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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Jun 23. 2024

우리 집 거실에서 느끼는 한 여름밤의 분위기

심야라디오 디제이를 부탁해

봄과 여름 사이,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계절이 오면 거실에서 자는 편이다. 창문이 커서 블라인드를 올리면 달이 보인다. 달을 보면 괜히 마음이 간지러워져서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 음악을 틀곤 했다. 좋아하는 음악이 방 안에 퍼지면 나만의 공간이 완성된다. 마치 한 여름밤의 분위기처럼. 예전에 이런 분위기 속에서 친구들과 수박을 먹은 적이 있다. 수박을 먹으면서 어릴 적 시골 냇가 앞 정자에서 옥수수를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묘한 편안함과 포근함이 느껴지는 기억이었다. 시골로 가지 않아도 우리 집에서 이런 여름밤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오랜만에 그 여름밤의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선풍기 청소를 끝낸 기념으로 이불을 거실로 옮겼다. 이날은 음악보다는 라디오와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음악이 아닌 라디오를 연결했다. 그러다 갑자기 몇 년 전에 라디오 디제이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취업 걱정으로 잠 못 들던 새벽에 들었던 라디오, 'MBC 심야라디오 디제이를 부탁해'였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도,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매일 위로받았고 매일 마음 따뜻하게 잠들었다. 내가 나아질 수 있게 도움을 줬던 프로그램이라 나도 내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이불속에서 뒤척이기보다 내 고민, 생각, 위로를 담아 원고를 만들어 지원했다.


문득, 그 당시의 내가 궁금해 '디제이를 부탁해' 프로그램을 틀었다. 날짜를 보니 2016년, 8년 전이었다. 오프닝 끝에 내 목소리가 들렸다. 음향 좋은 스피커로 내 목소리를 들으니까 더 어색했다. 새어나가는 발음, 딱딱하게 대본을 읽는 듯한 목소리가 풋풋하면서 낯간지러웠다. 오글거리는 것도 잠시, 내용을 하나하나 들어보니 8년의 전과 지금의 내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일까? 과거의 나에게 위로받은 기분이었다.


그 당시엔 늘 우울해 있었다. 20대 후반이 되어가면서도 내가 잘하는 게 뭔지도, 할 수 있는 게 뭔지도 몰랐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와중에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어버릴까 봐. MBC 심야라디오 디제이를 부탁해를 들어보니, 그런 불안 속에서도 나와 친해지려는 노력이 보였다. 책을 읽고 바로 인도로 떠났던 당찬 모습, 힘들지만 결국엔 이겨낼 거란 다짐까지. 20대의 내가 새삼 대견했다.


그 시기는 누구나 불안하다고 말한다. 불안한 게 당연한 거라 괜찮은 거라고. 당시에는 이 응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애쓰게 나를 찾았는데, 그 끝에 아무것도 없을까 봐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어떤 말인진 알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다행히 난, 지금의 나를 좋아한다. 그 불안 덕분에, 내가 나를 친해지려 애쓴 덕분에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알게 됐다. 불안이 곧 불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30대가 되니 20대 때 필요 이상으로 내가 나를 괴롭혔다는 걸 알았다. 사람마다 속도가 다를 뿐인데 나는 내가 뒤쳐지고 있다는 거에만 집중했다.


평범한 삶을 부정했던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그래도 괜찮다며 스스로 달래는 법을 배웠고 오히려 평범한 게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됐다. 스트레스가 쌓여 잠 못 드는 새벽엔 뭘 하면 좋을지도 잘 알고 있다. 나를 돌보기 위해 썼던 글이 에디터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했고, 내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읽었던 책이 책을 쓰고 싶단 생각으로 이어지게 했다. 자주 싫증 내던 나였는데 글은 매일 써도 질리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면 괴롭지만, 언젠간 이 글을 채울 수 있을 때가 오겠지 하며 넘기는 편이다.


책을 읽지 않던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어서 책을 가까이에 하고 내 감정을 꺼내고 이를 스토리로 만들어내려 하다니 말이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게 맞나 보다. 이렇게 보면 불안은 나를 갉아먹기도 하지만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아마 불안이 없었다면 성장도 없지 않을까? 20대의 불안을 돌아보니, 불안한 감정에 집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불편한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 나를 들여다봤고, 결국 시간이 지나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20대 중반에 했던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정말 나는 ‘나’인 건가. 난 고민을 스스로 만들며 그 답을 찾기 위해 열심히 방황하는 것 같다. 지금도 다른 고민으로 방황하고 있지만, 다행히 조급하진 않다. 어떻게 하면 내 가치관에 맞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할 뿐. 결국 나답게 해결하겠지. 내가 나를 믿을 수 있어서 다행라고 생각했다. 정말 오랜만에 기분 좋게 잠들던 밤이었다. 그 기억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내 옆에 있어서 그랬던 걸까. 우리 집 거실이 계속 새로운 여름밤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ps. 20대 중반에 남긴 디제이를 부탁해, 라디오 덕분에 30대의 내가 20대를 추억할 수 있었다. 새삼 기록, 흔적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오늘 남긴 이 일기가 나중엔 어떻게 읽힐지 궁금해졌다.


당신이 어느 곳으로 가든,
당신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 존 카밧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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