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는 이번의 연애와 영화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것들 중에 가장 꾸준히 했던 것은, 여느 커플들과 다름없이 영화를 보는 일이었다. 나는 영화를 미친 듯이 좋아했다. 그는 자칭 영화 전문가라고 했으며 정말 한국 영화에 있어서는 스토리 적중률 90퍼센트 이상의 예리함을 보였다. 덕분에 나는 그동안 전혀,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한국 영화를 보았다. 외국 영화도 가끔은 보았는데 역시 그는 한국 영화를 좋아했다. 지금 영화관에 걸려 있는 영화 중에 비교하자면 포드v페라리와 백두산 정도의 선택 차이랄까.
이민기와 김민희가 나오는 영화도 같이 봤는데 별로 그 영화가 우리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최근에 본, 공효진과 김래원이 나오는 영화를 본 후 나는 새삼 김래원이 나왔던 다른 영화 ㅡ 프리즌, 해바라기 같은 걸 다시 보게 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그영화는 그냥 말 그대로 영화였다. 하지만 가끔은 영화 이상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책을 읽을 때에도 내 머릿속에 있는 걸 가져갔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예를 들면 식이장애를 겪었던 아멜리 노통브가 배고픔에 대해 서술한 배고픔의 자서전, 파리 오페라 무용학교(하필)에 들어간 무용수의 이야기를 쓴 로베르 인명사전이 그렇다. 열아홉 살에 남자친구이자 친구를 잃은 여자가 등장하는 노르웨이의 숲, 하나밖에 믿는 게 없다고 말하는 이상한 아이가 등장하는 낙하하는 저녁, 나쁜 유전자들.
그래서 우리의 연애는 언제나 라이크 크레이지 같았고, 온리 더 브레이브 같았으며, 결국은 레이디 맥베스나 몽 루아처럼 끝날 것 같다. 블루 발렌타인, 앨리노어 릭비처럼 끝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될 것 같다. 지독하게, 좋지 않게, 상처를 입고. 모두의 연애가 브로크백 마운틴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나는 단지 평탄하고 또 평탄한 시작과 끝을 희망했을 뿐인데 물론 잘 되지 않았다. 그런 평탄한 연애에 대해서는 재미가 없으니 그 누구도 영화를 만들지 않아, 라고 한다면 또 할 말은 없지만, 진득히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바라는 것이 그렇게 감상적인 기대인가? 일종의 윌슨주의인가?
라이크 크레이지는 원거리 연애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에 사는 남자와 영국에 사는 여자가 어학 연수 기간 동안 만나고 사랑에 빠지지만 영국 여자의 비자가 처리되지 않으면서 결국 원거리 연애에 들어간다. 쉽지 않다. 둘 다 다른 남자를, 여자를 만난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서 다른 남자와 잤어? 다른 여자와 잤어? 라고 물어본다. 그러다 결혼하지만, 잘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생각하고 또 예전에 만났던 다른 남자와, 다른 여자와 새 시작을 생각한다. 그 중에도 여자는 문자를 보낸다. 잘 지내? 보고 싶어. 분명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가 시간을 가지자고 했을 때로부터는 한 달 이상, 그가 헤어지자고 한 때로부터는 두 달 정도 지났다. 그 와중에 내가 보냈던 어리석은 문자들. 짜증스럽고 분노에 차 있으며 한편으로는 감정적이고 감성적이었던, 내 자신을 과장했던 이야기들. 외롭다는 이야기 말고는 다 거짓말이었을지도 모르고, 또는 그 당시에는 진짜였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나는 라이크 크레이지한 상태였을 테니까. 잘 생각해 봐, 니가 나를 좋아하는 건지 니가 나와 함께 있던 시간을 좋아하는 건지, 라고 말했을 때 나는 뭐라고 이 자식아? 라고 대답해야 했다. 그걸 굳이 말해야 아니, 당연히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거지.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멍청이가 아닌지 면박을 주어야 했다.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하기 때문에 상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인데, 시간을 갖자는 말은 헤어지자는 말의 무책임한 표현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헤어지자고 메시지를 보냈고, 정리할 거 빨리 만나서 정리하자고 보챘고, 그러다 나가떨어졌다. 만났다 헤어졌다 만났다 헤어졌다 우리가 대체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 영화의 안톤 옐친과 펠리시티 존스만큼 혼돈한 마음이 거기에 있었다.
