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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Oct 23. 2023

고라니

짧은 소설

            

    새벽 4시 30분,  3년 전 입소 때 입었던 옷과 모자, 운동화를 받았다. 걸어서 갈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송차의 교도관은 고개를 저었다. 버스터미널까지 이송하는 것이 그의 임무라고 말했다. 

   차창에 코를 박고 숨을 힘껏 들이켰다. 이제 더 이상 깊은숨을 참을 필요가 없는데도 습관이 된 것이다. 감방 안에서는 거짓말, 더러운 냄새, 속임수, 혐오, 배신, 따돌림, 수치심이 난무했고 이것을 견디기 위해서는 숨을 참았다고 이렇게 깊은숨을 몰아서 쉬어야 했다.

   도로는 한적하다. 드문드문 차가 지나갈 뿐 걷고 있는 사람은 없고 대신 개가 떼 지어 다니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송차는 시외버스터미널에 멈춰 선다. 검은 마스크를 쓴 교도관이 차에서 내리는 나를 보고 뭐라 말을 했지만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시외버스터미널 안에는 겨우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사람이 모두 마스크를 낀 채 띄엄띄엄 서 있거나 앉아 있다.  

    터미널 상가에 있는 낚시점 간판을 발견하였다. 나의 낡은 지갑엔 약간의 돈이 있다. 영치금 통장에도 얼마간 있을지 모르지만 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이 날 것이다. 텐트를 사고 버너, 냄비, 생수, 쌀, 사과, 김, 라면, 칼을 샀다. ‘나가면 무엇부터 먹을 건가? 산해진미에다가 소주를 진탕 마시고 계집을 품을 수 있으면 더 좋겠지.’ 감방 동기들의 왁자지껄한 말이 떠오른다.      

   시외버스터미널을 나와 도로를 가로질러 봄볕이 쏟아지고 있는 길을 따라 걷는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쯧쯧 하필이면 전염병이 돌 때 나가다니, 안 됐지 뭐야. 여기 안이 더 안전하겠군.’ 출소일이 가까워지자 동기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그는 입냄새가 심하여 입을 열 때마다 고개를 외면해야 할 정도였다.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래도 여기보다는 낫겠지. 전염병에 걸려 죽는 자유라도 있으니 말이야.’ 그들은 안전과 자유를 놓고 격정적인 말싸움을 하였다. 

   길 입구에 서 있는 이정표가 마을의 경계를 넘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포장도로와 흙길이 차례로 이어진 양 옆으로 산더미 같은 쓰레기가 쌓여있다. 비가 오지 않아서일까, 발을 움직일 때마다 흙먼지가 일어난다. 그늘을 찾아 작은 다리 아래로 향했다. 그러나 오물로 뒤덮인 아래는 역한 냄새가 났고 깃털이 흩어진 채 죽어 있는 비둘기가 있다. 다시 위로 올라왔다.

   멀리 전신주 사이로 교각이 길게 이어져 있다. 교각 아래에는 저수지가 있다. 뿌연 먼지에 휩싸인 산은 저수지에 온통 잠겼고 저수지의 물은 뻑뻑한 묵처럼 보였다.  그곳에 한 사내가 낚싯대를 걸어놓고 있다. 사내는 간이의자에서 일어나 움막처럼 쳐진 천막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이내 다시 나온 사내가 힐끗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뿐 사내는 내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교각 아래 세워져 있는 낡은 차 쪽으로 걸어갔다.  사내의 움막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텐트를 쳤다. 수변공원이라고 쓰인 낡은 팻말 아래 수도와 간이화장실이 있다. 여러 개 달려있는 수도꼭지에서 녹슨 물이 그렁그렁 거리며 흘러나왔다. 

   

 어느새 어둠이 짙어졌다. 절대 소등하지 않는 법이 없는 감방에서 잠을 자야 했던 시간은 이제 지났다. 텐트 밖으로 나가 오줌을 누었다. 그때 맞은편 쪽에서 개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한 마리가 짖다가 나중엔 여러 마리가 마치 이방인인 나를 겨눈 듯 내 쪽을 향해 일제히 짖어대었다. 한참을 짖고난  후에야 조용해졌다. 


나는 자유의 몸이 된 것을 이제야 실감한다. 이제 벌은 끝났다. 죄도 없고 벌도 없다. 감방 안에서 수없이 다짐했다. 밥을 짓고 사과를 깎는 것, 완전한 어둠 속에서 잠을 자는 것,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을 것, 오래도록 걷기, 돈이 없이도 오래 버틸 것.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 죽는다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을 것. 그러자 충만감이 일어났다. 자유의 숨결에 잠을 오래도록 이루지 못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개 짖는 소리에 눈을 떴다. 텐트 밖은 온통 안개로 자욱하다. 멀리 교각 아래 차의 전조등이 희미하게 보이고 개들이 짖어대고 있었다. 사내의 움막도 흐릿하게 보였다. 버너에 쌀을 씻은 냄비를 올리고 사과를 깎았다. 순간 개들이 짖는 소리와 함께 요란한 차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자동차 전조등 불빛 아래 여러 마리의 개들이 날뛰고 있다. 어느새 텐트 앞으로 온 개들의 입에는 피가 엉켜있고 그중 한 마리의 개는 작은 고라니를 물고 있다. 새끼 고라니는 축 늘어져 있다. 나는 개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고라니를 입에 물고 있던 개가 나를 향해 짖었다. 고라니가 툭 땅으로 떨어짐과 동시에 고라니는 피할 새도 없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넓적다리를 관통하였다. 개가 대가리를 흔들며 으르렁대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이를 나 또한 이를 악물었다. 

