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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 Mar 02. 2020

올레길 3코스: 걸으면 보이는 것들  

온평포구-신천리 벽화마을-표선해비치해변

2코스 마지막 지점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이제 3코스이다. 3코스는 중산간 길인 A코스와 해안가를 따라 조성된 바당 올레인 B코스로 나뉘는데, 나는 바다를 보며 걷고 싶어 B코스를 택했다. A코스에 비해 거리도 훨씬 짧아 하루에 두 코스를 걸어야 하는 경우 딱 알맞다. 



바당 올레이지만 중간중간 숲 속으로 들어가는 코스도 있다. 누군가 꽁꽁 숨겨놓은 것 같은 숲 길에서 올레 표지를 열심히 찾으며 길을 걷다 보면, 어릴 적 수련회에서 하던 보물 찾기를 하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숲길을 걷다 보니 저 멀리 바닷소리도 들리고, 가까이 새소리도 더욱 선명하게 들린다. 돌을 밟는 소리가 이 소리들과 어우러져 매력적인 멜로디를 만든다.



다시 해안가 길로 나오니 수평선이 잔잔하게 펼쳐져있다. 오른쪽 길에는 여러 수산 회사가 계속해서 나와 약간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자아내기도 한다. 왼쪽에서는 잔잔한 파도 소리가, 오른쪽에서는 둔탁한 기계 소리가 대조를 이룬다.



얼마나 지났을까, 환해장성을 따라 펼쳐져 있는 그림 같은 바다 풍경 앞으로 해안가에 쓰레기들이 보인다. 여기저기 플라스틱 통들과 스티로폼이 널브러져 있다. 그중에는 사람들이 지나가다 몰래 버린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태풍과 함께 떠밀려 온 것이다. 결국 우리가 어디엔가 무심코 버린 쓰레기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생각해본다. 태풍 이후에 쓰레기가 쌓이는 것은 결국 우리가 배출한 쓰레기, 우리가 초래한 환경오염은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일종의 자연의 경고가 아닐까라고. 이내 플라스틱 생수병을 들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하루에 두 개의 코스를 걸으려니 무릎이, 발바닥이 아파왔다. 신산포구를 지나 3코스의 중간 지점인 신산리 마을카페에서 쉬어가기로 한다. 마침 손님이 빠지는 시간이라 통유리 앞에 자리를 잡고 메모도 하다가, 책도 읽다가,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했다. 1 시간 하고도 30분이 지났을까, 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으며 다시 길을 나섰다.



숙소까지는 여기서 1시간 정도 남짓이다. 다시 걷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걸으면 이상하게 생각이 참 많아진다. 잠재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던 생각들이 표면으로 올라오는 것 같다. 신기한 건 보통 생각이 많아지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데, 걸을 때는 무규칙적으로 올라오는 생각들이 자기 자리를 찾듯이 차근차근 정리가 된다는 것이다. 


문득 내가 하고 있는 일, 그중에 내가 싫어하는 류의 일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아니 그 생각이 떠올랐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가능한 한 피하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일을 싫어한다면 ‘왜’ 싫어하는지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잘 못하는 일이라 싫은지, 원래 내 성향 때문인지... 


여태까지 나는 내가 싫어하는 일이 내 성향, 성격과 맞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이를테면, 나는 내성적이니까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가능한 한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따위의 생각이라고 할까. 상당 부분이 익숙하지 않아서, 아니면 실력이 부족해서 일지도 모르는 데 말이다.



돌이켜보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고, 계속 접하지 않다 보니 자신이 없어서 그 일을 싫어하게 된 것도 있는 것 같다. 이 길을 걷고 있자니 그런 '나'를 타자화해서 바라보고, 그런 '나'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용기, 또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일, 능력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을 없애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일을 더욱 자주 마주하고 실력을 키우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올라오며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힘찬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 올레 3코스 Tip:

- 신산리 주민들이 운영하는 마을카페에서 쉬어가는 것을 추천해요. 신산리는 녹차가 유명한데 떫은맛과 쓴 맛이 덜 해, 부드러운 목 넘김과 은은한 달달함이 특징이라고 해요. 가마솥에서 덖어내는 전통적 방식으로 가공해 소량 생산한다고 하니 쉬면서 녹차 라떼를 즐겨보기를 권해요.

- 올레 3B코스를 걸을 예정이라면 2코스와 함께 하루에 두 코스를 걷는 것으로 계획을 잡고 3코스가 끝나기 전에 여정을 마치는 것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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