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텐>을 통해 디지털 이미지에 대해 생각해보다.
“100여년 전 영화가 탄생한 이래 약 네 새대의 감독들이 있었다. 첫 세대 감독들은 인생을 돌아보고 영화를 만들었다. 두 번째 세대는 첫 세대의 영화와 인생을 보고 영화를 만들었다. 내가 속해 있는 세 번째 세대는 1세대와 2세대의 영화를 보고 영화를 만들었다. 이들에게서 인생은 사라져 버렸다. 요즘 세대인 4세대는 어느 세대의 영화도 보지 않는다. 한 손에 영화들의 목록을, 다른 손에 테크닉을 들고 영화를 만든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텐`에 관한 열 가지 이야기(10 on Ten)>의 대사 중에서> [1]
100년전에는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기술이자 특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이미지의 시대에 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림, 사진, 영상등 이미지의 생산은 한결 단순하고 간결해졌으며 생산자의 범위는 확대되었다. 유투브등의 각종 영상 채널에 영상을 만들어 배포하는 예술가 지망생들이 늘어났으며 일상생활에서도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공유하는 것은 흔한일이 되었다. 또한, 디지털 매체의 발달로 인해 촬영 매체가 간소화되면서 영화와 조형예술의 경계도 모호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마티 디옵 Mati Diop 감독의 중편 영화 <천개의 태양, Milles Soleils> (2014)은 프랑스 국립 영화센터 CNC (Centre national du cinéma et de l’image animée)가 아닌 프랑스 국립 조형예술센터 CNAP (Centre national des arts plastiques)에서 지원을 받았다.) 이렇게 다양하고 경계가 모호한 영상의 시대 속에서, 화면에 투사되는 활동사진중 기술적인 재생과 독립적으로 창조적인 예술을 가리는 기준은 무엇일까?
영화는 현실과 관계가 깊다. 먼저, 그것은 현실을 재현한다. 영화가 막 탄생했을 당시 영화에 쏟아진 비판 중 하나는 다음과 같았다. “영화는 우리의 풍속, 실존에 매우 깊이 뿌리내려 있어, 그 고통이 진짜인지, 그 기쁨 또한 실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렌즈가 주의 깊게 포착한 미장센일 뿐인지 알 수 없다.” (1914년 Fantasio에 기고된 익명 독자의 말) 영화는 도둑놈에 협잡꾼이다. 영화는 우리의 진실한 감동을 훔쳐내어 이를 인위적인 정서로 대체하는데, 이 정서는 우리의 삶 자체가 영향을 받아 변화될 수 있을 만큼 진실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2]
다음으로, 현실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영화는 현실에 의존한다. 현실을 재현하기 위해 영화는 현실을 대상으로 삼고 그것을 기록한다. 그중 시간, 계절, 장소, 인물의 신체적 특징등의 자연적 요소는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다. 자연이 원하는 조건을 만들어 줄때까지 영화 제작자들은 기다려야하며, 자연이 그 조건을 앗아가기 전에 서둘러 기록을 마쳐야한다. 영화의 등장인물로 허리가 굽은 노인을 원한다면, 인간은 그림을 그릴때 처럼 그 인물을 창조할 수는 없다. 그 인물이 나타날때까지 찾아헤매야 하는 것이다.
현실의 조각들을 모아온 뒤에는 그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감독의 의도에 따라 그것들을 조직한다. 즉, 영화는 재조직된 현실 조각들의 반영이며, 이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에 대응해 행동하게 한다.
현대영화는 디지털 이미지의 발생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핸드폰이나 비디오 카메라에 의한 개인 비디오, 유튜브, 감시 카메라 이미지, 비디오 게임 이미지등 수 많은 다른 종류의 이미지들이 생겨났고 이 이미지들은 영화 이미지에 점차적으로 침투하게 된다. 리들리 스콧의 <마션> 의 경우, 주인공 맷 데이먼이 지구에 있는 나사의 요원들과 대화하는 장면이나 혼자 비디오 일기를 남기는 장면에서 디지털 이미지를 발견 할 수 있다.
