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 앨범을 발매한 지 5일이 지났습니다. 위의 사진은 녹음했을 당시의 녹음실과 그랜드 피아노이고요. 3시간 30분 동안 쉬지않고 5곡을 녹음했습니다. 사실 녹음은 최대한 끊어서 하고 싶었습니다만 혼자서 끊고 다시 이어붙이고 하는 과정을 하는 것이 굉장히 벅찼습니다. 그래서 되든 안되든 거의 원테이크로 녹음을 했습니다.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 피아노 연주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런 그랜드 피아노 실연주보다는 미디를 이용해서 연주하고 잘라 붙이는 세심한 작업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제 선택이니만큼 후회는 없습니다.
누군가가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왜 피아노 앨범을 내?" 굉장히 원론적인 질문이었는데 저는 이 말 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해야할 것 같아서." 누가 시키지도 않고, 발매한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는 그런 상황도 아니지만 어쨌든 저는 오래전부터 이 일을 '해야할 일'로 정해놓고 살아왔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이 저에게 당장의 수익을 가져다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이 일에만 집중할 수는 없어서 지금의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의 직장생활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힘들고 마음 쓸일도 많지만 어쨌든 저에게 미래를 꿈꾸고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경제력을 주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부수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기회도 주고 흔치않은 경험까지 선물합니다. 제 삶은 어쨌든 힘들지만 버틸 수 있을만큼의 힘듦이고 약간의 행복이 가미되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직은 음악이 저에게 뭔가를 주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소모하고 있습니다. 이 앨범이 그랬고 앞으로도 당분간을 그럴듯 싶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직 멈추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제 음악이 들려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무모하고도 다부진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근거는 없습니다. '해야할 것 같아서'하는 그런 느낌입니다.
계절을 피아노 연주앨범으로 내는 프로젝트는 이제 50%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여름과 겨울이 남았네요. 내년에는 여름앨범에 도전하려고 하고 미디 공부와 피아노 레슨을 받아볼 생각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받아본 적 없는 피아노 레슨을 어언 25년만에 다시 하려고 하는 이유는 별 것 없습니다. 해야하기 때문에. 가을앨범에서의 진한 아쉬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할 선택입니다.
겨울 앨범으로 마무리 될 때까지 이 매거진이 계속해서 쓰여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