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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fe YU Oct 27. 2019

나는 왜 한국어 선생님이 되었나

2009년 학교 게시판 공고를 보고

 10년 전,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다. 툭하면 학기 중에 수강 과목을 취소하고 그나마 몇 학점 듣지도 않던 수업에도 충실하지 않아서 F학점도 받아 봤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공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유학을 가겠다든지 졸업 후에 어떤 회사에 들어가겠다든지 하는 목표도 없었다. 심지어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평일에는 학교에 가고 주말에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렇게 1년 반쯤을 보냈다.

 그러다가 학교 게시판에서 우연히 ‘한국어교원 양성과정’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그때는 지방에서도 한국어교원 양성과정을 쉽게 들을 수 있었고 모교에서는 1년에 두 번,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지금은 양성과정을 운영하는 대학교가 많지 않다. 서울의 몇몇 대학교 양성과정 모집 공고를 지금도 가끔 보기는 하지만 한국어교원 2급 자격증을 학점은행제로 딸 수 있게 된 후 3급 자격증을 위한 양성과정은 수요 감소로 없어지는 추세인 것 같다.

 공고를 보고 한국어교원이 무엇인지 검색해 본 후 갑자기 한국어교원이라는 직업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사실 중학교 때부터 꿈이 국어 교사였고, 고3 때도 사범대에 갈 성적이 안 돼서 국문과에 가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수능 성적 때문에 외국어 전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 진학 후 자연스레 국어 교사라는 꿈은 버리게 되었는데 교직 이수를 하지 않아도 선생님이 될 수 있다고? 그때만 해도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과 한국인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것의 차이를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인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나의 언어를 가르친다는 게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양성과정의 기간은 언제인지, 수강료는 얼마인지 등을 알아보았고 당시 90만 원이던 수강료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더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2학년 2학기부터는 한국어교원이 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국어국문학 복수전공도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나는 3학년이 되었다.



 때는 2010년 여름, 학교 홈페이지에 한국어교원 양성과정 모집 공고가 다시 한번 올라왔지만 목표한 90만 원을 모으지 못 해서 여름방학이 아닌 겨울방학에 수업을 들으려고 했다. 그런데 엄마가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낫지 않겠냐며 90만 원을 내주셨다. 당시 나는 양성과정을 듣기 위해 면접까지 봤다. 그렇게 그해 여름방학에 160시간이 넘는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같은 해 10월 제5회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에 응시했다. 필기시험은 커트라인을 약간 넘는 점수를 받아 간신히 합격했고 면접시험 때는 실수를 많이 해서 끝나고 울기도 했는데 최종 합격이었다.

 그렇게 이듬해 1월 한국어교원 3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운 좋게도 내가 사는 지역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4월부터 한국어교육 봉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하는 수업이었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때 봉사를 했던 경험이 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봉사는 12월까지 이어졌다.



 어찌 보면 외국인들을 만나 보고 싶다는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을 현재까지 하고 있다. 돌아오는 금요일에는 국립국어원의 한국어교원 자격 승급 심사 결과가 나온다. 요즘은 내가 양성과정을 들을 때만 해도 없었던 학점은행제로 1년 반이면 한국어교원 2급 자격증을 딸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3급에서 2급으로 승급 심사 신청을 하는 데만 8년 하고도 8개월이 걸렸다. 자격증을 딴 2011년부터 지금까지 2014년만을 제외하고 계속 한국어교육 경력을 쌓았는데도 승급 조건 중 하나인 한국어교육 강의 경력 2,000시간을 지난 8월에서야 다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매거진을 만든 이유는 최근 자존감이 떨어져서이다. 뜬금없겠지만 말이다. ‘현타가 왔다’고 해야 하나. 이 일을 계속하고 싶지만 나이 서른이 넘었는데도 변변찮은 벌이가 나를 주눅 들게 한다. 현실에 안주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안정성은 보장이 되면 좋겠다. 8년 차 한국어 선생님의 입장에서 한국어교육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졌다. 글을 쓰다 보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정리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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