사진이나 영화는 현실을 차용하거나 흔적을 기록하는 매체이지만, 디지털 이미지는 이 세상을 숫자와 픽셀로 만드며 기록한다. 이렇게 변환된 이미지는 조작하거나 상영을 하는데 유용하다. 이미지를 조작하기위해서는 디지털화는 필수이다. 필름으로 촬영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디지털화 해야지만 색보정이나 특수효과가 수월하게 가능하다. 디지털 상영은 필름을 파일로 만들며 영화를 비물질화한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의 현실은 이미지로 대체된다.
영화가 탄생했을 당시, 영화에 쏟아진 비판중 하나는 어리석음, 정신적, 문화적 숭고성의 결여였다. 1914년,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그리고 문학 평론가였던 레미 드 구르몽 Rémy de Gourmont 은 이렇게 말했다. “시네마토그래프의 과오는, 소위 교육적인 흥행물조차 별로 지성을 향상시키지 못한다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극영화와 문학적 영화 – 이렇게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 에 대해 말하자면, 이것은 완전히 황당무계한 학교이다.”[3]
초기 영화를 향해 있던 이 비난은 현재 디지털 이미지로 방향을 틀었다. 특히 개인이 찍는 비디오나 인터넷의 수 많은 영상들은 현실을 보여주기는 하나 그것에 대한 고찰이 없다. 즉, 이 이미지들은 꼭 보아야할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들은 그저 찍는 사람을 위한 영상일 뿐이다.
하지만 현재 영화계는 디지털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반가워하는 편이다. 조지 루카스는 "디지털 영화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면서 "스타워즈 시리즈를 처음 찍을 당시엔 불가능했던 것들이 이젠 가능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스타워즈>에 나오는 '요다'이다. 처음 <제국의 역습>에 나올 당시만 해도 요다는 인형으로 만들어 많이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클론의 공격>에 등장한 '디지털' 요다는 전투 장면에까지 등장할 수 있었다. 또한 고공액션등의 위험한 액션을 연출하거나 많은 수의 엑스트라가 필요한 경우, 현실에 기대지 않고서도 디지털 이미지를 이용해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현실에 의지하던 영화 이미지는 수학으로 변신해 숫자가 된다. 그리고 이 이지털 이미지는 현실을 비물질화한다.
이제 현대 영화는 외부의 이미지인 디지털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며 다양성을 추구한다. 필요에 따라 영화적 이미지 사이에 감시카메라 이미지, 인터넷이나 페이스북에서 가져온 듯한 이미지등을 모방하여 현실감과 생동감을 보여주려한다. 물론 이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다만 현대사회에서 디지털 이미지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가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어버린 디지털 이미지를 배제하기란 힘든 일이 되어버렸을 뿐이다.
디지털 이미지는 우리가 원하는대로 이미지를 조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영화적 이미지처럼 현실로부터 이미지를 포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미지를 변신시키고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해주며 설령 현실이 포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새로 창조할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우리는 현실에 덜 의지하고 이미지를 만들 수 있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매트릭스>, <스파이더 맨> 같은 수 많은 액션, S.F 영화, 더 나아가서는 3D영화가 탄생할 수 있게되었다.
반면, 전통적인 영화적 이미지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이미지들은 영화적 이미지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가령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마지막까지 딥 포커스를 쓰지 않았다. 그는 렌즈에 의한 왜곡이나 카메라의 움직임에 의한 개입을 거부하며 마지막 여섯 편의 영화에선 멈춰선 카메라를 사용했으며, 영화 이미지는 결국 실재 형상의 표면만을 담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영화의 스크린이 2차원이기 때문이었다. 오즈 야스지로는 2차원의 스크린에 3차원의 이미지를 담아낸다고 해서 그 3차원의 깊이를 담아낼 수 없다고 믿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카메라와 렌즈의 효과를 넘어서 디지털의 기술로 만들어낸 조작된 현실은 결국 거짓이 된다.
