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A VIDA_025
이곳에서 처음으로 2박 3일 간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한 여학생의 가족들과 해변에서 부활절 연휴를 보내는 걸로 돼있었는데 갑자기 취소되어서 하루 전에 결정한 여행이었다. 나에게 한국 문화 수업을 듣는 나사렛이라는 학생이 Monteverde(몬떼베르데)라는 지역에 사는데 초대를 해주었다. 몬떼베르데로 가기 위해 동료 선생님과 함께 버스를 타고 수도 San José(산 호세)로 갔다. 몬떼베르데까지는 나사렛과 같은 반 학생 엠마누엘을 만나서 같이 가기로 했다.
Alajuela(알라후엘라)에서 버스를 타고 30~40분쯤 가면 수도 산호세의 터미널에 도착한다. 터미널 근처에 큰 성당이 있다. 산호세에는 터미널이 많은데, 우리는 몬떼베르데에 가기 위해 우리가 내린 곳에서 엠마를 만나 다른 터미널로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산호세 거리. 이곳이 산호세에서 큰 시장이 서는 중심지라고 한다.
15분쯤 걸어 다른 터미널에 도착. 이 터미널은 한국의 터미널과 비슷한 느낌이 났다. 터미널 화장실에서는 200콜론, 한화로 450원 정도를 받는다. 처음으로 돈을 내고 화장실에 가 봤다.
터미널 안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브리또를 먹었는데 2,500콜론(5,200원 정도)이었다. 내가 원하는 재료를 고르면 그걸로 브리또를 만들어 주는데 가격은 모두 같다. 저 가게 직원들이 나한테 계속 'Muchacha, linda(무차차, 린다)'라고 말했는데 해석하면 '아가씨, 예뻐요.' 정도? 엠마가 그걸 듣고 엄청 웃었다.
몬떼베르데로 가는 버스. 2시 반 차를 탔다. 산호세에서 몬떼베르데로 가는 버스표는 2,760콜론(5,700원 정도)이다. 교통비는 확실히 한국보다 싸다. 그렇지만 이 버스를 타보고 새삼 한국의 고속버스가 편하다는 걸 느꼈다.
버스에 붙어 있던 스티커. 코스타리카에서는 이렇게 지도와 국기를 배합해 놓은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장거리 여행에는 물을 사서 마셔야 하는데 실수로 음료수를 샀다. 내가 좋아하는 음료수와 같은 브랜드라 맛있을 줄 알고 그냥 샀는데 한 모금 마시고 당황했다. 쓴맛과 단맛이 한꺼번에 났다. 차에서 다시 보니 té verde, 녹차였다. 세상에나 사과맛이 나는 녹차라니. 이해할 수 없다.
3시간 반쯤 가다가 버스가 휴게소에 섰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힘들었다.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휴게소에 있던 의자를 보고 엠마가 코스타리카 전통 문양이라고 말해 주었다.
장장 5시간이나 걸려 몬떼베르데에 도착했다. 여행의 첫날을 버스 안에서 다 보내버렸다. 평소에는 3시간 반에서 4시간이면 간다고 하는데 부활절 연휴 기간이라 차가 막힌 거라고 했다. 물론 더 일찍 출발해서 올 수도 있었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산호세에서 몬떼베르데로 가는 버스는 새벽 6시와 오후 2시 반, 하루에 딱 두 번밖에 없기 때문이다.
몬떼베르데 터미널에 도착하니 나사렛의 아버님께서 나사렛의 동생 루스와 차로 마중을 나와 주셨다. 나사렛의 동생 루스도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인데 이 날 처음 봤다. 나사렛의 집에서는 동료 선생님과 함께 나사렛의 오빠 방에 묵었다. 나사렛의 오빠는 Heredia(에레디아)에서 물리치료사로 일을 하고 있는데, 해마다 캐나다에서 자원봉사자가 왔다 가서 침대가 두 개라고 했다.
나사렛의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luna(루나), 달이라는 뜻이다. 작고 예쁘다. 내가 워낙 고양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정말 유난히 애교도 많고 귀여웠다.
Moneteverde(몬떼베르데) 여행 둘째 날. Santa Elena(산타 엘레나) 공원에 갔다. 한국으로 치면 국립공원 정도 되는 것 같다. 입장료는 내지 않고 들어갔다. 그냥 산이겠거니 하고 갔는데, 거의 정글이었다. 처음 보는 식물들이 많았다.
위에 있는 꽃의 이름이 '여자친구의 입술'이라고 한다. 재미있다.
코스가 여러 가지 있는데, 우리는 40분 정도 걸리는 초록색 코스를 돌았다. 걷기 시작할 때부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져서 비가 많이 올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 상태로 한동안 오다가 그쳤다. 다음에 또 가게 된다면 조금 더 긴 코스를 돌아보고 싶다.
Volcán Arenal(볼깐 아레날:아레날 화산)이 보인다는 전망대에 올라갔지만, 구름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아레날 화산이 이 나라에서 가장 완벽한 모양의 화산이라는데, 나는 사진으로만 봤다. 빨리 직접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매. 신기했다.
Montevere
평소에는 새가 많이 날아다닌다고 했는데, 우리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가이드 말로는 비가 와서 그렇단다. 날씨가 조금만 더 좋았다면 더 멋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공기가 맑아서 기분은 좋았다.
