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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아무르 May 26. 2024

오십이 되면 친해진 공간 하나 생길까

나는 공간과 친해 본 적이 없다. 처음으로 독립해서 원룸에 살 때, 나만의 공간을 만든답시고 좋아하는 그림엽서도 붙이고 해보았지만 여전히 그 공간에 애정을 갖지는 못했다. 그림엽서를 붙인 그 벽은 좋아했지만 그뿐이었다. 텅 비어있는 커다란 하얀 벽에 조그마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내 취향들이 외로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밤 눕는 침대마저도 아늑한 기분보다는 여행지 숙소 침대에서 자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침대에 누워 잠들지 못한 채 뒤척였던 밤들이 가득했다. 


부모님과 같이 살던 집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늘 독립을 꿈꿨다. 나만의 공간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만의 공간을 갖기 위해 늦게 자는 것을 선택했다. 모두가 잠든 시각의 고요가 바로 나만의 공간이었다. 


나는 왜 마흔이 되도록 친해진 공간 하나 없는 걸까 생각하다 보니 내가 느린 사람이라서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한 곳에서 오래 머무른 적이 없다. 중학교 때까지 일이 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녔다. 친해지고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했는데 나는 또 적응에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전학 때문에 긴장하고 심란해하던 감정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래서 한 때는 고향을 가졌거나 어린 시절 한 동네에서 오래 지낸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내게는 공간에 얽힌 감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가서야 겨우 삼 년을 통째로 한 학교를 다녔다. 그러고 나서도 몇 번의 이사가 있었지만 내게는 더 이상 우리 동네, 우리 집은 중요하지 않았다. 공간에 정을 주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에 온 지 십 년이 되었다. 대략 5년 동안 나는 여행자 같은 삶을 살았다. 내 짐은 캐리어 두 개가 다였다. 가구가 모두 구비되어 있는 원룸이나 하숙집을 찾아 세 번의 이사를 했다. 그러다 님의 집에 정착해 2년 반을 살다가 지금의 집에 이사 와서 산지 4년이 조금 넘었다. 아마 이 집에서는 오래 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이 각자의 방을 가지고 싶다고 아우성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여태껏 프랑스에는 우리 집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도, 첫 아이를 낳고도, 내게 우리 집은 한국에 있는 부모님 댁이었다. 그러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오고 둘째 아이를 낳고 나니 자연히 지금 사는 집이 우리 집이 되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친정집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이 집이나 동네나 내가 사는 나라에 애정을 가지지 못한다. 나는 한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이방인이다. 한국 사람도 프랑스 사람도 아닌 낀 사람이 된 기분인데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다는 이 느낌은 꽤 이상하면서도 외롭다. 물론 나를 정의하는 것이 내가 사는 나라나 내가 태어난 나라일 필요는 없다. 국적, 성별, 가정에서 가진 이름, 사회에서 가진 이름 등을 다 지우고 그저 나로 존재하면 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슬프기도 하다. 30년을 사귄 친구와 10년 만에 만났는데 서로 영 어색하고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의 실망감이라고 하면 좋을까. 프랑스에 우리 집이 있다고 말하는데 10년이 걸렸으니 이 집에서 10년을 살면 애정이 생기려나. 내가 선택해 만든 가족들이 함께 또는 따로 이야기를 만들어갈 이 집. 바로 우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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