이와는 반대로, 디지털 이미지가 오히려 영화적 이미지보다도 더 현실을 날 것으로 보여줄 수 있는 매체라고 주장하는 영화인들도 있다. 영화는 다른 예술분야와 달리 상당한 자본과 인력이 필요하다는 특징이 있다. 즉, 영화적 이미지는 현실 뿐 만 아니라 돈과 인력에도 의존한다. 이렇게 많은 제약이 있다는 것은 매체에 대한 접근성이 낮으며, 이 모든 제약을 넘어서는 소수 만이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 이미지는 영화에 새로운 자유를 가져다 주었다. 디지털 카메라는 필름이 필요없으므로 더 적은 비용으로 영화 제작을 가능케했으며, 일정시간이 지나면 촬영을 중단하고 필름을 교체해야하는 필름 카메라의 시간적 제약에서 자유롭게 해주었다. 또한 필름 카메라에 비해 가볍고 작아서 이동성이 좋으며, 눈에 띄지 않는다. 이로써 작가는 현실을 좀 더 오래, 피사체의 거부감 없이 관찰 할 수 있게되었다. 이런 이유로 시작된 시네마의 또 다른 형태, 디지털 시네마. 이 디지털 시네마의 미학은 바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로부터 시작한다.
30년에 걸쳐, 키아로스타미는 시네마의 고전적 수단을 이용해 자신만의 촬영 방식을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감독으로서의 자리를 구축하도록 도와주었다. 예를들어, 최대한 간결하게 촬영된 이미지들은 수천개의 조각으로- 서술적인 요소, 아주 예민하고 감수성있는 요소, 조형적인 요소, 철학적인 요소, 도덕적인 요소...- 굴절하는데, 이들은 가장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영감을 받은 만남들의 효과이다. [4]
키아로스타미는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 신사실주의 (네오리얼리즘)와 가장 현대적인 실험들에 대한 경험을 쌓게되고, 이로써 시네마를 만드는 새로운 방식을 확립하게된다. 그리고 이는 우리로 하여금 디지털 시네마의 가치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선사해주었다. 키아로스타미는 사실성에 대한 새로운 체제 그리고 새로운 미학을 발견한 것이다. [5]
2001년에 개봉한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텐> (Ten)은 두대의 DV카메라를 운전석과 조수석에 각각 고정 시킨 뒤 샷의 사이즈 변화 없이 촬영된 영화이다. 시나리오는 존재하지 않으며, 출연하는 배우들도 창녀 역할을 빼고는 모두 비전문 배우이다. 감독은 하나의 상황이나 주제만 던져줄 뿐 대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이 비전문 배우들의 몫이다. 이 영화는 픽션과 다큐멘터리, 영화와 비영화의 경계에서 묘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에 존재하는 인공적인 구성이 이 영화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가공되지 않은 현실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네마 고유의 특징인 감독의 개입, 즉 다시 구성된 현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키아로스타미는 그간 영화 작업을 하면서 영화 장비들이 너무 부담스럽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새로운 도구인 작은 디지털 카메라 -DV가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DV는 작고 원하는 만큼 롱테이크로 촬영이 가능하다. 자동차에 오른 비전문 배우들은 키아로스타미가 준 상황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어느새 카메라의 존재를 잊고 대화에만 집중하게 된다. 필름 카메라와 다르게 중간에 대화를 끊을 필요도 없다. 아무리 롱테이크를 찍어도 금전적 부담은 적다. 이렇게 현실 속 대화의 흐름은 끊기지 않고 카메라에 기록된다. 만들어진 연기가 존재하지 않는 날 것의 신선함. 그는 새로운 기술 덕분에 현실과 인간을 존중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게 된다.
