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부유하고 있는지 몰라
퇴사 후 쓴 글의 첫 문장이다.
하지만 더 이상 이어 쓸 수 없었다.
이번 퇴사는 내 의지보단 회사의 사정으로 인한 결정이었다.
고작 1년이었지만 심적으로 무척 힘들었던 것 같다.
회사의 생존을 위해 끝까지 버텼지만, 전화와 이메일에는 사과가 늘어갔다.
'죄송합니다'를 말하는 횟수만큼 자존감과 자신감이 낮아졌다.
결론은 서비스 일시 중단.
자책하다가도 분노하고, 부정하다가도 긍정했다.
그런 내 모습은 정말 보기 싫었고, 결국 나는 나를 멀리했다.
나와 멀어지면 꽤 무력해진다.
하지만 하루가 길어지면 이런 무력감도 싫어진다.
그래서 더 많이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와 콘텐츠를 보며 공감과 영감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유했다.
이야기와 공감과 영감은 금세 흩어졌다.
스스로 제대로 서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더 집중하기로 했다.
명상. 정리. 메모.
매일 조금씩 하게 된 이 3가지.
아주 단순하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나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는 기분이 들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를 평가받는다.
자칫 타인의 인정만으로 살게 될 수 있다.
나 또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쉼표의 시기인 지금,
타인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나를 돌아봤다.
떠오르는 감상들을 나열하고, 묶고, 지우고, 적합한 단어를 찾았다.
그 결과 나를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1. 지원형 인간
: 같이 잘 되는 것에 더 가치를 둔다.
: 재능이 많기보단 판을 깔고 안정화될 때까지 버틸 수 있다.
2. 호기형 인간
: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기간이 짧은 편이다.
: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해가 될 때까지 찾고, 묻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3. 수줍형 인간
: 마주하기보다는 텍스트 뒤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 낯선 사람과 말할 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하루에 3가지 정도 작은 계획을 세운다.
아침 7시에 일어나기, 한 끼 채식하기, 책 1권 읽기 등.
작지만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은 하루를 조금 더 충만하게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 계획에 글쓰기 추가해보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
글을 쓰고 텍스트를 나누는 일.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겐 조금은 도움이 되길.
나의 호기심이 누군가에겐 조금은 영감이 되길.
나의 수줍음이 누군가에겐 조금은 공감이 되길.
나의 충만함과 조심스러운 바람을 담아,
지금, 이 글을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