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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 Mar 03. 2020

올레길 4코스: 옆을 보며 걷는 길

표선해비치해변-토산2리 마을회관-남원포구

아니나 다를까 지난밤부터 바람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에 나가보니 지난 이틀과 달리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비가 내린다. 예보에 따르면 오전에는 그친다고 하니 일단 걱정은 내려놓고 지금, 여기를 즐기기로 한다.


숙소에서 차려준 아침 한상을 배불리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늘은 남은 3코스를 다 걷고 4코스를 걷을 계획이다. 해안가 위주의 비교적 평탄한 코스지만 거리가 19km나 돼 매우 긴 편으로 체력 안배를 잘해야겠다.



날씨가 차고 바람도 강하지만 한걸음 한걸음이 가볍다. 아마 숙소 호스트분들의 배려 덕분이리라. 참 편안하고 재미있는 곳에서 하루를 보냈다. 

"돈 없으면 추억 먹고살면 된다."던 "길을 나서기 전에 굳이 작별인사는 하지 않겠다"며, “잘 갔다 와”라고 말해주는 호스트가 지키는 숙소. 

나도 “잘 다녀올게요.”라는 말로 작별 인사를 대신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조금 걷다 보니 3코스의 종점이자 4코스의 시작점인 표선해수욕장이 나왔다. 마침 해변에서 물이 빠지고 있는데, 그 광경이 엄청나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물이 수평선 쪽으로 흘러가고 이내 바람을 따라 모래가 뒤따라가고 조금 전까지 바다였던 곳이 백사장으로 변한다. 환상적이라고 밖에는 표현하지 못하겠다. 그렇게 바람을 따라, 물을 따라, 모래를 따라 한참을 뛰어놀았다.



정신을 차리고 길을 나서니 운이 좋게도 바람이 성산에서 시작해 내가 가는 방향으로 불어주었다. 힘들면 바람이 밀어주기도 하는 올레길, 참 좋다. 바람에 쓸려 혼자 걷다 보면 바람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바람에도 우리가 알아들 수 있는 언어가 있다면, 수많은 단어와 소리가 존재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거친 소리를 내기도 하고, 휘파람 소리를 내기도 하고, 펄럭이는 소리를 내기도 하는, 바람 소리가 참 다채롭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앞이 아니라 옆을 보고 걷게 된다. 주변 풍광을 보고, 주변 사람을 보면서 걷게 된다. 길 위에서 앞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다. 앞서가는 것보다 나란히 가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이곳에서 느낀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를 따라가려 하거나, 다른 사람이 뒤에서 따라오길 원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보다는 보고 있어도 계속 보고 싶은 이곳을 닮은 해변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 여정의 마지막 코스답게 날씨도 역동적이었다. 비가 오다가, 구름이 짙게 깔렸다가, 이내 봄처럼 해가 번쩍 뜨다가, 동시에 갑자기 서리가 내리고. 제주는 사계절을 하루에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참 재미있는 곳이다. 참 이상한 곳이다. 참 닮고 싶은 곳이다.




*올레 4코스 Tip: 

-다른 올레길에 비해서 유난히 긴 편으로 무리하지 말고 한 코스만 걷는 것을 추천해요.

-제주도에서도 감귤로 유명한 신흥리에서 감귤 체험을 하거나 근처 카페에서 쉬어가도 좋아요. 동네가 아기자기하니 예뻐요.

-4코스의 종점이자 5코스의 시작점인 남원포구에는 순댓국으로 유명한 <범일 분식>, 현지인 맛집 <별맛 해장국>, 한식대첩 2에서 제주 대표로 나오셨던 분이 운영하시는 <괸당네식당> 중 한 곳에 들려 밥 먹는 것을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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