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서울까지 시내버스로 여행하기
대학교에 진학하자마자 부모님이 중고차를 마련해주셨다. 20살 이후로 버스 탄 적이 손에 꼽는다. 연식이 오래된 차지만, 버스보다 만배쯤 편했다. 차만 타고 다니다 문득 ‘예전에는 어떻게 버스를 타고 다녔지’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버스를 타는 게 차보단 조금 불편했던건 사실이다. 나름의 낭만은 있었다. 바뀐 계절의 풍경을 바라보고, 만원버스에서 사람들과 엎치락 뒤치락하고,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를 정류장에서 마주치고….
그때 나에게 버스는 무슨 의미였을까? 그때를 떠올리며 후불 교통카드 한 장을 들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 대전에서 서울까지. 무모한 여행을 시작했다.
대전에서 서울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 위해선 일단 세종시로 향해야 한다. 유성에서 세종시로 가는 버스가 서는 반석까지 가야한다. 유성에서 반석까지 가는 버스는 많다. 그 중 가장 일찍 도착한 101번 버스에 올랐다. 평일 오후 1시, 버스 안은 한가했다. 버스가 도로를 시원하게 달린다. 노은역으로 들어서자 하나둘 사람들이 올라탔다. 저마다 이어폰을 꽂고, 창 밖을 본다.
대전으로 이사올 즈음부터 BRT버스라는 말을 신문에서 자주 봤다. 그때마다 BRT버스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탈 기회가 좀처럼 없어 그냥 궁금증만 가진 채로 지냈다. 굳이 알아낼 생각은 없었으니까. 버스여행을 하며 처음 BRT버스를 타봤다. BRT는 전용차선이 있는 도로위의 지하철같은 버스다.
함께 BRT버스를 기다리던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대전에서 세종으로 이사 간지 이제 두 달 남짓된 분이었다. 타지에서 생활하는게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버스타고 대전에 자주 놀러가요. 친구들도 만나고 좋죠. 놀러가려고 버스 기다리는 시간이 제일 즐거워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건 아쉽지만…”
아주머니는 아쉬운 발걸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평일 낮 시간이지만 대전에서 세종으로 향하는 많은 사람이 버스를 채웠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싣고 버스는 달렸다.
번화가를 지나자 아직 한적한 동네가 나타난다. 이윽고 버스는 시골길을 달린다. 이제 막 수확한 고추를 마당에 널어놓은 주택가를 지나친다. 목적지는 아직 한참 남았는데, 버스가 멈춰 선다. 기사님이 지나가던 다른 버스 기사님과 저녁 약속을 잡는다. 정겨운 인사를 나누고 버스는 다시 목적지로 나아간다.
700번 버스를 기다린 곳은 쌀쌀한 시골 정류장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얼마 없고, 차들만 쌩쌩 지난다.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멍하니 앉아있는데 ‘빵’ 경적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들어 황급히 버스에 올랐다.
어쩌다보니 기사님과 인사를 나눴다. 버스타고 서울까지 향하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말에 “그런데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라며 꾸지람아닌 꾸지람을 들었다.
“경적 안 울려주셨으면 못 탔을거에요”
“시골 정류장이라 버스도 몇 대 안오는데....깜빡하고 버스 놓치면 한참 기다려야 될거에요.”
“감사합니다”
“그 정도는 기본이에요”
100번 버스를 기다리기 전, 삼도상가 정류장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느라 버스를 한 대 놓쳤지만…. 한 잔의 커피가 남은 여행의 원동력이 됐다. 100번 버스는 천안에서 성환으로 향하는 버스다.
옆자리에 앳되보이는 학생이 앉았다. 옆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연거푸 꾸벅꾸벅. 졸았다 깼다를 반복한다. 왠지 애처로워 말을 걸었다.
“많이 피곤해요?”
“네. 이러고 바로 학원 가야돼서 피곤해요. 빨리 집가서 쉬고 싶어요~!”
짧은 대화가 끝나고. 학생은 다음이 내릴 정류장이라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130번 버스는 작다. 마을버스같은 비주얼. 성환에서 평택까지 가는 버스다. 퇴근시간과 하교시간이 겹쳐서인지 작은 버스는 금새 만원이 된다. 작은 공간에 많은 사람을 태우고 버스가 출발했다.
평택역에서 한참을 헤맸다. 지도 어플에 나온 버스들은 죄다 시외버스고, 본래 타려고 했던 버스가 서는 정류장을 잊어버려 무작정 내린 탓이었다. 여차하면 평택역에서 기차를 탈 생각으로 황급히 옆에 있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저 서울 가려고 하는데…. 시내버스 타려면 어디서 타야 될까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 아마 터미널에서 타시면 될거에요”
그분이 말해준 터미널로 갔으나, 실패. 다시 한참을 헤매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시 말을 건다. 아까 그 분이다.
“동서울 가는 버스 왔어요. 저거 안타세요?”
본인이 있던 버스정류장에서 멀리 떨어져있었는데. 여기까지 동서울가는 버스가 왔다는 걸 알리기 위해 달려온 모양이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리자 괜찮다며 손사래를 친다. 친절을 뒤로하고,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2번 버스에 탑승했다. 평택과 오산을 잇는 2번 버스에는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
동네 친구이신건가. 할머니들이 일렬로 쭈르륵 앉아 이야기를 나누신다. 한명이 내릴 때마다 내일 또 보자며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오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광역버스다. 버스 한 대가 정류장에 멈추지 않아 기다리던 사람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기도 했다.
다음으로 도착한 버스에 올라타니 이제 무사히 서울로 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버스의 움직임을 따라 천장에 걸린 검정봉투가 흔들렸다. 옆자리에 앉은 중년의 남성은 “알겠어. 치킨 사갈게”라며 기분좋은 통화를 끝마친다. 해는 저물었고, 버스는 서울 톨케이트를 지난다.
저녁 8시 무렵, 신논현역에 도착했다. 대전에서 출발한지 6시간 만이다. 피곤하거나 힘들다는 생각보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지나친 풍경과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