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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Jun 11. 2024

나트랑 여행. 일상과 여행의 '틈'에서 내가 발견한 것

#1

나트랑 여행 가기 3개월 전에 나트랑 비행기 티겟을 구매했다. 다들 왜 이렇게 자주 여행 가냐, 돈이 많냐고 묻지만 내 생각엔 기분 탓이다. 나는 매달 20만 원씩 여행자금을 모은다. 매일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으니 나와 타협한 결과다. 일회성 쾌락에 의지 않고 일상에서 행복을 찾되 역마살 있는 나를 위해 1년에 두세 번 정도 여행을 떠난다. 단지 안정적인 루틴을 만들었던 것뿐이다.


1년 동안 20만 원씩 적금하면 240만 원이 된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면 두세 번은 충분히 여행 갈 수 있다. 주로 동남아로 여행을 다녔다. 저렴한 물가도 한몫하지만 사원, 야시장, 자연, 시내 분위기 모두 내 스타일이기도 하다.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 덕분인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절로 힐링되는 기분을 받곤 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으면서도 뭐든 괜찮다는 현지인의 표정에서 묘한 편안함을 얻기도 한달까. 덕분에 동남아에 가면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던 고민과 잠시 멀어지게 된다. 고민과 나 사이에 틈이 생겨 어느새 현재에 집중한다. 그래서인지 일에 치여 현재에 집중하고 싶을 때면 여행이 간절해진다. 


기분 탓일 수 있지만 여행을 다녀오면 기분 좋은 일이 생겼다. 풀리지 않을 것만 같던 일들이 하나씩 풀린다거나 막막하기만 했던 내 삶이 그렇게 막막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날이 온다거나. 


최근, 취업에 성공했고 곧 퇴사했다. 일하는 동안 자꾸 나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감사하게 경력을 인정받아 팀장 직급을 얻었지만, 제안서 작업은 처음이라 자꾸만 피해를 주는 듯했다. 내가 빨리 따라와 주길 바라는 눈들이 많았다. 부담을 느끼고 싶지 않아 애써 그 눈을 외면하고 꿋꿋하게 버티려 했으나 피하기 어려웠다. 결국 자꾸만 작아지는 나를 위해 퇴사를 선택했다. 무능력한 나와 마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작아지는 나를 가만 둘 순 없었다. 여기서 내가 빛을 발휘하지 못했을 뿐이지 다른 곳에서는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바꿨다. 퇴사하고 여행 가기 직전까지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 애썼다. 내 주말 루틴을 되찾기 위해 매일 일기를 썼고 드라이브하며 기분전환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나트랑 여행 갈 날이 왔다. 


#2

여행은 '틈'을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민 많은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틈, 잠시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틈을 말이다. 아마 여행을 잘 다녀오면 작아졌던 나를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다시 발랄했던 나로 돌아가는 데 말이다.


일상의 균형을 위해, 나를 위해 만든 여행 루틴이라고 하더라도 여행에서 바라는 게 생길 수밖에 없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에게서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한국에서 맛보기 어려운 맛집을 발견한다거나. 하지만 이번 나트랑 여행에선 뭐 하나 만족스러운 게 없었다. 음식은 애매하게 맛있고 커피도 애매하게 맛있고 기대했던 스노클링도 애매하게 재미있었다. 뭐든 애매한 게 꼭 나와 닮아있는 듯했다. 


마지막 날까지 한국사람들이 자주 가는 나트랑 맛집, 여행지에만 가고 싶지 않았다. '꼭 가야 하는 법칙이 어디에 있어!' 그 뒤로 친구와 함께 길을 걷다가 발견한 곳에 들어가거나 현지인에게 맛집을 추천받으며 여행을 했다. 사실 음식은 취향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맛있지만 누군가에게 맛이 없을 수 있다. '꼭 가야 하는'것에 집중하지 않고 '내가 찾은'에 집중하려 했다. 짧은 여행이라 이런 발견을 많이 할 순 없었지만, 진짜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것에 부딪히고 시도하고 다양한 경험을 만들어 가는 게 말이다. 이렇게 여행하면 같은 곳을 가도 늘 새롭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3

세부 스노클링 이후로 물놀이에 빠졌다. 분명 물을 무서워하던 나였는데, 내가 상상했던 무서움이 별거 아니었다고 느끼니 물놀이도 할만했다. 나트랑 스노클링 할 때 한국인 가이드가 있었다. 자유로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인지라 이 일이 평화로워 보였다. 물론 내가 겪어보지 않은 분야에는 이상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조금만 젊었다면' '이런 일을 미리 알았다면'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가이드를 하고 싶다기보다 이렇게 자유롭게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큰 거 같다. 공간 안에 머물러있는 것보다 조금 더 역동적이면서 사람을 만나는 직업 같은. 돈을 적게 벌고 많이 벌고를 떠나서 이 일이 내 커리어에 도움 될지 안 될지에 대한 고민 없이 자유롭게 일하는 모습 같은. 그게 너무 부러웠다.


늦은 듯 늦지 않았겠지. 안타깝게도 나이 들수록 하던 일만 찾게 된다. 한국에서 새로운 걸 도전하기란 쉽지 않달까. 그래서 내가 요즘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아르바이트 개념 없고 굳이 성장하지 않고 먹고살 정도만 일해도 불안하지 않은, 내 행복을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 적당히 성장하고 싶은데 자꾸만 성장을 강요하는 곳에서 일해서 그런 걸까. 그러다 보니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일일일' 내 시간이 없다는 게 꽤나 슬펐고, 일만 하다 보니 30대 중반이 된 것도 숨이 막혔다.


여행을 하면 없던 용기가 생긴다. "아니야, 나도 자유롭게 살면 되지. 시선 따위가 뭐가 중요해. 나만 떳떳하면 되지. 편견과 시선의 불편함은 내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아!"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면 한동안 영어공부에 매진한다. 자유로움을 위해 영어가 필수인 건 아니지만 원하는 걸 하기 위해 이 정도 노력은 필요하니까. 바라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 없으니까. 더 자유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더불어 글도 더 열심히 쓰게 된다. 무언가가 내 안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다. 이런 주제로 글을 쓰면 어떨까 하는 것들.


여행을 다녀오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거. 이제야 진실을 알 것 같다. 여행을 다녀와서 좋은 일이 생기는 게 아니라 좋은 일이 생길 타이밍이었다는 걸. 내가 놓친 가치를 되찾고 방향을 재정립할 타이밍이었다는 걸. 여행의 틈은 괴롭기만 했던 일상에서 벗어나고 한국에서 하게 되는 고민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여행하는 동안엔 여행에만 집중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좋은 일은 좋은 일이기보다 좋은 일이 올 타이밍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건, 어쩌면 내가 놓치고 있는 걸 되찾기 위함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일상의 쾌락으로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나트랑 여행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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