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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 Feb 22. 2020

올레길 1코스: 처음부터 있던 길은 없다

시흥초등학교-광치기 해변

공항에서 바로 1코스 시작 지점인 시흥초등학교로 향했다. 다행히 날씨는 맑다.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것이 걷기에 알맞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잿빛의 서울 하늘과 대비되어 제주도에 왔다는 사실이 더욱 실감 나는 시작이다.



조금 걷다 보면 나오는 제주올레안내소에서 패스포트를 구매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바로 말미오름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정상에 오르니 성산포의 밭과 저 멀리 성산 일출봉과 우도가 한눈에 보인다. 알오름을 거쳐 내려오니 정상에서 보았던 원경의 디테일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 보니 곳곳이 더 잘 보이고, 더 재미있다. 멀리서 보면 일렬로 펼쳐진 들판 같던 곳도 가까이서 다시 보니 저마다 모양과 색깔이 다른 것이 재미있다.



듬성듬성 꽃이 핀 무밭과 당근밭을 배경으로 조금 걷다 보니 종달리 마을이 나온다. 한번 살아보고 싶은 아기자기한 마을이다. 오름을 넘었으니 좀 쉬어야겠다.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며 창가 앞에 앉아 볕을 하염없이 쬔다. 문득 날씨가 좋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날씨가 좋으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날씨만큼 내 미래도 찬란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 말이다. 반면 날씨가 흐린 날은 이상하게 힘이 쭉 빠지는 경험을 자주 한다. 실제로 <소셜 애니멀>이라는 책에 따르면 '당신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비 오는 날보다 화창한 날에 '그렇다'라고 답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고 할 정도이니 좋은 날씨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낀다.



다시 올레길 위에 서서 길에 대해 생각해본다. 메타포가 아닌 물리적인 길에 대해서. 처음부터 존재하는 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는 사실을, 제각각의 모습을 한 길들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깨닫게 된다. 

처음부터 있던 길은 그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 자연에서 길을 만들고 나머지가 그 길을 걷다 보면 그렇게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된다.


생각해보면, 길이 없는 곳을 헤쳐나가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두려움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길을 만든다. 한 명의 용감한 사람이 길을 개척하고, 다른 사람을 그 길을 걷는다. 모두 걸을 수 있는 길이 된다. 그렇게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



길 생각을 해서인지 괜히 뭔가 찔려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길 생각 때문에 그런지 그냥 마음속 어딘가에서부터 갑자기 올라온 생각인지 솔직히 모르겠다. 나는 평소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만 원했지, 그 길을 걸어 나가는 데 있어하기 싫은 일은 회피하고자 했다. 이를테면, 남들과 다른 나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피력하거나 내가 쓴 글을 공유하는 것처럼 말이다. 남들이 좋아하는 길을 낼 용기가 없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길을 걸어서인지, 날씨가 좋아서인지, 자연에 둘러싸여 있어서인지 이런 태도를 버리고 더욱더 적극적으로 길을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내가 필요한, 내가 좋아할 만한 길로. 어차피 길을 잃어도 괜찮다. 내가 길을 잘 가고 있나, 할 때쯤이면 나타나는 올레길 안내표지처럼 누군가는, 어떤 사건은 나를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인도해주지 않을까, 라는 믿음만 있다면.



올레길은 참 이상하다, 라는 생각을 할 때쯤 저기 앞에 한치 말리는 것이 보인다. 한치랑 맥주 한잔하며 쉬어가야겠다는 생각에 이상하게 들뜬다.




*올레 1코스 Tip: 

- 올레 패스포트를 구매해야 하는 경우 안내소에서 1코스 시작 지점 스탬프를 찍어주니 안내소에 갔다가 돌아가지 마시고 시흥초등학교에서 바로 시작하면 돼요.

- 올레 1코스 중간지점인 목화휴게소에서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며 맥주와 한치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져요.

- 종달리에는 카페, 공방, 독립서점, 식당 등이 있어서 구경을 위해 여유 있게 시간을 잡는 것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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