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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Sep 06. 2023

어떻게 하면 엄마랑 안 싸울 수 있을까?

 주변에서 결혼 소식이 많이 들리고 있다. 결혼은 하고 싶지만 당장 할 마음은 없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생각이 많아질 때도 있다. '확신이 든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결혼 후 삶은 어떨까.' 고민이 깊어질 때쯤 엄마 아빠의 싸움을 봤다.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나는 절대 엄마처럼 안 살 거야, 나는 절대 아빠 같이 보수적인 사람이랑 결혼 안 할 거야. 


 예전에 엄마는 나를 볼 때마다 '언제 결혼할 생각이냐?'라고 물었다. 지금은 결혼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정말 이 사람이다, 싶은 마음이 없으면 억지로 결혼하지 마.'라고 말할 뿐. 엄마는 과거를 떠올리면 추억보다 후회가 많다고 했다. '아빠가 돈 쓰는 걸 싫어해서 맛있는 것도 못 먹고 할인 코너만 둘러봤다, 아빠가 물건 드는 걸 창피하게 여겨서 아기 업고 시장바구니도 들었다,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게 버거워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요즘 들어 엄마가 후회의 말을 자주 꺼낸다. 결혼이 무엇인지 생각했을 뿐인데, 결혼한 엄마가 보였다.


 엄마가 과거에 머물지 않도록 맛있는 것도 먹고 예쁜 옷도 사주고 재미있는 공연이나 여행도 같이 가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내 제안을 매번 거절했다. '월세나 내, 너 친구랑 가' 엄마는 내가 돈 쓰는 걸 싫어했다. 그 돈을 모아 내가 예쁜 옷을 사 입길 바랐고 자주 놀러 다니길 원했다. 주로 엄마가 하지 못해서 후회한 것들이었다. 엄마의 단호한 말에도 나는 꿋꿋하게 말했다. '내가 결혼하면 엄마랑 시간 보내기 힘들 수도 있잖아. 나는 내가 할 수 있을 때 엄마랑 같이 있고 싶은 거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엄마랑 뮤지컬을 보러 가기로 했다. 엄마의 무릎이 좋지 않아서 신경 쓸 게 많았다. 엄마가 지하철 의자에 앉을 수 있도록, 계단을 덜 오르도록, 걷는 동선이 최대한 짧을 수 있도록. 하지만 이상하게 내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엄마가 힘듦을 표현했고 말이 거칠어지면서 결국 좋게 데이트하고자 했던 마음이 짜증으로 변했다. 계단 여부를 신경 쓰지 않고 가까운 출구를 찾던 내가 엄마를 위해 엘리베이터 위치와 에스컬리이터를 확인해야 했다. 사실 이런 건 문제 되지 않았다. 다만 내 예상과 다르게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보이지 않으면 무언가의 압박을 느꼈다. 엄마는 힘들다고 짜증 내다가 내 표정을 보고 이 정도는 괜찮다며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서로 눈치를 봤고 서로 힘들어하는 게 보였다. 


 겨우 공연장에 도착했다. 예전에 내가 뮤지컬 쪽에서 잠깐 일했을 때 엄마가 공연을 보러 온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론 공연장에 가지 않았으니 오랜만에 찾은 공연이었다. 힘들 게 여기까지 왔으니 엄마가 공연을 재미있게 봤으면 했다. 공연 시작 전, 배우가 장난스럽게 공연을 소개하자 엄마는 보조개를 보이며 크게 웃었다. 엄마가 이렇게 크게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괜히 슬펐다. 

 엄마는 갱년기와 불면증이 찾아와 약을 먹고 있다. 약에 의존하기 전에 근본적인 걸 해결해 주고 싶었다. 우울한 마음이 들 때면, 하루하루가 무기력하다고 생각할 때면 밖에 재미있는 게 많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짜증과 미안함이 뒤섞였는데 공연을 보는 엄마를 보니 미안함이 100%로 바뀌었다. 


 공연에 집중하면서 엄마를 슬쩍슬쩍 봤다. 엄마가 공연을 재미있어하는지, 지루해하진 않을지. 엄마는 끝나고 '그냥 볼만했어'라고 말했다. 그 말에 서운했는데, 집으로 가는 내내 엄마는 공연 얘기만 했다. '그 배우는 진짜 몽골 사람인 줄 알았어, 노래는 왜 이렇게 잘하냐?' 내가 또 가자고 할까 봐 엄마는 어설픈 거짓말을 했다. 왜 엄마는 내가 돈 쓰는 걸 아까워할까. 나는 전혀 아깝지 않은데. '공짜 표가 생겼다, 이벤트에 당첨됐다'는 여러 거짓말도 해봤다. 하지만 엄마는 내 거짓말을 눈치채고 친구랑 가라고 했다. 진짜 싫은 건지, 내가 돈 쓰는 게 미안해서 그런 건지 헷갈렸다. 


 생각해 보면 맛있는 걸 먹거나 무언가를 할 때마다 엄마랑 싸웠던 것 같다. 뭐 하나 수월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엄마한테 무언가를 제안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근데 맛있는 걸 먹을 때 엄마의 표정, 공연 보며 환하게 웃는 엄마의 표정을 볼 때마다 그 다짐을 잊어버린다. 이번엔 이 공연을 보자고 해볼까? 그러다가 또 싸우고. 매번 후회해도 나는 엄마에게 세상엔 재미있는 게 많고 맛있는 것도 많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다만 어떻게 하면 엄마랑 안 싸울 수 있을지 고민될 뿐. 참 어렵다. 엄마가 내가 어렸을 때 많은 걸 알려준 것처럼 나도 해주고 싶은 것일 뿐인데. 엄마도 이런 내 마음을, 마음으로 잘 받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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