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아무르 Feb 04. 2024

탄생의 이유

“엄마. 우주는 어떻게 생겨난 거야?”


과학에 문외한인 내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어디서 빅뱅 이론이란 걸 들어본 것은 같은데 생각나는 건 쉘든하고 레너드뿐이고.


“엄마도 잘 모르겠는데. 우리 인터넷에서 같이 찾아볼까?”


인터넷에는 수많은 설명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다섯 살 아이 수준에 맞는 설명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쉽게 설명해 줄 방법이 있을까 검색하다가 미국 철학자 짐 홀트의 강연을 보게 되었다. 그는 “왜 우주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강연의 내용과는 별개로 왜 존재하는가를 물으니 왜 탄생하는가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강연의 내용과 별개인 이유는 내게는 전부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렇게 지적인 인간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인가)



짐 홀트는 우리의 존재가 놀랄 만큼 비현실적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유전적으로 가능한 사람의 숫자가 엄청나기 때문인데, 10의 10,000승만큼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 존재했던 사람의 수는 천억, 어쩌면 오백억이므로 극히 적은 비율이란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가 모두 엄청나게 놀라운 우주의 복권에 당첨된 것이라고 말한다. 


1981년 9월, 그 우주 복권에 당첨된 여자아이 하나가 탄생한다. 그 아이의 탄생으로 부모가 행복했는지 아닌지는 직접적인 표현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 아이는 자신의 탄생에 기뻐한 적이 별로 없다. (물론 돌아보면 태어나길 잘했던 시간도 꽤 있었지만, 당시에는 보지 못했다) 탄생의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대부분 시간을 버티며 살다가 버티기 힘드니 도망가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고 느낄 때쯤, 신기하게도 없을 것 같던 도피처를 찾게 된다. 도피처와의 관계의 탄생은 더 많은 것을 탄생시킨다. 여자아이는 아내로 탄생하여 새로운 인물들과 가족을 이루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우고, 다른 존재를 탄생시킨 엄마로 탄생하며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맛본다. (그전에 느낀 쓴맛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다음은 이전에 탄생한 자아가 죽어가는 것을 보며 괴로워하는 가정주부로 탄생했다가 그래도 아이들의 미래는 지키고 싶어 자연 친화적 소비자로도 탄생한다. 그다음은 늘 시간과 돈에 쫓기는 어른으로 탄생해 그렇게 원망하던 친정부모님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수많은 탄생을 겪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면 내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세상이 굴러가는 이치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은 수식처럼 딱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예측할 수 없는 무한한 변수에서 우리는 배움을 얻는다는 것. 아마 나는 계속해서 무언가로 탄생할 것이다. 최초의 탄생과 다르게 이 탄생들을 나의 의지를 어느 정도 버무릴 수 있다. 얼마나 의지를 버무리느냐에 따라 그것이 내 인생을 가치 있게 하는 무엇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