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아무르 Apr 28. 2024

아빠의 노트와 카메라, 그리고 나의 아이

     결혼 전, 방을 정리하다가 아빠의 낡은 노트를 보게 되었다. 몇십 년은 되어서 종이가 누렇게 바랜 노트였다. 내가 아는 아빠는 무뚝뚝하고 고지식하며 엄한 사람이었다. 영화와 음악을 그렇게도 좋아하는 딸에게 영화관 구경을 시켜주기는커녕 공부를 이유로 주말의 명화를 금하셨다. 나를 처음으로 영화관에 데려간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중학교 단체 관람이었고, 나는 문화적 취향과 경험을 오로지 혼자 일궈갔다. 


     아빠는 은행에서 일하셨다. 대부분의 아빠 세대가 그렇듯 회사에 일생을 바쳤고 가정은 등한시하셨다. 저녁 식사라도 같이하는 날은 무조건 9시 뉴스를 봐야 했다. 주중은 그렇다 치고 주말이라도 오락 프로그램 봤으면 좋겠건만 아빠는 그런 유치한 것들은 뭣 하러 보냐며 다시 뉴스로 채널을 돌렸다. 내게 아빠는 사회, 정치, 경제 그리고 일밖에 모르는 심심하고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오만하고 경솔했지만 그랬다. 그때의 나는 나의 열정만이 대단한 줄 알고 사는 눈먼 청춘이었으니까. 


     아빠의 노트에는 시인지 산문인지 정의할 수 없는 글들이 정갈한 글씨로 적혀있었다. 때로는 서정적이고 때로는 격정적이었다. 그 후로 나는, 눈먼 내가 보지 못했던 아빠의 모습을 차근히 발견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대학 시절 쓰던 니콘 FM2 카메라는 아버지의 것이었다. 아빠는 옛날 사람이니까 수동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문득 아빠도 나처럼 사진에 관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회사와 자식에 온 시간을 할애하느라 그걸 들고나갈 시간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아빠는 항상 음악을 들으신다. 클래식, 오래된 팝이나 한국 가요가 아빠가 자주 듣는 음악이다. 아빠가 음악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빠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라디오를 트는 것이다. 나는 그런 아빠를 무심히 지나치고 내게 엄한 아빠만 눈 속에 담아두었다. 나와 관련된 아빠의 모습은 기억하면서 개인으로서 아빠의 모습은 무심히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아빠가 개인으로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아빠는 엄청난 독서가이기도 하다. 집에는 너무 많아 자리를 찾지 못한 책들이 수두룩하다. 어째서 집 구석구석 자리를 차지한 책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아빠가 듣던 음악들이 왜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아빠에게 어떤 사진을 찍으셨냐고 물어볼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아마 나에겐 내 삶이, 휘몰아치는 내 감정들이 더 중요했나 보다.


     나도 아빠와 마찬가지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필름 카메라를 한 구석에 넣어두게 되었다. 이사를 하고 짐을 정리하던 어느 날 님이 그 카메라를 꺼내 장식용으로 두자고 했다. 나는 이제는 쓸모없게 된 (?) 그 카메라를 보며 선뜻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그 카메라에 첫째 아이가 관심을 보였다. 나는 아이에게 사진 찍는 법을 알려주었다. 아직 한쪽 눈 감는 것도 잘 못 하는 아이지만 필름을 감고 셔터를 누르는 게 재밌는지 한참을 사진 찍는 흉내를 내었다. 아빠와 나만큼이나, 아니 훨씬 더 사진을 좋아하는 님이 그런 첫째 아이와 함께 카메라를 들고 놀아주었다. 아버지와 나의 젊음이 담긴 그 카메라를 좋아하는 첫째 아이를 보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아빠가, 본 적도 없는 젊은 시절의 뜨거운 아빠가 생각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