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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May 26. 2024

고민이 한때가 되는 날이 오길

요새 계속 초라해지는 나를 본다. 이직할 때 고민이 많았다. 지금까지 해왔던 마케팅, 에디터 쪽에서 '전문성'을 쌓을지, 아직 미련이 남은 문화콘텐츠 기획 쪽에서 '새롭게' 시작할지.

일을 하다 보면 '일의 가치관’이 생긴다. 특히 나 같은 경우에는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퇴근 후 삶이 있어야 글도 꾸준히 쓸 수 있고 취미도 이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광고 대행사와 하고 싶은 분야에 모두 합격한 상태였다. 안정적이면서도 개인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서 당연히 전자를 선택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야근 많은 하고 싶은 분야'를 선택했다. 생각해 보면 고민이 길지 않았다. '지금 더 마음이 가는 쪽', 어느 쪽을 선택해도 후회가 있을 수 있지만 그나마 '덜 후회할 수 있는 곳'이 무엇인지 비교한 끝에 결정한 선택이었다.


그 당시의 내가 내린 결정이니 선택에 책임지고 싶었다. 그래서 입사하기 전에 피피티, 사업계획서 작성 관련 강의를 들으며 내 부족함을 채우려 했다. 원해서 하는 공부라 재미있었다. 어떤 걸 하더라도 문제를 잘 찾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만 잘 고민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마케팅을 하면서 주로 고민하던 것들이니 적응도 빠르지 않을까 싶었다. 점차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일'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하는 일이 버겁더라도 최소 1년은 버텨내며 이 문화를 이해하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다짐은 무너지라고 있는 걸까. 사람들이 왜 익숙한 일을 선택하는지 알게 되는 날들이 많았다. 계속 실수하는 나를 보면서 말이다. 상대가 어떤 말을 하든 필요한 말은 듣고 불필요한 말은 흘러들어야 한다는 건 안다. 하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보니 어떤 말이든 내게 불리한 쪽으로 해석했다. "내가 원래 이렇게 능력이 없었나." 다시 신입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 시선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나도 내가 바보 같은데, 저 사람도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겠지? 내가 만든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왜 이러지. 처음엔 적응 기간이니까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괜찮다고. 모르는 분야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한 달이 막 지났을 무렵 '잘 모르는 분야라서'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부끄러웠다. 잘 모른다는 말 뒤에 숨는 기분이랄까. 나를 지키기 위한 말이 나를 더 작아지게 하는 것 같았다. 물론 잘 모르는 분야라 주말마다 관련 자료도 읽어보고 책을 읽으면서 빨리 적응하려 했다. 하지만 현실은 책과 달랐다. 머리로 이해해도 '아이디어'를 얼마나 구조화해서 잘 보여줄 수 있을지는 다른 문제였다.


팀장이니 혼자서 내용을 구조화 한 다음에 팀원에게 역할을 나눠줘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혼자서 어떻게든 해보려 했으니 방법을 모르니 끙끙 앓뿐이었다. 내가 찾은 건 회사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결국 시간만 버렸다. 시간을 버린 것도 싫지만 뭐가 뭔지 모르겠는 이 상황이 더 싫었다. 친구에게 너무 어렵고 혼자 하려니까 더 힘들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이쪽 분야에 먼저 들어간 친구는 어려운 게 맞다고 말해줬다. 원래 이 분야에서 일하던 사람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당연히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그 말이 위로됐다. 하지만 위로는 위로고 현실은 현실이다. 어려운 게 맞다고 생각하고 말면 계속 겉돌 것만 같았다.


그동안 내가 받은 피드백을 정리해 봤다. "처음부터 너무 디테일하게 생각하는 편인 것 같아. 일단 어떤 식으로 진행하면 좋을지 방향을 정한 뒤에 디테일하게 생각해도 나쁘지 않아." "제안서를 쓰려면 근거가 필요해. 자료를 정리하는 거에서 그쳐서는 안 돼. 그 자료를 활용해서 아이디어 및 기대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해" 내가 만든 피피티 안에 내용이 다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다만 그게 잘 보이지 않아서 계속 피드백받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방법론을 잘 보이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했다. 문제는 알았으나 이 문제 해결은 시간이 필요한 문제였다.


해야 할 일들이 많고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이 커서 자꾸만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은 채 "아 저것도 해야 해. 이것도 해야 해"라고 생각하며 해야 할 일들을 못 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고민을 팀원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이 분야를 먼저 경험했던 친구들이라 나를 이끌어줬다. ‘아무리 혼자 하라고 했다고 해도 같이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으니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마케팅 분야랑은 용어도 다르고 표현하는 방법도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등 내가 팀원에게 해줘야 하는 말들을 역으로 들으며 위로받았다.


너무 혼자 안고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번 일만 경험하면 운영하는 흐름을 알 테니 조금은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기죽으며 내 부족함을 탓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지금은 탓할 시간에 부족한 걸 채우는 게 먼저일 테니. 결국 이런 고민이 한때가 되는 날도 올 테고. 빨리 잘할 필요 없이, 지금 해야 할 일들을 잘 정리하고 '근거 있는 의견, 기대효과, 구조화'만 기억하며 해야 할 일들을 진행해야겠다. 시간 안에 해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은 만들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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