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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 May 15. 2023

오줌싸개

요즘 조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부모의 지극한 사랑을 달콤하게 받고 자라는 초등학생이 된 여자아이와 6살의 남자아이들이다. 두 아이는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데 어느 날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겨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아이들이 실례를 하면 매트리스가 다 젖겠네"


나는 내 경험상 아이들은 당연히 밤에 실수를 한다고 생각을 했고 언니가 침대 매트리스를 어떻게 관리를 하는지 그리고 방수패드를 까는지가 궁금했어서 한 질문이었는데 예상외의 답변을 받았다. 


"다행히 아이들이 밤에 오줌을 실수하는 일이 없어"

 

그러고 보니 내가 며칠씩 동거동락을 해도 아이들이 실수를 하는 일이 없었고 침대의 이불은 항상 깔끔했으며 냄새도 좋았다. 



그러고 며칠 후에 내 기억이 1993년도쯤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산중턱에 자리했던 외할머니댁에서 명절이나 모임이 있던 날이면 많은 수의 가족들이 모였다. 우리 엄마는 다섯째이고 그 밑으로 동생들이 그 숫자만큼 더 있었으니 그들의 가족들까지 합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수의 가족모임이었다. 가족 모임이 있던 날은  자주 보지 못했던 내 또래의 사촌들과 깔깔거리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어린이들은 작은 방에 대 여섯 명씩 한 방에서 잠을 자곤 했었는데 오줌싸개에 대한 아주 오래된 기억은 그날이 가장 선명하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단순히 재미있는 에피소드로만 여겼었다. 


몇 명의 사촌들이 그 방에서 잠을 잤는지는 잘 모르지만 꽤 여러 명이었고 우리는 무슨무슨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잠을 잤을 것이다. 그리고 선명한 기억은 바로 다음날의 기억인데 아침햇살에 눈을 떴을 때 나는 뭔가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했다. 엉덩이 부분이 축축했던 것이다. 흠뻑 젖어 있는 느낌에 나는 제일 먼저 혼날 것이 두려운 마음이 들었었다. 모두가 눈을 떴을 때 우리는 깨달았다. 오줌의 양이 한 사람의 양이 아니라는 것을. 그날밤 몇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오줌싸개가 되었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우리가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빠르게 이불을 개었을 때 차곡차곡 개어진 이불틈 사이로 물이 주르르륵 흐르던 것이 기억난다. 그 후의 일들은 호되게 혼이 났었는지 어른들이 그냥 넘어가 주셨는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짐작컨대 내 옆에서 잤을 내 남동생은 아마도 그날밤 오줌싸개의 주 범인으로 지목되었을 것이다. 실수가 잦았던 남동생에게 뒤집어씌우고는 다른 모든 아이들은 그 자리를 유유히 떠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내가 혼난 기억이 없는 게 아닐까..






2021년 간암으로 병원생활을 하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남동생은 아버지를 대면대면 조우했다. 밤 12시에 가까운 한밤중에 젖은 눈을하고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는 남동생을 또다시 꾸짖었다. 아버지와 남동생이 다시 본 게 아마 몇 년 만이었으리라... 동생은 여전히 아버지를 원망했다. 어렸을 때 남자아이라서 그런지 동생은 아버지에게 혼이 많이 나곤 했었다. 지금은 아버지를 닮아 모든 행동이 느리게 변해 버린 동생이지만 아주 어렸을 때 남동생은 정말 정신없는 대단한 개구쟁이였다. 개구쟁이가 치는 사고들이 무수했기 때문에 동생은 혼나는 일이 많았고 엄마는 종종 그 일을 말씀하시곤 했다.



나도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동생에게 떨어진 불호령이 어느 정도의 호됨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내가 혼나는 게 아니었으므로 나는 아마도 안심하며 뒤로 숨었을 것이다. 내가 혼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중학생 이후로는 아버지를 잘 보지도 못했던 남동생이 그 어린 나이의 기억으로 아버지를 원망하는 모습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남동생의 일이라면 두 손 두 발 자신의 심장까지 바칠 준비를 하는 엄마의 극성스러움도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사랑을 흠뻑 받고 자란 조카들이 실수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남동생이 중학교에 올라갈 때까지도 실수했던 오래된 기억과 비틀거리며 아버지를 원망하던 동생의 모습, 동생에 대한 엄마의 극성스러움에 대한 모든 기억들이 30년이 지난 지금에야 한자리에 모였다. 개구쟁이로만 비춰졌던 동생의 모습이 사실은 불안속에 살던 어린아이였다는것을 조카의 모습과 대비되며 내 마음속에 쿵하고 지나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3일 전인가. 그날 아버지가 위독했으므로 병실에서 아버지를 돌보던 나는 모든 가족들을 소환했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가족들이 달려왔다. 일을 하던 동생도 그때 다시 나타났다. 그날 아버지는 아이처럼 엉엉 우셨다.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우리 모두 평생 처음 보았다. 꺽꺽 우시며 뱉은 한마디.

  "미안했다....." 

그말은 모두에게 해당되었고 모두에게 전하는 말이었지만 아버지의 시선은 남동생에게 머물러 있었던것 같다. 그리고 2년이 지나서야 조카들을 보며 한 사람의 눈빛과 또 다른 한 사람의 눈빛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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