  

   그때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중년의 남자와 여자였다. 그들이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개가 나에게서 떨어졌다. 그들은 날카로운 휘파람으로 개들을 불러 차에 싣고 난 뒤 나에게로 다가왔다. 마스크를 쓴 남자가 말했다. ‘괜찮습니까?’  내 허벅지에서 흘러나온 피를 보자 사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뒤이어 여자가 쌀알이 나뒹굴고 있는 냄비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여자가 말했다.  

   “이런 곳에서 노숙을 하니까 우리 개가 덤벼들었지 안 그래요? 근데 마스크도 쓰지 않았네요.”

   남자가 나를 부축하며 차 쪽으로 가자고 하였다. 또다시 여자가 말했다. 

   “어디 태울 데가 있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차에서 약병을 가지고 왔다. 남자가 소독약을 내 허벅지에 뿌리면서 ‘우선 응급처치를 하고 난 뒤 병원에 가야겠네요. 아, 집에 저 아이들을 묶어놓고 와서 말입니다.’ 하고 말했다. 그때 한 사내가 나타났다. 바로 어제 낚시를 하던 움막의 사내였다.

   “결국 또 사고를 칠 줄 알았어. 내가 뭐랬어? 개들을 묶든지 입에 재갈을 물리든지 하라고 했지. 이건 범죄라고.”

   그러자 여자가 사내에게 소리쳤다.

   “고라니 사냥은 합법적인 거라고요. 개체수가 많은 것을 죽이는 게 무슨 범죄예요? 근데 왜 남의 일에 간섭이에요? 그때 충분히 보상을 해주었잖아요. 근데 여전히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네요. 저리 좀 가세요.”

   “지금 이렇게 싸울 때가 아니야. 당신이 개들을 묶어놓고 다시 와. 이 사람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해”

   “이 사람도 돈으로 해결하는 게 낫겠어. 어떻게 병원까지 왔다 갔다 할 거야? 길 위에 있는 인간들은 모두 정상이 아니야. 도대체 범법자가 아니면 이렇게 돌아다닐 이유가 없잖아. 이런 코로나 시국에 말이지.”

   여자의 말은 거칠고 컸다. 낚시 사내가 말했다.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여자가 정말 너무하네. 이번엔 병원이 아니라 경찰을 부르는 게 낫겠어. 이건 명백하게 범죄야. 맹견을 함부로 풀어놓았으니까 말이야.”

   그러자 여자가 욕설을 퍼부었고 어이없는 표정이 된  사내가  ‘이건 완전 정신병자군.’ 하고 말했다. 그러자 남자가 여자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뭐 해 , 빨리 차 몰고 가라니깐.”

   여자가 무섭게 눈을 흘기며 차를 몰고 갔다. 남자가 말했다. 

   “우리 애들 주사는 다 맞아서 병균에 전염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나는 남자에게 말했다. 

   “치료비만 좀 주고 가세요.”

   남자의 표정이 일순 복잡하게 바뀌었다. 마치 보균자를 대하는 것처럼 나에게서 떨어진다.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건가요?... 아, 지금 제 수중에는 현금이 이것밖에 없어요. 이걸로 끝인 겁니다. 여기 증인도 있으니까 다음에 경찰에 신고하거나 이런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남자는 돈을 던지고는 서둘러 차가 지나간 길을 따라 걸어갔다. 


사내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저런 것들은 우리 같은 사람을 병균 취급해. 아마 집에 가서 소독하느라 난리 칠 거야. 형씨는 소독하고 약만 며칠 먹으면 아물 거야. 나도 똑같이 그랬다니깐. 내가 저 집을 아니까 돈은 더 우려낼 수 있어. 바로 저 산 아래에 있는 매운탕집이거든. 아침밥은 내가 여기로 가지고 오겠소. 형씨는 소주만 사슈. 소독약으로 소주만 한 게 없으니까. 아 근데 저 새끼, 죽은 고라니는 우리 보고 어쩌라고 놔두고 간 거지. 이건 먹지도 못하는데. 일단 나는 고기가 물려 있는지 낚싯대 한번 보고 다시 오겠소.”

   사내가 움막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고 나는 고라니를 바라보았다. 고라니는 얕은 숨을 내쉬고 있다. 반쯤 감은 눈이 나의 눈과 마주쳤다. 나는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고라니가 죽을 때까지. 완전히 죽을 때까지. 가쁜 숨을 내쉬던 고라니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불현듯 잊고 있었던 나의 죄목이 생각났다. 폭행치상죄. 나는 부부의 집으로 가서 그들을 때리는 상상을 하였다. 얼굴을 주먹으로 갈기고 발로 짓밟고 두려움에 벌벌 떨며 살려달라고 매달리는 그들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나는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두려움과 서러움이 동시에 몰려들었다. 나는 부부가 사라졌던 굽은 길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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