10번 에피소드. 아들은 이혼한 엄마와 논쟁을 한다. 아이가 보기에, 엄마가 이혼을 선택한건 참 이기적인 처사다. 게다가 엄마는 거짓말쟁이에 소리만 지른다. 아들과 엄마는 논쟁을 하던 중 어색하게 대화가 끊긴다. 이 에피소드에 엄마는 등장하지 않는다. 관객은 아들의 모습만, 샷의 크기 변화 없이 롱테이크로 보게된다. (시간의 축약을 위해 중간에 컷이 끊기고 이어지지만 그것을 몽타주로 보기는 어렵다.) 카메라는 객관적이다. 샷의 크기와 구성을 정한 것, 두 대의 카메라를 조수석과 운전석에 설치하기로 결정한 것은 키아로스타미지만, 그 이상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키아로스타미와 함께 아들의 표정을 관찰할 뿐이다. 둘의 대화가 끊겼을 때, 그 어색한 공기를 느끼는 아들의 얼굴이 32초 동안 계속된다. 우리는 아이의 얼굴을 지속적으로 보며 그 미묘한 표정과 제스처의 변화를 관찰하게 되고, 인간 감정의 작은 단위까지 발견하게 된다. 감독의 인위적인 개입 (샷의 변화, 편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한켠으로 밀어두었고, 그로 인해 관객은 진짜 현실에 가까운 인간의 감정 변화를 미세한 단위까지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키아로스타미는 이 영화에서 (자동차 창문을 통해 흘끗 보면서) 배경을 감추고, (때로는 승객의 얼굴, 때로는 운전자의 얼굴을 비추는 카메라의 위치를 제외한) 연출의 공공연한 흔적을 감추어버리고 시네아스트로서의 역할을 벗어버린다. 즉, 디지털 이미지가 조명, 배경, 인물의 연기, 카메라등 모든 것을 통제해야 했던 감독의 전통적 역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연출 방식을 수립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다. <텐>은 굴러가는 상자에 고정된 두 명의 실험 대상들 사이에서 그들의 말들이 무작위로 순환하게 하는 하나의 실험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6]
앙드레 바쟁은 시네마는 현실을 모방한 것 (Le cinéma est l’emprunt de la réalité)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전통적 영화 연출 방식을 가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자격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키아로스타미는 현실에서 가져온 재료를 조작없이 최대한 날 것 그대로를 담으려 애썼고, 현실이 아닌 다른 것에 신경이 분산되지 않도록 미니멀한 배경과 영화적 기술을 선택한다.
주인공은 한 밤중에 실수로 창녀를 차에 태우고, 호기심에 그에게 이것저것 질문한다. 이 장면에는 인위적 조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관객은 달빛과 거리의 빛에 의지해 겨우 주인공의 얼굴을 보는데, 그나마도 안 보일때가 많다. 감독으로서 키아로스타미가 한 개입은 주인공을 화면 안에 배치시킨 방식과 창녀를 보여주지 않기로 한 선택뿐이다. 이러한 사실성에 의해 관객은 마치 실제로 주인공의 차에 타서 이 광경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폐쇄된 공간 속 카메라와 어두운 자연조명은 그 한계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조명외에도, 키아로스타미가 피한 것은 편집이다. 키아로스타미는 미리 계획된 구조를 사용하지 않는 시네마 즉, 비인위적인 영화들의 경우, 편집이 연출하는 과정에서 가장 작은 자리를 차지하며, 영화를 구성하는데 있어 편집이 가장 인위적인 요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즉, 영화를 구성하는데 있어 가장 인위적인 장치가 바로 편집이라는 것이다. 그는 편집이 가장 인위적 장치라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샷-리버스샷이 (대화장면에서 많이 사용되는 촬영기술로,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여주는 방식) 그저 옳다고 믿었고, 그것은 시네마의 법칙이 되어버렸다. 나는 연기도, 조명도, 촬영도, 카메라의 움직임도 아닌 편집이 가장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모든 것은 현실에도 존재한다. 오직 편집만이 인위적이다.
"On a accepté le champ-contrechamp tel quel, et c'est devenu la loi du cinéma. Rien ne me paraît si artificiel, si fabriqué que le montage, ni le jeu, ni la lumière, ni le tournage, ni les mouvements d'appareil. Tout ça existe dans la réalité des choses, seul le montage est artificiel.
