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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Dec 18. 2019

죄책감의 반복

남에게는 좋은 사람, 나에게는



내가 이 글들을 쓰는 것은, 어떤 목적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이렇게밖에 쏟아낼 수 없는 것이 내 안에 꽉 들어막혀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자주 꾸는 꿈의 형태는 입안에 까슬까슬한 모래가 가득 차 있어 숨도 쉬기 어렵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은 것, 또는 눈을 뜨고 싶어도 눈이 떠지지 않아 앞을 허연 안개로만 보는 것이다. 그런 갑갑함이 지금은 어떤 물질로서 물리적으로 내 안에 들어있는 것 같다. 누구의 말마따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쓰는 일뿐이므로, 그러한 이야기들을 글로 옮기는 것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내가 기울였던 노력의 십분의 일도 기울이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그리 큰 마음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게 지금의 생각이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참 좋은 사람이지만, 그리고 호감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경우도 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자기중심적일 뿐만 아니라 자존감과 자신감도 강하다. 남에 대해 생각하는 공간이 뇌 안에 많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데, 자기 본인의 말대로 그게 대한민국 남자의 평균치라고 한다면 나는 그래도 그런 면에서는 여태껏 운이 참 좋았나 보다, 라고 생각한다. 평균 이상의 배려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왔으니 말이다.


내 기준이 십이고, 나는 십을 받기 위해서 내가 육일 때에도 팔과 구를 주었다. 그 역시 육이라 해도 칠이나 팔 정도의 노력은 기울여야 했다, 적어도 계속해서 서로를 배려하며 양방향의 관계라는 것을 만들어갈 생각이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의 기준이 그냥 육 정도였는지, 그 정도 크기가 그가 줄 수 있는 최선이었거나 또는 나에게는 육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사에서 오 정도를 주는 데 만족했다면, 나는 그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며 그것은 나 혼자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가 그리 탐욕스럽게, 외롭게, 괴롭게, 성가시게 굴었던가?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역시 그는 내 최악의 상상력을 따르는 사람이므로 나를 제멋대로에 불안정하고 성가신데 이제 별 것 아닌 한 사람, 으로 생각할 것 같다.


이런 식이다. 나의 문장은 언제나 자멸한다. 나의 생각이 최악으로 솟구치듯이 말이다. 나의 에너지, 펄펄 끓어올랐던 지독함과 간교함, 냉정한 마음을 그는 짐작도 하지 못할 것이다. 열 다섯 살 때를 지나 스물 다섯 살 때 내 인생을 또다시 반으로 접으면서 나는 덤으로 새 인생을 얻었고, 그때까지 익숙하게 여겼던 삶의 나쁘고 독한 유전자들은 많이 버렸다. 하필 그렇게 내 자존감이 부재했던 시기에, 나는 원래 자존감이라곤 없는 인물이었지만, 아예 나라는 존재를 새롭게 받아들여야 했던 시기에 그와 같이 무신경한 인물을 만난 게 참 운이 없었다. 그에게 내가 스물다섯 살에 참 아팠어, 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을 해 봤자 그는 내가 과장한다고 생각하거나, 감상적이라고 생각하거나,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 라고 생각하거나, 그런 얘기를 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내 자신을 설명해 납득시켜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지금 이 청결하고 무지한 상태에서 한번 최선을 다해보다고 생각했다.


그 결심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삼년이 넘으면서 이제 그는 나의 나쁜 특성 중 일부를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무신경하므로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고 그저 내 태도가 좀 짜증스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결심이 행한 대상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나는 그가 내 황폐한 자신감의 평원을 황무지로 만들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는 내가 갖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그의 말들과 행동들로 손상시켰다. 그러니까 그건 그가 나쁜 본성을 타고났다는 말이 아니라, 그저 나에게 나쁜 행동을 참 많이 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나에게는 나쁜 사람, 좋지 못한 사람이었고 악영향을 참 많이 끼쳤다. 아마 그가 강철 같은 무신경함을 가진, 그와 같은 성격의 상대를 만난다면 그런 사람은 아마 별로 그에게 휘둘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ㅡ 하지만 난 마찬가지로, 그런 사람은 아마 애초에 그가 자기에게 그렇게 함부로 굴도록 여지도 안 주었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나에게 어느 정도의 잘못을 힐문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이지, 내가 잘못한 건 아무 것도 없다. 내가 그의 말에 상처 받고 고민을 하고 한참 뒤에 이미 그는 까무룩하게 모든 것을 잊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내놓음으로써 그가 나에 대해 다시 오해하도록, 얘는 너무 예민해서 매사를 참 진지하게 생각하는구나, 라고 멋대로 생각하게 만든 것은 결코 내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나에게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그중 가장 큰 잘못은, 내가 내 자신을 싫어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직장 선배였던 시절에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 그 생각을 하면 안타깝다. 나는 좋은 사람을 실수로 잃었기 때문이다. 순간의 실수, 착각, 잘못된 대답 때문에 더 잘 알지 않아도 좋았던 사람을 더 잘 알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죄책감과 자기혐오를 갖다주었다. 왜 지금 분위기가 어색하지, 내가 무슨 말을 잘못 했나? 라고 끊임없이 내 자신을 의심하게 해 주었다. 왜 아무 말도 없지, 내가 무슨 말이라도 먼저 해야 하나? 라고 날 초조하게 만들어주었다. 내가 충분히 예쁘지 않아서, 내가 충분히 몸매가 좋지 않아서, 내가 더 어리거나 더 쾌활하지 않아서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사랑받지 못한다고, 그래서 나는 더 예쁘고 더 가슴이 크고 더 어리고 더 쾌활하며 더 유순하고 더 똑똑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해 주었다.


죄책감의 반복. 내가 더 잘해야 한다는 죄책감과 이대로는 버틸 수 없으니 헤어져야 한다는 죄책감의 순환고리. 이제 남은 것은 몇 개의 물건들이다. 내가 그에게 선물받은 후 한짝을 잃어버려 다시 새 것으로 몰래 샀던 에어팟, 그가 쓰지 않는다며 그때는 참 친절하게 주었던 스탠드 등과 탁자, 판도라 반지, 팔찌, 백화점에서 산 반지. 그 반지는, 나에게 이제 안정감을 기대해도 되는 건지, 라고 잠시나마 생각하게 만들었지만 역시 아니었다. 내가 한 번은 그의 집에 보내버렸고, 다시 박스째 받았지만 이제 그 물건을 주고 받는 데에도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 어차피 그에게 돌려줘 봤자 쓰레기일 테니까, 그가 다시 팔 수 있는 반지는 돌려주고 나머지는 내가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그에게 선물했던 애플워치, 시계, 이북 리더기, 가방, 더 이상 생각나지 않지만 그것도 돌려받을 생각은 없다. 그는 나의 많은 것을 망가뜨렸는데, 내가 정말로 그를 실감할 때는, 내가 그의 고양이에 대해서 너무나 무감하다못해 그 생김새도 생각하기 싫다, 고 그들을 미워하게 되었음을 느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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