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그가 헤어지자고 한 지 2주째, 오늘 만나서 커피 마시면서 얘기 좀 할까, 라고 했을 때 그는 일박으로 속초에 가자고 했다. 지금 야구 하고 왔는데 챙기고 있을 테니까 속초 갈 준비해서 집으로 와. 속초에서 새우튀김과 회를 먹었고, 방파제에서 낚시 하는 사람들을 구경했고, 숙소로 돌아와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다가 잤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낙산사에 들렸다. 양양에서 서울로들어오는 길은 역시 복잡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들어간 휴게소에서 나는 푸드코트에서 나눠주는 번호표를 쥐고, 계속 번호가 스크린에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떡볶이와 순대, 돈까스, 김밥, 이것저것 시킨 것들이 나올 것이었다. 새로 지은 휴게소는 몹시 컸고, 김밥이 먼저 나왔다. 나는 얼른 일어나 김밥을 받아왔다. 나머지 번호표도 내가 들고 있다고, 번호가 뜨는 대로 받아올 거라고 했다. 번호표 어디 있는데? 그가 물었다.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고, 순간 내가 김밥 가게에 다른 번호표까지 다 집어넣는 멍청한 짓을 했나, 라는 생각을 했다. 어 잠시만, 하고 뒤적거리니 다행히 다른 손에 있었다. 여기 있다, 라고 하면서 내가 가져오겠다고 하니 그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오버 좀 하지 마. 내가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음식을 가져오는 게 오버스럽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메뉴가 다 나와서 밥을 먹었다. 돈까스는 나쁘지 않았다. 나는 식사하면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싫어하는 데다가, 어차피 우리는 서울에서 속초로 가는 길에는 <롱 리브 더 킹>을 봤고 속초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는 <멜로가 체질>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처럼 음악을 듣지 않았고 서로 얘기도 별로 하지 않은 상태였다. 답답했다. 기껏 속초까지 왔는데 대체 헤어지자는 얘기는 어떻게 된 건지, 그냥 이렇게 흐지부지되는 건지, 그 전 주에도 그의 집에서 <눈이 부시게>를 끝까지 보면서 결국 대화는 하지 못하고 내 집으로 돌아왔고 일주일 내내 카톡창에 대답하지 않다가 주말에 만나자, 는 말에 속초로 온 건데 답답했다. 헤어지자, 라도 소리내어 말해도 상관없었다. 그냥 만나자, 라고 말해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대화는 두 사람이 하는 것이고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두 사람의 일이니까, 서로 얼굴을 보면서 얘기를 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마무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대체 마무리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소리내어 말하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너도 마지막 순간까지 얘기하지 않다가 그냥 프랑스로 가려고 하지 않았느냐고 누군가, 내 속에 들어앉은 누군가 그렇게 대놀고 묻는다면, 나는 궁색하게, 나는 결국 그렇게 하지 않고 그에게 말한 후 한국에 남지 않았느냐,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는 이유로, 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해 주길 원해? 라는 타박과, 그래서 프랑스는 언제 가는데? 라는 물음과, 나도 내 인생을 어떻게 살지 모르겠는데 무슨 말을 해, 라는 또다른 타박. 그리고 내가 끝내 가지 않기로 했을 때는 대체 왜 안 간 건지, 한심해하는 물음, 설마 자기 때문에 안 간 것이며 그로 인해 자신의 인생에 짐이나 책임, 어떤 기대가 내려앉게 되는 것은 아닌지 초조해하는 성마른 표정, 미움을 돌려받았다.
‘이제 그만하자. 너는 내가 필요할 때 늘 없었어, 결국 인생은 혼자 사는 거라는 것을 깨달은 요즘이야, 너도 혼자 맘 굳세게 먹고 계속 멋대로 살아.’
