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에 쓰기 위한 유럽 일주 말고, 진짜 하고 싶은 여행의 모습
취리히에서 루체른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첫 유럽 여행이 떠올랐다. 스물세 살의 나는 혼자 겁 없이 한 달 동안 유럽을 돌아다녔다. 그때 참 좋았던 것 같긴 한데, 시간이 많이 지나버려 뭐가 좋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루체른 역에 내리자마자, 그때 내 모습이 그려졌다. 한국에서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던 기분 좋음도 그곳에 발을 딛자마자 떠올랐다.
카펠교와 알프스를 보며 루체른은 이런 곳이었지, 하고 혼잣말을 했다. 스물세 살의 여행은 경쟁적으로 다녀온 여행이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친구들의 여행 사진이 부러웠고, 자소서에 유럽 갔다 온 내용 정도는 써야 할 것 같았다.
남들 다 가는 여행, 나도 꼭 가야 했다. 그렇게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떠났다. 이제 5년이 흘렀고, 쫓기듯 여행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필요도, 많은 나라에 갈 필요도 없었다. 마음을 내려놓고 며칠 머물고 싶은 곳만 돌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유레일 2개국 셀렉트 패스를 이용해 이탈리아와 스위스에 다녀왔다.
취리히보다 언제나 루체른이 더 좋았다. 원래 도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평소에도 서울에서 아등바등 생활하다 보니, 아무리 다른 나라더라도 바쁜 도시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취리히 공항에서 한 톨의 미련도 없이 바로 루체른으로 향했다.
기차는 밤늦게 루체른에 도착했다. 그리고 오랜 비행에 지쳐 숙소에서 정신없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생일 축하 메시지에 깼다. ‘아, 나 생일이었지.’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루체른에서 생일을 맞게 됐다. 일어나 숙소 창문을 열자 루체른의 레몬 빛 햇살이 들어왔다.
4월의 루체른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맑은 봄이었다. 숙소를 나와 완벽한 날씨를 즐기며 걷다 보니 구시가 광장이 나왔다. 프레스코 화법으로 채색된 건물 사이를 지나, 스위스 최초의 바로크 양식 교회인 예수교회를 구경했다. 루체른은 거리 구석구석 모두 로맨틱하지만, 그래도 자연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로이스강과 그 위로 자리한 알프스를 마주한 순간, 이곳이 현실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림체가 사랑스러운 누군가의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해가 질 무렵, 강변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맥주 한 모금을 넘기며 어깨에 고양이를 얹고 나온 귀여운 중년 여성을 봤다. 다시 한 모금 넘기며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부부를 봤다. 그렇게 강변에서 책을 읽는 여자를, 혼자 말없이 담배를 피우는 남자를 구경했다. 낯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사는 모습을 생각하게 됐다.
비현실적인 풍경 속에서, 스물여덟 생일을 맞은 나의 현실을 한참 생각하다 자리를 떴다. 다음 날, 나는 리기산으로 향했다. 리기산은 ‘산들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산이다. 리기산에 가기 위해서는 루체른 선착장에서 유람선으로 1시간 이동 후, 등산철도를 30분 타야 한다. 귀여운 열차를 타고 얼마나 달렸을까, 설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난 봄에서 왔는데, 리기산은 온통 하얀 곳이었다. 눈이 쌓여 있는데 날씨는 따뜻한 비현실적인 겨울 동화 속. 사람을 제외한 모든 풍경이 하얗고, 사진을 찍으니 반사판을 댄 것처럼 얼굴이 뽀얗게 나왔다.
동화 속에서 빠져나와 스위스 루가노로 향했다. 루가노는 이탈리아와 근접한 도시로, 한국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생소한 곳이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유명 관광지보다, 루가노처럼 나만 아는, 나만 갔다 온 여행지에 더 애착이 간다. 가끔 그런 곳이 유명해지면 속으로 몰래 슬퍼하기도 하지만. 루체른에서 루가노로 갈 때는 ‘고타드 파노라마 익스프레스’ 노선을 이용했다.
고타드 파노라마 익스프레스는 배와 기차가 결합된 노선으로, 외륜 증기선을 타고 루체른에서 플뤼엘렌까지 2시간 45분, 플뤼엘렌에서 루가노까지 기차로 2시간을 이동하는 노선이다. 이동 시간이 다소 길지만, 배 위에서 보는 풍경이 아름다워 시간이 빨리 간다.
