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늦가을에 2주간의 휴가를 쓰게 됐다. 우리는 2주나 되는 소중한 시간을 이주지 탐색을 겸한 관광의 시간으로 쓸 참이었다. 이때는 마음이 어느 정도 고흥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고흥으로 가고 싶었지만 이미 제주도로 예약을 다 마친 상태였다. 기존 예약을 다 취소하기도 그렇고 제주도도 여전히 후보지인 만큼 이번 휴가는 제주에서 보내기로 했다.
여행 중 숙소를 옮겨 가며 제주도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여행 마지막 1주일은 한 숙소에서만 쭉 머물렀는데 숙소 주인 부부와 소통하는 시간이 많았다. 소통이 많았던 이유 중 하나는 그 주인장 부부가 이주를 먼저 실행에 옮긴 이주 선배였다는 점이다. 제주로 온 지 2년 차로 어느 정도 제주에 안착한 가정이었다. 그분 들에게 듣고 싶은 게 많았다.
주인장 부부와의 며칠에 걸친 대화는 결국 "함께 이웃해 살자"라는 그분들의 설득으로 이어졌다. 고흥은 뒤로하고 제주 마을에서 함께 살자고 했다. 그분들이 이렇게 우리 부부를 설득하는데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우리 부부의 살아온 모습과 갖고 있던 나름의 신념이 우연히도 그들과 비슷한데 있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의료장비의 도움을 배제한 자연출산의 경험, 사교육열에 대한 반감, 등수로 서열을 매기는 공교육 현장에 대한 반감, 먼지가 싫어 이주하기로 한 이번 결심 같은 것들이다. 아마도 이런 동질감에 짧은 머묾에도 그분들의 권유는 이어졌고, 우리는 급기야 소개받은 타운하우스 공사현장을 방문하게 됐다.
아직 공사 중이긴 했지만 아담한 집의 공정률은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2층 베란다에 올라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낮은 숲이 단지를 휘감듯 둘러있고 그 녹음과 맞닿은 새파란 하늘은 탁 트여 보였다. 그 덕에 가슴이 뻥! 하고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았다. 이 집이 내 집이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처음 든 순간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 결국 그 집의 분양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고흥이나 속초에 대한 아쉬움을 없앨 만큼 우리 기준에서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곳이었다. 원주민 분들이 사는 마을과 가까이 붙어있는 아담한 타운하우스 단지였다는 것. 동떨어진 외딴섬의 느낌이 아니어서 좋았다. 그리고 우리 첫째가 입학할 초등학교가 비교적 가까웠다. 이 점이 제일 좋았는데 그 학교가 본교가 아닌 분교라서 더 좋았다. 이주를 결심하며 바랐던 초등학교는 선생님들이 전교생의 이름을 다 꾈 정도로 작은 학교였다. 이런 작은 학교는 담임선생님이 담당해야 하는 학생수가 적어서 상대적으로 학생들을 더 세심하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대로 그 분교가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여행 중에 이주를 향한 첫 단추를 꿰었다. 큰 고민 없이 의외로 진행이 빠른 감이 있었다. 아마도 이번 일에 우리 부부가 같은 동기를 품고 같은 곳을 응시하며 같이 노를 젓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덕에 가족이라는 배가 쉽게 움직였다. 그리고 뜻밖에 때 맞춰 불어온 바람이 우리 배의 돛을 힘차게 밀어줬기 때문이기 하다. 이 바람이 돛을 밀기 전에는 귀를 힘차게 팔랑거리게도 했다. 우리 돛은 두꺼웠고 우리 귀는 얇았다. 바람을 아주 잘 탈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