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A VIDA_028
코스타리카에서는 5월을 'Mayo de abejón(마요 데 아베혼)'이라고 부른다. abejón(아베혼)은 풍뎅이쯤 되는데 한국의 풍뎅이랑 같은지는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풍뎅이를 본 기억이 별로 없어서. 그래서 풍뎅이가 이렇게 끔찍한 곤충인지는 몰랐다.
나는 모든 곤충을 무서워한다. 만지지도 못하니 당연히 죽이지도 못한다. 죽일 수 있는 건 모기뿐이다. 무섭지 않은 건 개미와 거미 정도인데, 날개가 달린 곤충은 질색을 한다. 흔히들 그렇듯이 가장 무서운 건 바퀴벌레이다. 요즘은 우리 집에도 가끔 바퀴벌레가 출몰하는데 바퀴벌레를 보면 소리를 지른다. 홈스테이 동생 소피 역시 바퀴벌레를 끔찍이도 싫어해서 우리는 늘 같이 소리를 지른다. 그래도 바퀴벌레를 처리하는 건 언제나 소피이다. 내가 방에 있는 바퀴벌레 약을 갖다 주면 소피가 약을 뿌린다. 아....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바퀴벌레. 아무튼 4월부터 이제 풍뎅이가 많이 나올 거라는 말을 들어왔는데, 정말 4월 중순쯤부터 한두 마리씩 보이더니 4월 말이 되니 거의 매일 볼 수 있었다. 막상 5월 중순인 지금은 그렇게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4월 말에서 5월 초가 절정인 것 같다. 나는 풍뎅이가 날갯짓을 할 때 내는 그 붕붕거리는 소리가 몹시 싫다. 소리에 예민한 편인데 그래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4월 말부터는 저녁이 되면 내 방 문을 닫아 놓는다. 곤충들이 으레 그렇듯이 풍뎅이도 빛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코스타리카에는 한국에서는 보지 못하는 온갖 곤충들이 다 사는 것 같다. 그래서 딱 한 가지 좋은 건, 종종 반딧불을 볼 수 있다는 거다. 한국에서는 살면서 반딧불을 딱 한 번 봤는데, 여기에 와서는 벌써 세 번이나 봤다. 그만큼 코스타리카의 자연환경이 깨끗하다는 걸까. 소피 말로는 특정 시기에 Monteverde(몬떼베르데)에 가면 반딧불이 엄청 나온다니 그건 좀 보고 싶다.
지난번에 찍은 반딧불이다. 소피가 집에 반딧불이 들어왔다면서 잡아서 보여 줬다. 소피는 내가 곤충을 싫어하는 걸 아는데, 반딧불을 보고 신기해 하자 반딧불은 왜 무서워하지 않냐고 놀렸다.
코스타리카는 나라 전체가 동물원 같다. 지난번에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원숭이들을 봤고, 스페인어 과외를 하러 가다가는 이구아나처럼 생긴 파충류를 봤다. 크기가 손바닥만 했다. 너무 빨라서 사진은 못 찍었지만. 길 가다가 다람쥐도 봤는데 심지어 다람쥐는 사람이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는다.
어느 날은 집에 엄청 큰 나비가 들어왔다. 그렇게 큰 나비를 실물로 본 건 처음이었다. 너무 커서 살짝 무서울 정도였다. 무늬가 예뻤으면 예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거의 나방에 가까웠다.
소피는 아무래도 겁이 없는 것 같다. 세 달을 같이 살아보니 무서워하는 건 바퀴벌레뿐이다. 애벌레도 막 잡아서 보여 준다.
아래 사진이 그 유명한 아베혼이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빨리 가버리는 건 싫지만, 그래도 풍뎅이의 5월은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