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
‘엄행아행’ 이라는 진리가 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말.
수많은 시행 착오와 실험 결과, 이 역시 ‘한계 효용’의 법칙을 따른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어느 시점까진 맞는 말이나 어느 정도 양이 차면 아이의 총 만족은 체감한다. 다음은 가설을 증명해 낸 과정이다.
때는 코로나로 온 국민이 타발적 감금을 하던 시기. 파워 밖순이 딸과 ‘거리의 시인들’
모드로 살던 우리 모녀는 특히 더 힘들었다. 노느라 밥도 잘 안 먹고, 잠도 없이 14시간을 깨어 있는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둘이 함께 ‘행복하게’ 있기는 더욱 그렇다.
그래! 엄마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내가 행복해하는 일을 하면 아이에게도 나의 행복이 전염될거야.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하기로 했다.
블루투스 마이크로 노래 부르며 춤을 춘다. K-흥녀에게 노래방 신이 강림한다. 흥이 차오른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살맛 난다. 진심으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는 엄마 옆에서 같이 춤을 췄다.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뒤뚱 뒤뚱 했다. 티라노 사우루스처럼 짧은 팔을 허우적 거린다. 저 세상 귀여움이다. 진짜 살맛 나는 인생이로구나. 역시 엄마가 행복하면 아이도 행복하구나.
마음 놓고 상모 돌리듯 고개를 흔든다. 이 세상은 사라지고 춤을 추는 우리만이 남은 듯, 진정한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른다. 아쉽게도, 그 순간은 길지 않았다. 막 두 돌 지난 아기는 짧고 어눌한 발음으로 나를 보며 정확하게 말했다.
“이제 노대(노래) 그만! 춤 도디도디(도리도리) 이제 그만!”
고개를 좌우로 힘차게 흔든다. 짧고 통통한 두 팔로 엑스자까지 만들었다. 못 들은 척 계속 춤을 췄더니 내 다리를 꽉 잡고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며 또 다시 말했다. 어찌나 단호한지, 춤추던 내가 민망해질 정도다.
“응, 알았어. 이제 그만 하자. 엄마가 미안해.”
머쓱타드.
30분간 극락의 행복을 맛보았다. 아이는 그 정도면 충분했나 보다. 다시 아이가 고른 뽀로로 유치원 놀이와 블록 놀이를 한다. 아까보다 훨씬 만족하며 행복해한다.
그 외, 검사 결과의 신뢰성을 위해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다양하게 변주해 보았다.
- 리코더 연주하여 핸드폰에 녹음하고, 녹음된 곡과 2부 합주하기
- CD 틀고, CD랑 화음 맞춰 노래 부르기
- 문어 놀이 : 문어처럼 바닥에 붙어있기
- 응급실 놀이 : 의식을 잃어 꼼짝도 안하고 누워있기만 하는 손님 치료하기
(물론 손님은 엄마다.)
다 실패했다. 엄마는 행복했지만, 아이는 행복해하지 않았다.
엄행아행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구나.
가설 증명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