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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Oct 23. 2023

짧은 소설

생년월일을 적다가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68년생입니다… 왜 거짓말 같습니까? 고생을 많이 하면 병이 들고요, 병이 들면 나이도 더 들어 보이게 되지요. (한숨을 쉬며) …… 가난한 사람들은 자주 아픕니다. 아프니까 가난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가난해지니까 또다시 아프게 되고요. 이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한단 말입니다.”

   남자는 나이에 비해 스무 살은 더 넘어 보였고 이미 이런 일은 수없이 당한 일이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작업장 안에서 술주정에 방뇨까지 그의 전적은 화려했다. 

   “이번엔 좀 어렵겠어요.” 

   갑자기 남자가 눈물을 흘렸다. 팔자주름이 깊이 파여 있는 남자는 아이처럼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러대었다. 

   “죽는 게 차라리 나아. 자식만 아니면 이미 오래전에 목숨을 끊었을 겁니다. 살아 숨 쉬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를 겁니다.”

   남자는 전처의 행방을 몰라 아들을 맡기기도 어렵고 아들의 휴대전화 요금도 대기 힘들다며 하소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지요. 그러니까 술을 끊으시고요, 기술이라도 하나 배우고요.”

   늘 하던 말을 되풀이한다. 상담 때마다 앵무새처럼 이 말을 반복한다. 내 속마음과는 정반대의 말을 한다.  

   ‘죽을 용기가 당신에게 있을까? 죽고자 하는 사람은 이렇게 징징대지 않아. 단박에 죽고말지. 술도 하나 통제하지 못하면서 살겠다고? 그리고 지금까지 당신은 충분히 시간을 낭비하고 방탕했어. 더 이상 삶을 구걸하지 마.’

   남자가 만약 내 속마음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시청에 민원을 넣을 것이다. ‘자살을 부추기는 자활센터가 자활센터냐, 자살센터지.’ 그의 절규는 말단공무원을 자극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나는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빈곤의 최고 밑바닥에 있는 사람과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내보내도 된다는 지침이 생길지도 모른다. 

   남자는 허위에 찬 나의 말에 고무가 되었는지 비장한 표정으로 말한다. 

   “맞는 말이요. 살아야 해요. 그러니 정부가 나 같은 비참한 사람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뿔싸. 정부니 복지니 지원이니 이런 단어를 입에 떠올리는 사람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남자는 내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린 것을 보았을까, 짐승처럼 덤벼들었다. 

   “우리도 엄연히 국민의 한 사람이라고. 알아? 태어날 때부터 우리가 수급자인 줄 알아? 제 잇속만 챙기는 정치인과 제 배만 부르면 되는 부동산 투기업자들, 노동자들을 머슴처럼 부리는 기업가들, 또 뭐 있지? 세상천지가 돈 놓고 돈 먹는 야바위 세상이 되어버렸다고. 내가 게을러서 이렇게 된 게 아니라고. 내 것을 빼앗아서 그렇게 부자가 된 거라고. 우리가 있어서 부자가 있는 거라고.”

   나는 남자의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남자는 한참 동안 불평을 하다가 내 얼굴을 노려보며 말했다. 

   “일자리를 주지 않으면 자살할 수밖에 없지.”

   남자가 유리문을 밀고 나갔다. 어쩌면 자살을 할지도 모른다. 세상을 한탄하는 유언장 한 귀퉁이엔 ‘상담하는 여자가 나를 자살로 밀어 넣었어. 겨우 난 일자리를 달라고 했는데 말이야.’ 하는 글이 적혀 있을지도 모른다. 인구 이십 오만의 소도시에서 이런 자살은 엄청난 뉴스가 될지도 모른다. 

   남자의 괴발개발 갈긴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시청은 센터장을 소환하여 문책하고 도미노처럼 나 또한 소환, 문책의 과정을 거쳐 나중에는 나 또한 자살로써 무고함을 입증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이없게도 남자를 따라 순장되듯 무덤 속으로 따라 들어가는 나 자신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런 노골적인 협박은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째이다. 

   얼마 전 한 여자는 칼을 들고 들어왔다. 여자는 내 자리가 어디인지 공익근무요원에게 물었고 그 앳된 공익근무요원은 여자의 손에 들려있는 칼에 새파랗게 질린 나머지 손가락으로 내 책상을 가리켰다. 나는 막 화장실에서 나오던 중이었다. 여자는 빈자리의 내 책상 위를 여러 번 칼로 내려찍고 있었다.   

   “잡년, 개년, 남의 남자와 붙어먹은 년.”

   나는 차마 내 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채 엉거주춤 문 앞에 서있었다. 전화를 받거나 낮잠을 자고 있던 동료들은 얼어붙은 듯 앉아 있을 뿐 어느 누구도 여자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했다. 

   여자는 입가에 게거품을 문 채 엄청난 욕설을 퍼부었다. 그때 유리문으로 남자가 허겁지겁 들어왔다. 남자는 연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집사람이 좀 문제가 있어서요.’ 하고 말했지만  그 남자의 말은 오히려 일을 더 엉망으로 만들었다. 여자의 칼이 갑자기 내 쪽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무서운 속도로 달려왔다. 의자에 앉아있던 동료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여자가 바로 나를 향해 달려드는 순간, 남자가 여자의 손목을 잡아 낚아챘다. 칼이 멀리 나가떨어졌다. 남자는 여자를 잡아끌며 ‘왜 이래? 정말. 미치겠군.’ 하고 말했다. 하지만 여자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남자의 티셔츠를 잡아당겼다. 그 서슬에 남자의 옷이 반쯤 벗겨지면서 몸이 드러났다. 남자의 배와 가슴 쪽은 온통 칼자국으로 선연했다. 남자는 이번엔 여자의 목덜미를 잡고 문 쪽으로 이끌었다. 여자가 질질 끌려가며 나를 향해 소리쳤다. 

