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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용선 Sep 13. 2019

김기택 시 ‘껌’

제 역할을 다하고 버려진 존재

누군가 씹다 버린 껌.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껌.

이미 찍힌 이빨자국 위에 

다시 찍히고 찍히고 무수히 찍힌 이빨자국들을

하나도 버리거나 지우지 않고

작은 몸속에 겹겹이 구겨 넣어

작고 동그란 덩어리로 뭉쳐놓은 껌

그 많은 이빨자국 속에서

지금은 고요히 화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껌.

고기를 찢고 열매를 부수던 힘이

아무리 짓이기고 짓이겨도

다 짓이겨지지 않고

조금도 찢어지거나 부서지지도 않는 껌.

살처럼 부드러운 촉감으로

고기처럼 쫄깃한 질감으로

이빨 밑에서 발버둥치는 팔다리 같은 물렁물렁한 탄력으로

이빨들이 잊고 있던 먼 살육의 기억을 깨워

그 피와 살과 비린내와 함께 놀던 껌.

지구의 일생 동안 이빨에 각인된 살의와 적의를

제 한 몸에 고스란히 받고 있던 껌.

마음껏 뭉개고 갈고 짓누르다

이빨이 먼저 지쳐

마지못해 놓아준 껌.      




  문득 발견한 것을 비밀을 캐듯이 곰곰 응시하고 마침내 전면적으로 다시 보게 하는 힘. 시인이 시로써 발휘한 인식력을 맛보는 재미. 김기택의 거의 모든 시가 그래왔듯이 이 시 또한 그렇다. 

  잇자국이 그대로 보일 만큼 무심히 뱉어 버린 껌이 있다. 종이로 깨끗하게 싸지도 둥글게 뭉치지도 않은 껌. 쓸모를 다하지 못하고 버려진 느낌이 역력한 껌. 바로 이 점이 시인의 눈길을 끌었으리라. 잇자국이 아닌 이빨자국이라 쓴 점도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인다. (이빨자국은 사람에게 쓰는 표현이 아니다.)

  껌 하나에 몇 번 정도 씹는지 세본 적은 없지만 껌을 씹으며 이가 부담스러울 정도가 되려면 이미 입안에서 딱딱해진 뒤다. 하지만 어지간해서 그렇게까지 씹어대는 사람은 드물다. 껌을 씹는 사람은 그야말로 맘껏 씹으며 제 잇자국을 찍어댄다. 껌은 그 많은 자국을 그대로 받아내며 겹겹이 제 몸에 구겨 넣는다.

  시인은 제 역할을 다하고 버려진 껌은 ‘화석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라고 쓴다. 잡식동물인 인간은 고기를 찢고 열매를 부수며 먹고산다. 이러한 식성에서 시인이 보는 것은 인간의 유전자에 깊이 새겨진 역사 곧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 깊이 새겨진 살육의 기억을 껌이 일깨워 그 기억 속의 피와 살과 비린내와 ‘함께 논다’고 쓴다.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지구의 일생 동안 이빨에 각인된 살의와 적의라고 쓴다. 엄청난 과장 같지만 진화의 원리를 염두에 둔 일리 있는 논리 전개이다. 

  이쯤 되면 껌은 더 이상 문명이 만든 일개 음식물이 아니다. ‘곰곰’ 보고 ‘다시’ 보니 껌은 지구의 역사를 제 한 몸에 받아내고 마침내 승부에서 이긴 승리자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게서 둔중한 시간의 흔적을 찾아내고 버려진 것에서조차 역설을 찾아내는 시인의 승부근성이 잘 드러난 좋은 시이다. 

  (유용선 記)





김기택. 1957년 경기도 안양 출생.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소>, <껌>, <갈라진다 갈라진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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