이 나라에는 관광 택시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Turismo(뚜리스모)'라고 쓰여 있는 봉고차가 관광지에서 택시 역할을 하는데, 그리 비싸지도 않고 괜찮은 것 같다. 그 택시를 타고 몬떼베르데 시내로 이동한 후, 'Tico y Rico(띠꼬 이 리꼬)'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는 'casado(까사도)'라는 메뉴를 골랐는데 한국에서는 백반 정도 되는 메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샐러드에 밥과 plátano(쁠라따노), frijoles(프리홀레스:팥), 그리고 생선이 나왔다. 이 나라는 팥을 짜게 조리해서 먹는다. 달게 먹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봤다. 나는 생선이 먹고 싶어 생선을 골랐지만, 생선은 닭고기나 돼지고기 등 다른 것으로 선택할 수 있다. 딸기 주스도 함께 시켜 먹었는데 맛있었다. 사진으로는 양이 적어 보이는데 은근히 양이 많다. 배부르게 잘 먹었다.
점심을 먹은 후 몬테베르데 기념품샵들을 둘러봤다. 관광지라 기념품 샵들이 많았다. 예쁜 게 너무 많아서 결국 못 참고 보석함 하나를 샀다. 해외여행을 가면 꼭 보석함을 사 오는데, 아마 한국으로 돌아갈 때쯤엔 열 개쯤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벌써 두 개나 샀다.
기념품샵에서 나와 다시 택시를 타고 나사렛의 할머니 댁으로 갔다. 그 근처에 나사렛의 아버님이 하시는 커피 농장이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할머니 댁에서 커피를 마신 후 커피 농장을 구경하러 갔다.
나사렛의 아버님께서 커피 농장을 구경하기 전에 커피콩을 따서 어떻게 원두로 만드는지부터 보여 주셨다.
먼저 커피 열매를 따서 햇볕에 잘 말린다.
그리고 열매를 까면 우리가 아는 커피콩이 나온다. 이것도 햇볕에 잘 말린다.
그러고 나서 볶으면 까맣게 됨. 볶은 걸 바로 먹어 봤는데 고소하고 맛있었다.
빨간색이 다 익은 커피 열매이다.
커피밭. 언뜻 보면 녹차밭과 비슷하다. 농장의 규모가 상당히 커서 놀랐다. 날씨도 좋고 하늘도 파래서 풍경이 너무 예뻤다.
커피 농장을 구경하고 이번에는 젖소 농장을 구경하러 갔다. 가는 길에 마주한 한적한 풍경들을 보고 있자니 이런 곳이라면 평생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젖소 농장에서 본 독수리. 확실히 독수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농장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와서 좀 쉬다가 저녁을 먹었다. 나사렛의 집에 머무는 동안 식사는 정말 맛있게 했다. 맛있는 저녁을 차려주신 어머님께 감사드린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밤 산책을 나갔다.
별이 정말 많았는데 당연히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었다. 그래도 별들이 미세하게 찍히기는 했다. 이 날은 별이 없는 편이었다고 한다. 반딧불도 봤는데, 한국에서 딱 한 번 봤던 반딧불과는 좀 달랐다. 무주에서 봤던 반딧불은 하얀빛을 약하게 냈었다. 하지만 이곳의 반딧불은 강한 노란빛을 내서 신기했다.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보고 싶은데, 그러려면 해변에 가야 한다. 빨리 그날이 오기를.
Moneteverde(몬떼베르데) 여행 마지막 날 역시 나사렛의 아버님께 신세를 졌다. 험한 산길을 운전하시느라 고생하셨다. 도착한 곳은 'Cloud Forest'라고 불리는 숲이었는데, 이름에 걸맞게 구름만 잔뜩 보고 왔다. 우리가 전날 Santa Elena(산타 엘레나) 국립공원에서 Volcán Arenal(볼깐 아레날:아레날 화산)을 못 봤다고 하니 아레날 화산이 보이는 지점으로 우리를 데려 가신 거였지만 이 날도 역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운이 좋으면 아레날 화산이 선명하게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흰 구름에 둘러싸인 기분도 나쁘지는 않았다.
적당한 곳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온통 구름 투성이었다. 이렇게 구름이 많이 낀 곳을 걸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깊은 산 속이기도 하고, 사람의 손이 거의 닿지 않다 보니 산딸기와 오디가 곳곳에 자라고 있었다. 둘 다 맛을 봤는데 신맛이 강하게 났다.
이 버섯은 환각 성분이 들어 있는 버섯이라고 했다. 역시 버섯은 생긴 것만 봐서는 절대 모른다.
아주 잠깐 구름이 걷혀서 건너편에 있는 산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삽시간에 다시 구름으로 뒤덮여 버렸다. 내 눈앞의 풍경들이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빠르게 사라져 버리는 게 신기했다.
산에서 본 식물들. 나는 코스타리카의 자연이 좋다. 아직까지는 오염되지 않은 나라라는 느낌이 든다. 희귀 동물들도 많다. 물론, 그만큼 벌레도 많다. 사실 벌레는 끔찍이도 싫어하지만. 특정 시기에 몬떼베르데에 가면 반딧불이 온 산을 뒤덮은 풍경을 볼 수 있다는데,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꼭 보고 싶다.
이것으로 2박 3일간의 짧았던 몬떼베르데 여행이 끝이 났다. 첫날 늦게 도착했고, 마지막 날은 일찍 돌아와서 2박 3일의 시간을 온전히 다 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유명한 관광지에 가지 못한 게 좀 아쉽다. 충분히 다시 여행할 만한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