[7]
그럼에도 불구하고 <텐>에서 편집이 전혀 사용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름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왜냐하면, 카메라가 각 인물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편집 없이는 대화하는 각 인물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편집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시네마는 편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데에는 동의했지만, 몽타주를 적게 쓸 수록, 영화는 더 현실과 진실에 가까워지고 관객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듯 키아로스타미의 삶의 진실은 현실과 허구, 사실과 가짜가 얽힌 영화적 재배열의 접경에 자리하며, 모든 것이 감독의 손에 통제되어야 한다는 과거 전통적 연출 개념을 깨고 새로운 개념의 디지털 영화를 탄생시킨다.
벨라 발라즈는 영화화된 연극에서 영화 예술로 발전 할 수 있었던 원칙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언급했다:
1) 단일한 장면 내에서 관객과 장면 간의 거리의 변화이다. 따라서 한 가지 그림의 틀과 구도 내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장면의 차원이 다양한 것이다.
2) 한 장면을 부분, 혹은 ‘쇼트’로 나누어 찍는다.
3) 단일한 장면 내에서 쇼트의 앵글, 시점, 초점이 바뀐다.
4) 몽타주, 즉 쇼트를 일정한 순서로 모아 놓는다. 그 속에서는 전체 장면이 다른 장면(아무리 짧더라도)으로 대치되기도 하고, 작은 디테일을 모은 그림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래서 전체 장면은 시간적인 순서처럼 배열된 프레임들의 모자이크로 구성된다.
[8]
<텐>은 벨라 발라즈에 따르면 영화예술보다는 오히려 연극에 더 가깝다. 그가 말한 연극의 기본적인 형식 중 두 가지는 관객이 언제나 고정된 불변의 거리에서 무대를 본다는 것과, 관객의 시선의 각도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텐>의 고정된 카메라는 정확히 이 두가지 원칙에 부합한다. 또한 이 영화의 각 챕터들은 연극의 막을 연상시킨다. 인물이 탑승하면서 시작하고 하차하면서 챕터를 마무리하는 형식이 인물의 등,퇴장과 함께 막을 바꾸는 연극과 닮아있다.
기승전결의 구조 없이 대화가 전부인 이 영화에는 희한하게도 샷-리버스샷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 쪽 인물을 아예 보여주지 않고 한 인물만 롱테이크로 보여준다거나, 각 인물을 번갈아 보여주더라도 그것이 반응을 보여주거나 대화의 흐름을 보여주기 위한 샷-리버스샷의 역할을 하진 않는다. 이런식으로 몽타주를 최소화한 이 영화는 벨라 발라즈가 말한 영화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최신 기술인 디지털 이미지를 가지고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라프 시대로 뒷 걸음질치고 있는 것일까.
장 뤽 고다르는 “놀라운 영화는 많다. 하지만 영화를 성찰하게 만드는 영화는 많지 않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영화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벨라 발라즈의 방식대로라면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영화로서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키아로스타미는 새로운 매체와 방식으로 영화의 다른 가능성을 깨우며 영화의 새로운 존재 방식을 발견했다. 그는 디지털 영화의 미학을 완성하며 영화의 권위를 깨고, 영화에서의 민주주의를 성취했다. 디지털 매체가 허락한 그의 새로운 형식, 즉 롱테이크, 감독의 개입의 최소화를 통해 우연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시도는 정형화된 헐리우드식 영화 만들기와 영화 보기의 방법에서 우리를 해방 시켜주었다.
즉, 디지털 기술은 자본의 구애없이 자유롭게, 누구라도 만들수 있는 영화 제작 시스템의 기반을 마련해주었으며, 관객이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상영의 다중화, 시네마의 탈영역화, 일시정지가 가능한 관람등은 관객에게 영화 관람에 있어 더 많은 자유를 제공했다.