물론 내가 그에게 시간을 가지자고 하기도 했다. 그에게 물건을 다 돌려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때 아예 헤어지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동시에, 나는 그가 결국 태도를 바꾸어 줄 것을 기대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세상에 누가,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여자친구/남자친구가 아니라 내 일이다, 라고 말하는 철딱서니이자 허세로 가득한 인간에게 그런 말을 듣고 하하 하고 웃어넘길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온갖 쿨한 척을 했지만 그러한 쿨한 척을 받아주는 나야말로 정말 쿨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야만 했다. 그가 밤새 누구와 술을 마시고 떡이 되든, 집에 남녀노소 친구들을 불러 새벽 네시까지 술자리를 벌이든, 또 친구들과 강원도 펜션에 가든 일본 여행을 가든 어디를 가든, 재밌겠다 잘 놀다 와, 또는 맛있겠다 많이 먹어, 로 일관하는 내가 그에 비할 바 없이 쿨한 사람이었다. 그의 집에 누가 자든, 그가 남자 둘 여자 둘 짝을 맞춰 일본으로 가든, 도대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정말로 상관없었다. 하물며 그가 온갖 허세와 고민에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 나는 언제나 내 일이 더 중요해, 따위로 지껄이더라도 솔직히 그게 도대체, 대관절,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다만 나는 내가 필요할 때, 내가 필요로 하는 만큼, 어느 정도는 나의 사람이 되어줄 만한 사람이기를 바라왔을 뿐이었다. 마치 온리 더 브레이브의 제니퍼 코넬리가 일갈하듯이. 당신은 언제나 핫샷 소방관으로 구십 퍼센트의 삶을 살고 나머지 십 퍼센트는 나한테 내어줄 듯 말 듯 하지, 하지만 나에게는 그게 부족해. 나도 그랬다. 나는 그가 친구들에게 다 베풀고, 직장 동료들에게 다 베풀고, 저녁 약속도 없고 운동도 가기 싫고 야근도 없는데 술은 마시고 싶은 날에 마지막 보루로서 만나는 사람, 그가 사는 동네로 지금 저녁 먹을래? 와서 술 마실래? 라고 문자를 보내면 재깍 오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느낌 그 이상이 필요했다. 내가 벌써 밥 먹었어, 라고 대답하면 나중에 왜 너는 날 혼자 술 마시게 만드냐, 라고 뚱하게 대답하는 사람, 그러다가 또 다음에 저녁을 같이 먹을 땐 난 내 인생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건 싫어, 나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더 나은 대접을 받고 싶었다. 나는 내가 호출을 기다리다 전화 한 통에 불려가는 서비스 걸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과장이 아니었다. 저녁 내내 피곤해, 술 못 마시겠어, 요새는 술이 안 취해, 라는 말을 듣고 있다 보면 그런 생각은 부지불식간에 찾아왔다. 지금 생각해도 그는 대체 왜 나에게 그 이상 내어주기를 힘들어했는지 대관절 모르겠다. 이기적이고 일 중심적인 사람, 친구들에게 모든 시간을 내느라 다른 사람과는 관계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온리 더 브레이브의 조쉬 브롤린처럼 제니퍼 코넬리를 위로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몽 루아, 세상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경박한 남자로 나오는 뱅상 카셀과, 그와 잠깐 사랑에 빠지다 못해 결혼까지 해 버린 엠마누엘 베아르를 생각한다. 몽 루아, 나의 왕. 엠마누엘 베아르에게 뱅상 카셀은 아주 잠깐 동안 세상의 왕이었고, 나머지 시간 동안은 골치덩이였으며, 세상에 다시 없는 원수였다가 결국 아무 것도 아닌 병존의 존재가 되었다. 그 역시 내 세상의 기분을 좌우했고, 내 자존감을 뒤흔들었고, 내가 사랑받는다는 찰나의 착각과 결국 나는 별 것 아니라는 제대로 된 통찰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그와 한 번쯤 몽 루아를 같이 보고 싶었다. 그는 프랑스 영화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진저리를 쳤다. 내가 그걸 왜 봐. 내가 왜, 라는 말 역시 그가 즐겨 쓰는 단어였다. 뭐래, 뭐라는 거야, 그래서 뭐, 내가 왜. 나는 종종 그런 단어를 저주했다.
블루 발렌타인의 환멸은 이미 지겹게 겪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그에 비하면 차라리 너무 현실적이고 또 안정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어차피 그가 나를 현실의 존재로 충분히 진지하게 여긴 적이 없었기 때문에, 레볼루셔너리 로드와는 비교할 따위도 안 된다. 다만 나는 결국 남자 라이언 고슬링을 경멸하는 미셸 윌리엄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간 뒤 혼자 있는 레이디 맥베스의 표정은 폐허라기보다는 차라리 고요이다. 혼자로서 더 평화롭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