   “다시 우리 남편하고 말하기만 해 봐. 그럼 정말 죽여 버릴 거야.”

   그들이 나가자 그제야 동료들이 내 책상으로 몰려들었다. 

   “와, 이것 좀 봐. 온통 칼자국이야. 정말 끔찍해.”

   “저 여자 미쳤어. 작년에도 여기 와서 난동을 부렸잖아. 자기 남편에게 끼를 부린다고. 참내. 같잖아서.”

   남자의 상담기록카드를 찾았다. 가족관계 난에 이렇게 씌어있었다. 아내 정*자, 52세, 정신분열증으로 병원 치료 중임. 

   나는 남자와의 초기상담 때를 떠올렸다.   

   “주식투자에 실패했어요. 10억을 모으는데 5년 걸렸는데 10억을 잃는 데는 5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어요.”

  나는 이 남자를 계속 일하도록 놔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하였다. 의부증과 망상증이 심한 아내가 또다시 이렇게 행패를 부리면 업무방해는 물론이거니와 공적 기관의 체면도 우습게 된다.  

   자꾸만 와해되어가는 조직관리에 대한 해결책을 세우느라 이번 달만 해도 직원회의가 세 차례나 열렸다. 나는 칼자국으로 톱밥가루가 뽀얗게 올라와있는 책상 위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      

   

  주민 센터의 복지담당자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연락이 안 되네요.”

   자살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던 남자가 마음에 걸렸다. 남자가 목숨을 끊는다는 사실보다 자살을 방조한 혐의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앞섰다. 남자를 찾아다니는 시늉이라도 해야 자살로 인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담당자는 연신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툭 던지듯 말했다. 

   “이런 사람 뭐, 한 두 번 본 것도 아니고 분명히 술을 엄청 마시고 어딘가에서 퍼질러 자고 있을 게 분명해요. 거긴 한가한 모양인가 봐요? 우린 너무 바빠서 이런 사람의 집까지 일일이 찾아갈 수는 없어요.”

   할수없이 나는 남자의 주소가 적힌 쪽지를 들고 한참 동안 골목을 헤맸다. 죽은 지 한참이나 된 남자의 사체가 구더기와 파리로 들끓고 있거나 문 앞에 흥건하게 젖은 피가 연상되었고 무엇보다 피로 눌러쓴 유언장이 시퍼런 칼과 함께 반듯하게 놓여있는 것이 실제인 것처럼 또렷하게 떠올랐다. 

   다행히 남자의 현관문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마당에 우거진 잡초를 뽑고 있던 백발의 남자가 멍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남자의 이름을 대며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낮에는 뭐, 어디서 술을 퍼마시느라 집에 없어. 외상값 받으러 몇 사람이나 찾아왔던데…쯧쯧. 그래도 제 새끼는 귀한지 저녁이면 어김없이 기어 들어와서 아들 밥 챙기고 그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할 만큼 다했어. 여기까지야. 딱 여기까지.’ 나는 아들이라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 때문에라도 남자가 자살 같은 것은 절대 하지 못한다는 것에 주술을 걸었다. 또한 칼을 들고 쳐들어온 아내의 남편인 남자를 당장 중지시키고 그 자리에 이 부성이 절절한 남자를 참여시켜야겠다는 판단을 하였다.  이렇게 합리적인 일처리를 하다니, 나는 스스로 도취되듯 뻐기는 마음으로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러나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나의 오만함은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단칼에 두 동강 났다. 납처럼 굳은 표정의 센터장과 동료가 나를 쏘아보았다. 

   “결국 그 부부가 사고를 쳤어. 정말 소름 끼쳐.”

   동료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도대체 사례관리를 어떻게 한 겁니까? 빨리 알아보고  유선으로라도 바로 보고해요. 지금 시청에 들어가야 하니까. 이번 건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어요.”

   센터장은 허겁지겁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칼을 들고 쳐들어왔던 그 여자가 글쎄 남자를 찔렀대. 그리고는 자신도 칼로 찔렀다는 거야. 경찰이 갔더니 마당에 그 부부가 죽은 채 있었다는 거야.”

   “근데 의처증이 있었던 것은 남자였다고 하네. 남자는 마누라를 못살게 굴었고 그것을 못 견딘 마누라는 우울증이 심해져 정신병원에 들락날락했다는 거지. 요즘 남자가 일하러 다니는 것을 바람피우는 것으로 착각했던 거지. 당하고만 살았던 그 마누라가 결국 남편에게 복수한 거지 뭐.”

   “참내, 먹고살기도 빠듯한 사람들이 사랑싸움이나 하는 꼴이지 뭐야. 의처증이니 의부증이니 가난한 사람들에게 어디 될 법한 감정이냐고?”

   “그러니까 돈 있는 인간들이나 없는 인간들이나 다 이렇게 서로 못 믿어 탈인 거야, 안 그래?”

   나는 책상에 앉았다. 아프면 가난해지고 가난해지면 다시 아프고. 이게 진상인데 조사하고 보고할 게 뭐가 있다고. 나는 빈정대다가 책상을 또다시 유심히 바라보았다.  

   책상 위의 칼자국이 마치 군무처럼 느껴졌다. 남자와 여자가 처참한 얼굴로 칼춤을 추고 있다. 어느새 그들은 겹쳐지고 피가, 흥건한 피가, 온기도 없는 피가 비극의 결말처럼 위로처럼 보자기가 되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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