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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연 Jul 16. 2021

달콤한 거짓말






마치 사물이 된 듯, 바위와 돌멩이가 된 듯, 병풍이 된 듯 부엌 한 구석에서 믹스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홀짝홀짝. 3분의 달콤한 휴식이다. 제발 나를 발견하지 않게 해 주세요. 사물이 되게 해 주세요. 완벽한 위장술을 시전 한다.      



“엄마! 나랑 토끼 놀이해요.”     



아이가 나를 부른다.      



적진에 나의 존재가 드러났다. 실패다. 다시 역할 놀이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순간적으로 증발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신입니다. 제발 무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      



14시간 중 13시간을 토끼로 살아야 하는 피 토하는 내 심정을 그 누가 알까. 토끼와 함께 목욕하고, 토끼와 밥 먹어야 하고, 토끼와 책을 봐야 하는 네 마음은 알겠지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도 헤아려 주길 바라.     



그렇지만 너의 무궁한 눈동자를 보며, 모성애와 인류애가 솟아난다. 나의 이 심정을 내 아이에게 알릴 수 없다는 독립군의 비장함이 솟아난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달콤한 거짓말이 필요하다.     




“우와! 진짜 재밌겠다. 엄마가 너랑 얼마나 놀이하고 싶었는지 알아?

왜 엄마가 커피 마실 때 안 불렀어! 혼자서만 계속 놀 줄 알고 얼마나 기다렸다고.

이제 엄마랑 놀 거야? 진짜지? 너무 재밌겠다. 엄마는 너랑 놀 때 제일 행복하더라.”   



   

목소리와 눈빛에 최대한 진심을 담는다. 거짓이 담기면 아이는 나의 마음을 알아챌 것이다. 한껏 소리 높여 마음을 우겨보라. 의외로 진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해봤는데, 진짜다.)     


“엄마 이것만 하고. 잠깐만.” 이라고 하지 않는다. 어차피 이래도 저래도 난 토끼가 될 운명이다. 그냥 한 번 달콤하게 아이를 속여 보는 것도 괜찮다.      




“엄마 너랑 지금 너무 놀고 싶은데 왜 설거지를 해야 하는 거야!

엄마가 끝낼 때까지 절대로 먼저 놀이하고 있으면 안 돼. 절대로 절대로야! 알겠지?”     


그럼 아이는 그런 나를 안쓰럽다는 듯 쳐다보며 위로한다.     



“아이~ 알았어. 내가 엄마 잘 기다려 줄 테니까 얼른 끝내고 와! 알았지?

너무 놀고 싶어도 참고.”     



물론 변하는 건 없다. 결국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엄마를 기다린다. 달콤한 거짓말 덕에 토끼가 되기 싫은 내 마음을 들키지 않고, 너는 설렘과 기대함으로 나를 기다리지만 말이다.     



혹시 나중에 네가 책을 읽게 되면, 조금 더 자라게 되면

‘안간힘으로’ 하던 내 달콤한 거짓말을 알게 되겠지?




그 때까지는 너를 조금만 더 속이도록 할게. 너를 많이 많이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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