벨라 발라즈나 다른 영화 이론가들이 말한 전통적 영화가 현실을 재현하는데 목적이 있었다면, 키아로스타미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현실 세계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데 목적을 둔다. 이는 평범한 사람들이 체험하는 일상적인 삶이 극적인 우위에 있으며, 특히 장대한 사건과 비일상적 등장인물은 어떤 경우에도 피해야 한다고 믿는 네오 리얼리즘과 방향을 함께한다. 네오 리얼리즘에서 관습적인 플롯은 죽은 공식이며, 진실한 영화는 현실 세계의 그럴듯한 재연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 운동은 1950년대 들어 기운을 잃었는데 한편으로는 그들이 고발하고자 했던 사회적인 여건이 개선되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정부적인 영화에 대한 검열이 강화되면서 영화를 제작할 재원이 점차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영화의 발생은 네오 리얼리즘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었다. 디지털 카메라로 인해 재현이 아닌 직접적인 표현이 가능해 졌으며, 재원이 없이도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발생한 것이다.
기술의 검소함은 - 두 개의 작은 디지털 카메라 - 역으로 결과의 풍요로움을 가져왔다. 키아로스타미는 삶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했으며, 이 과정에서 디지털 영화라는 영화의 새로운 존재 방식을 구축했다. 영화는 어떤 새로운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진정으로 ‘영화’를 고민하는 자세를 가질 때, <텐>의 가치를 제대로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이성욱, 김도훈, [칸 2004] 칸 영화제 말, 말, 말, 씨네21, 2004년 5월 21일,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24405
[2] 자크 오몽, 영화와 모더니티, 열화당, 2010, p.17-18
AUMONT, Jacques. Moderne ? – Comment le cinêma est devenu le plus singulier des arts, Cahiers du cinéma, 2007, p.17-18
[3] 자크 오몽, 영화와 모더니티, 열화당, 2010, p.17.
AUMONT, Jacques. Moderne ? – Comment le cinêma est devenu le plus singulier des arts, Cahiers du cinéma, 2007, p.17.
[4] 장-미셸 프로동, "키아로스타미, 끊임없는 재발견", 르 몽드, 2002/9/17, <http://www.lemonde.fr/archives/article/2002/09/17/kiarostami-la-reinvention-permanente_290684_1819218.html?xtmc=ten_kiarostami&xtcr=46>
FRODON, Jean-Michel. « Kiarostami, la réinvention permanente », Le monde, 17.septembre.2002, <http://www.lemonde.fr/archives/article/2002/09/17/kiarostami-la-reinvention-permanente_290684_1819218.html?xtmc=ten_kiarostami&xtcr=46>
[5]
장-미셸 프로동, "키아로스타미, 끊임없는 재발견", 르 몽드, 2002/9/17, <http://www.lemonde.fr/archives/article/2002/09/17/kiarostami-la-reinvention-permanente_290684_1819218.html?xtmc=ten_kiarostami&xtcr=46>
FRODON, Jean-Michel. « Kiarostami, la réinvention permanente », Le monde, 17.septembre.2002, <http://www.lemonde.fr/archives/article/2002/09/17/kiarostami-la-reinvention-permanente_290684_1819218.html?xtmc=ten_kiarostami&xtcr=46>
[6]
자크 만델바움, "텐 : 한 여성의 삶에서 본 자동차 속 열 개의 인생여정", 르 몽드, 2002/9/17
MANDELBAUM, Jacques. « Ten : dix parcours en voiture dans la vie d’une femme », Le monde, 17.septembre.2002, <http://www.lemonde.fr/archives/article/2002/09/17/ten-dix-parcours-en-voiture-dans-la-vie-d-une-femme_290683_1819218.html?xtmc=ten_kiarostami&xtcr=47>
[7]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 "몇 년 전부터, 나는 클래퍼보드를 사용하지 않는다." 토마 소티넬이 모은 말들, 르 몽드, 2004/5/13
Propos recueillis par Thomas SOTINEL, Abbas Kiarostami, réalisateur: « Depuis plusieurs années, je n’utilise plus le clap. », Le monde, 13.mai.2004, <http://www.lemonde.fr/archives/article/2004/05/13/abbas-kiarostami-realisateur-depuis-plusieurs-annees-je-n-utilise-plus-le-clap_364712_1819218.html?xtmc=ten_kiarostami&xtcr=24>
[8]
벨라 발라즈, 영화의 이론, 동문선
BALÁZS, Béla. Theory of the film, London : DENNIS DOBSON, 1952, p.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