중간중간 들르는 선착장들은 레고로 만든 것처럼 아기자기하고, 이동하는 내내 호수 위에는 알프스가 걸려 있다. 선상에서 점심을 먹고 와인을 마시면 고급 크루즈 여행이 부럽지 않다. 루가노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동네를 설렁설렁 돌아봤다. 이곳이 스위스인지 이탈리아인지 헷갈렸다. 사실 이탈리아에 더 가까웠다. 이탈리아어를 사용하고, 식당도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천천히 걷다 보니 도시를 다 봐 버렸다.
호수를 한 바퀴 빙 도니 끝이었다. ‘이게 다야? 정말?’ 처음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거리에 사람도 별로 없고 조용해서, 조금 심심하고 외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해가 진 후 맥주 한 캔 들고 호숫가에 멍하니 앉아 있으니, 점차 이 심심함에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잔잔한 물결을 한 시간 넘게 바라보며 나도 호수의 일부가 되는 것 같았다. 마음이 조용히 잦아들었고, 그날 밤 정말 편하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도시를 다시 한 번 돌아본 후 호수와 산 살바토레 산이 보이는 치아니 공원으로 갔다. 맑은 하늘, 가만히 솟은 산, 호숫가를 따라 핀 알록달록한 꽃, 조깅하는 커플, 자전거 타는 할머니, 헤엄치는 강아지. 세상에 있는 모든 평화로운 것들을 모아 이곳에 풀어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인생을 두 배 더 많이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한국과 절대적인 시간은 같겠지만, 이곳의 시간은 두 배 천천히 흘러가니까. 나는 낯선 평화로움에 조금 안절부절못하다, 곧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마음껏 딴짓을 했다. 그리고 앞으로 심심함을 많이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루가노 주변에는 반나절 동안 돌아보기 좋은 작은 마을들이 많다. 몬타뇰라는 그중 헤르만 헤세가 1962년 숨을 거두기 전까지 43년 동안 살았던 곳으로, 헤르만 헤세 박물관과 그의 무덤이 있다. 루가노 기차역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헤세 박물관이 나온다. 귀여운 가정집들 사이, 헤세의 사진이 붙은 건물이 바로 박물관이다.
박물관 건물은 그가 실제로 살았던 집 중 하나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세의 책 『데미안』의 이 구절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대학생 때 데미안을 읽고 한동안 빠져 지냈다. 데미안은 누구에게나 성장통 같은 고전이니까. 헤세의 팬이 아님에도, 그가 살았던 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가 생활하며 글을 썼던 곳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다. 예상대로 박물관은 그리 크지 않았다. 방문객도 많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표를 구매할 수 있는 데스크 주변으로 책장들이 있고, 책장에는 헤세와 관련된 서적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책을 읽고 있던 박물관 직원 아저씨는 나를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영어로 된 팸플릿과 함께 표를 건넸다.
박물관에는 헤세가 그린 그림과 그의 사진, 그가 사용했던 타자기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볼거리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소박한 박물관을 돌아본 후 봄바람을 맞으며 동네 골목길을 걷는 시간이 좋았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면 그의 작품들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대학생 때의 유럽 여행과 지금의 유럽 여행이 다르게 느껴지듯, 분명 그의 책도 다르게 읽힐 테니까.
박물관에서 나와 골목길로 10분쯤 걸어 내려가자, 커다란 사이프러스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성 아본디오 교회가 나왔다. 하지만 현재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대신 교회 맞은편, 헤세가 묻혀 있는 묘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묘지는 생각보다 넓었고, 많은 이들이 묻혀 있었다. 헤세의 무덤을 찾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는데, 웅장한 비석들을 보며 헤세의 비석도 당연히 크고 화려할 거라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
작고 소박하며, 오래돼 보이는 비석이 바로 헤세의 것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비석이 헤세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몬타뇰라의 작은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후, 나는 다시 루가노 시티로 향했다. 그리고 스위스에 얹어 놓은 마음을 캐리어에 넣었다. 다음날 이탈리아에서 다시 풀어 놓을 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