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화의 동물
기분전환으로 신었던 새 구두가 문제였다. 구두 안에 구겨 넣은 발이 물집과 상처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반창고를 얼기설기 붙여두었지만, 이내 물집이 터져 너덜너덜거렸다. 발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몇몇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나는 너보다 이만큼 잘하고 있어.”
“네 것까지 내가 다 하고 있어.”
“왜 잘해주는데, 네가 힘들어하는지 모르겠어.”
“네가 나 때문에 힘들어해서, 내가 힘들어.”
언젠가 책에서 본 구절이 떠오른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라기보다는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무척 와 닿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자신을 포장한다. 끊임없는 자기 합리화. 나도 그렇고 다른 누구도 그렇겠지.
행복한 대화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와도 때때로 날 선 말들을 나눈다. 부담, 실수, 불안 등 다양한 명분으로 서로를 상처 낸다. 다시 이해, 존중, 배려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며 그 시간을 무마한다. 그게 서로의 완벽한 해결이 아닐지라도.
날을 세우는 사람보다 그 말을 받는 사람은 더 아프다. 시시각각 생각나서 괴롭고 쓰라리다. 그래서 그냥 잊기로 했다. 물집이 생겼다는 것을 잊고, 상처 났다는 것을 잊으면 걸어갈 수 있다. 아픔은 인식하는 순간 고통이 몰려온다. 언젠가 웃으며 ‘그랬었지.’하며 넘길 수 있을 때까지, 덧댄 반창고가 너덜너덜해져도 그냥 걷는 것이다. 잊으면 아픔이 느껴지지 않으니까.
발끝을 내려다본다. 상처 난 발이 흉 져 발갛게 부풀어 올랐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굳은살이 되기도, 모난 자국으로 남아 더 이상 아프지 않은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걸어가는 것뿐이다. 무뎌지던지 합리화를 하던지, 오늘은 다시 걷기 위한 한 발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