저 해야 할 때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난한 날들이 이어지겠지만, 나의 생이 갓생보다 우선임을 잊지 않으면서. 잠깐, 인스타그램 비활성화 버튼이 어딨더라?

매거진의 이전글 일 중독자의 퇴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