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한 달 살기 Day 17
'가성비', '가심비'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요즘, 여행하는 데 손해를 보자니, 뭔 말이냐고, 당최 이해를 못하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행하는 데 있어 손해를 죽어도 보기 싫어하는 타입이다. 자칭 '스마트한' 여행 소비를 한다고 자부하며, 최대한의 가성비를 얻기 위해 수일의 웹 서칭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하는 데 있어서 그렇다.
항공권을 구매할 때 여러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항공권 가격을 확인하고 항공권 검색 사이트에 잡히지 않는 특가 프로모션을 확인하기 위해 각 항공사 사이트를 탐색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항공권은 한 번만 구매하면 되니까 그나마 낫다.
숙소는 집중과 시간이 더 소요된다. 부킹닷컴, 에어비앤비 등에 게시되어 있는 룸과 내가 원하는 조건을 일일이 걸러내고 가격 비교를 한다. 후기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주어진 예산에서 최대한의 만족을 얻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숙소를 정하는 데 보낸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는 여행에 앞서 숙소를 알아보는 게 신나지만, 이내 여행을 위한 또 다른 일이 되어버리곤 한다.
이 정도 수고를 들였으면 만족하는 숙소를 찾는다고 생각할 텐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반반의 확률로 (아마 나쁜 쪽이 좀 더 많은 확률로) 만족하는 숙소 찾기에 성공 또는 실패를 한다. 숙소 찾기의 세계에서는 노력이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것 같다.
오늘, 이번 한 달 살기의 마지막 숙소를 마침내 예약했다.
이번 베트남 여행은 하노이에서 시작해 마이쩌우로, 다시 하노이에서 푸꾸옥으로, 그리고 다시 하노이 생활로 마무리하는 일정이다. 그동안 현지인 집을 빌려 살았으니 마지막 일주일은 호텔에서 묵기로 정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숙소를 알아보았다. 원래 하던 방법대로 마음에 드는 호텔 리스트를 간추렸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었지만, 내일 일어나서 더 생각해보기로 했었다.
다음날 아침 몇 시간을 고민한 끝에 현지 숙소에 전화를 걸어 몇 가지 내용을 확인한 끝에 결국 그곳으로 정했다. 그런데 결제를 진행하다가 나온 광고 문구를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존 아이디로 로그인을 했는데, 원래 봤던 가격보다 더 인상되어있는 게 아닌가.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로그아웃을 하고 다시 접속해봐도, 브라우저 쿠키를 전부 삭제하고 다시 접속해봐도 더 높은 가격만 제시되어 있었다.
뭔가 엄청 손해를 본 느낌이었다. 속은 느낌이 들어 약간 억울하기도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새로운 숙소 찾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새로운 숙소를 찾아 예약을 하였다.
바보 같은 행동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어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니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는 생각이 몰려왔다. 겨우 몇만 원 차이 때문에 손해 보기 싫어서, 다른 숙소를 찾는 일에 시간을 소비한 것이다. 손해를 보지 말자는 원칙은 시간이라는, 정신적 피로라는 더 큰 손해를 불러왔다.
돌이켜보면, 숙소의 만족 여부와는 관계없이 매번 가성비를 위해 엄청난 양의 서치를 하지만 결국은 처음 선택과 비슷한 숙소를 정한다. 바뀐 건 더 많은 서치로 인한 선택지의 증가, 무수한 선택지로 인한 판단의 흐림,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인한 불만족일 뿐이다. 그리고 정신적인 피로.
그런 의미에서 손해를 좀 봐도 된다는 생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소위 '스마트한' 여행 소비가 오히려 우리를 '스튜피드한' 소비로 끌고 가는 건 아닐까.
나의 까다로움을 내려놓고 모든 걸 관대함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아직 마음 수양이 부족한 나에게는 그냥 기대사항을 정하고 그에 맞는 예산을 넉넉히 배정하는 게 오히려 '스마트한' 여행 소비일지도 모른다. 예산이 부족하다면 통장을 깨서라도... 그게 더 행복하고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