이러한 카톡 메시지를 돌려받았다. 전화해도 받지 않는 무응답, 볼썽사납게 찾아갔다가 쫓겨나는 창피함을 돌려받았다. 그 발단은 소주 마시고 싶다, 라는 그의 말 한 마디였다. 그날 나는 아빠가 서울에 올라온 터에 아빠와 전날 인사동에서 저녁을 보내고, 아빠를 다시 서울역으로 배웅하면서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나도 그의 부모님과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별 것 아닌 꽃도 사 드리고 했는데, 그도 내 아빠가 서울에 올라왔을 때, 하필 한남동에서 놀고 있을때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커피 한 잔 마셨으면 했다. 동생은 싫다고, 불편하다고 질색팔색을 했지만 그렇게 그를 만나고 나면 언제나 나의 인생과 생사고락의 여부에 조마조마해온 아빠가 안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꼭 가야해? 불편해, 라고 했고 주말 내내 아무 말도 더 없었다. 엄마가 올라왔을 때에도 엄마가 나 보신대? 불편해, 라고 했던 그는 내가 불편하고 내가 부담스러운 것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의 잔소리를 대신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또는 그냥 정말 단순한 이유로 주말에 부모님을 뵙긴 뵈어야 하는데 나와도 보아야 할 것 같으니 일타이피로 시간을 보낼 방법을 강구하였던 것일까? 나는 유치하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나 보다. 우리 엄마 아빠 일생에 나의 결혼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것 같아? 우리 엄마와 아빠는 나에 대해서는 그 생존에 대해서밖에 생각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인데, 당신에 대해서 과연 어떤 생각이라도 갖고 있을 수 있는 사람들 같아?
소주 마시고 싶다, 라는 말에 나는 아빠를 배웅하고 왔다고, 준비해서 한남동으로 갈까, 라고 했다, 일곱 시 반이었다. 또 잠을 자는지 아무 대답이 없었고, 삼십분 정도 기다리던 나는 지쳐서 쏘아붙였다. 배고파서 밥 먹을래, 그리고 아빠가 보면 좋아할 것 같아서 부탁한 건데 그게 그렇게 멀었어? 그가 답장했다. 이제 그만하자. 결국 그가 저녁에 소주를 마시면서 할 말도 그거였을까. 아니, 얼굴을 보고서는 절대 말하지 못했겠지만, 다만 평소와 같은 냉대와 막말, 비웃음으로 나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헤어지자는 말을 얼굴에 대놓고 할 용기는 없지만 그 외에 모든 지독한 말들을 할 수 있는 사람, 그 어떤 책임도 지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나는 확신한다.
결국 휴게소에서 식사를 하다 또 뚱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어느 한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앉아있는 그에게, 뭐 봐? 뭐 있어? 라고 물었다. 그가 짜증을 냈다. 내가 그런 것까지 얘기해야 돼? 나는 대체 내가 뭘, 이라고 짜증을 내지 않고 그냥, 거기를 계속 보고 있길래 뭐가 있나 싶어서, 라고 사과를 해 버렸다. 집에 가는 길 차 안이 불편해질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생각해 보니 어색한 걸 견디지 못하고 극도로 싫어하는 나의 태도가 모든 걸 다 망쳤던 것일까? 처음에 그와 어색해지지 않기 위해 사귀자고 할 때 사귀고,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고, 싫은 말들을 참고 넘기고, 그의 부모님을 만나러 가지는 말에 그러자고 하고, 부암동 치킨집에서는 그에게 요새 회사 일이 힘들어서 어떡해, 라고 말하다가 너 그거 무슨 뜻으로 하는 얘긴데, 라는 공격을 듣고, 그래서 울다가 여자가 울면 짜증나, 라는 말까지 듣고, 아니면 이것은 또다른 나의 자멸과 자책일까? 모든 것은 온전히 막말로 무장한 그의 탓일까?
서울로 돌아왔고 그는 또 카톡이 없었다. 여기 나 혼자 말하는 방인가 봐, 라는 내 카톡에 그는 우리 시간을 가질까? 라고 말했다. 그때도 늦지 않았었는데, 짜증나니까 그냥 그러지 말고 우리 헤어지자, 라고 했어야 했는데 나는 또 어색한 게 싫어서, 쿨해 보이고 싶어서, 또는 정말 미련이라는 것이 남아서, 또는, 내가 이 관계에 실패했다는 패배감에 젖는 것이 두려워서, 그래, 시간을 가지자, 라고 대답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