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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Jul 20. 2023

나는 조금 느린 편이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느린 편이다. 먹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나를 알아가는 것도. 느리지만 천천히 단계를 밟아온 덕분에 느리다는 것에 초점 맞추지 않고 먹는 즐거움, 배우는 즐거움, 다양한 시도에 재미를 느끼는 중이다. 물론 다른 사람 말에 휘둘릴 때도 있다. 그럴 땐 바닥에 앉아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며 나를 안심시킨 뒤 다시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 나섰다. 나를 다독이는 게 잘 되지 않을 날도 있다. 그럴 땐 친구들이  내 옆에 있었다.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위로가 많이 돼.' '지구력이 있는 것 같아.' 때마침 듣고 싶고 필요했던 말들이었다. 내가 나여서 알기 어려운 것들을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잘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잘 지내다가 또 불안이 찾아올 때가 있다. 분명 잘 살고 있는데, 왜 아닌 것 같지? 아마 회사와 집을 반복하다고 인지할 때 이런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회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다들 먹고살아야 하니까 자신과 타협하며 일을 하는 거겠지. 아쉽게도 나는 그 타협을 잘 못한다. 퇴근 후 집에서 짧은 휴식을 취할 때면 자주 우울감에 빠진다. 영화를 보거나 유튜버를 보거나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더더욱. 내 인생이 너무 평범해 보인달까. 젊음을 젊음답게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돌아오지 않을 시기를 잘 누리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얼마나 도전을 해야 평범하지 않은 걸까? 왜 자꾸 내가 나를 떠미는지 모르겠다. 내가 부럽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모를 걱정과 고민이 있을 텐데.


 나도 한때 이런 사람이었어, 참 자유로운 사람이었어라고 말하고 싶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일까. 만약 영화가 한 사람의 일생을 천천히 다룬다면 분명 재미없을 거다, 그 사람 일생 중 흥미로운 소재를 가져와 영화를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가 그 영화를 보고 깨달음과 재미를 얻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재미없는 날이 있고 재미있는 날도 있다. 매번 재미있으면 오히려 재미에 혼란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비록 지금은 재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도 곧 재미있는 날이 찾아올 거다. 이렇게 딴 길로 새는 나를 다잡았다.


 매일 아침에 생각한다.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걸로 먹고살 수 있다. 다행이다.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잘 못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능력을 지녔지만, 괜찮다. 애매한 사람을 찾는 회사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내 분야에 있어서 더 나아지기 위해 공부를 해야겠다.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이런 내 성향을 아니까. 그렇다고 회사와 집을 반복하며 살기는 싫다. 그러니 지금처럼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 조금씩 해내고 싶다. 무리해서 한 번에 하는 게 아닌 천천히 끈기 있게 오랫동안.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에세이도 좋고 내가 느낀 걸 소설을 써보는 것도 좋다. 억지로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닌 필요로 인한 공부는 은근히 재미있기도 하다.


 우울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일상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찾아갔다. 덕분에 요즘 소설에 빠져있다. 같은 글이지만 드라마, 영화 시나리오, 소설, 에세이, 시 모두 쓰는 방식이 다르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 공부 중이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조급함이 생기고 스트레스받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원래 느린 사람이니까, 천천히 나아가는 사람이니까. 언젠간 내 글이 좋아질 날이 오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알고 있고 더 나아가기 위한 방법도 알고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면 회사를 그만뒀다. 일상이 재미없다고 생각할 때쯤이기도 했다. 어쩌면 재미없는 일상에 짜릿함을 전해주기에 여행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자주 회사를 그만둘 순 없다. 일시적인 자극이 아닌 안전한 즐거움을 위해 월급의 일부를 여행 자금을 모으고 있다. 돈이 쌓이면 연차 내고 동남아 여행을 떠나야지. 그날이 오기 전까지 좋아하는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 한 잔 마시며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걸 곁에 둬야겠다: 그러다 보면 또 숨통 트일 날이 오고 우울을 잠재울 수 있겠지. 참고 타협하고 인내하면서 배우는 것도 있을 테니. 이렇게 고민하는 것도 잘 살기 위한 과정 중 하나로 생각한다. 그러니 난 잘 살고 있는 게 맞다.


 PS. 지나가다가 사주를 봤다. 43살에 새로운 일을 가진다고 하던데, 글과 관련된 걸까? 그렇다면 10년 정도 남았네. 사주에 의존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10년 동안 꾸준히 글 쓸 거라는 걸 알고 있기에 이 말을 신뢰해 보려고 한다. 열심히 글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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