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마이 제자들
"샘, 잘 지내시죠?"
"잘 지내지, 너도 잘 지내고 있지?"
"네, 샘. 보고 싶어요."
"한 번 만나자."
혁이다. 지금까지 만났던 제자 중 가장 자주 연락하는 사이다. 혁이는 27살. 처음 만났을 때 혁이가 15살이었으니 벌써 12년이 흘렀다. 혁이와 그의 동창들은 나에게 좀 특별한 존재다. 내가 27살 때 그들을 처음 만났다. 12살 띠동갑. 그들은 첫 제자다. 첫 제자들에게 각별한 애정이 생긴 나는 다음 해에도 이 학생들의 담임이 되기 위해 해당 학년 담임 배정을 강하게 주장했다. 초임교사가 건방지다고 혀를 찬 선배교사도 있었을 거다.
학생들에게 학창 시절의 추억을 진하게 새겨주기 위해 수당 없는 시간 외 근무를 참 많이 했다. 근무했던 학교는 광주광역시에 위치했다. 봄에는 한껏 멋을 내고는 우르르 시내버스를 타고 지산 유원지로 벚꽃 놀이를 나갔고, 여름에는 버스를 대절하여 신안 증도 해수욕장으로 가서 살갗을 태웠다. 가을에는 담양 죽녹원에서 자전거를 탄 후 평상에 둘러앉아 잔치국수를 먹었다. 겨울에는 눈썰매장이 있는 산속 펜션에서 1박 2일을 보냈다. 말썽쟁이 남학생들만 모아 제주도를 다녀왔고, 지리산 1박 2일 등반을 했다. 여름방학에는 소수정예 학생들을 데리고 전남 보성으로 2박 3일 무전여행(1인당 딱 5만 원만 가져왔다.)을 떠났다. 돌이켜 보면 참 아찔하다. 조그만 사고라도 났다면 어찌 됐을까. 동학년 담임선생님들은 나 때문에 꽤나 곤욕이었다. 왜 우리 반은 놀러 가지 않느냐는 학생들의 성화를 참아내야 했다. 나는 그분들께 민폐였다. 열정이 넘치다 못해 무모했다. 주위를 돌아보며 속도를 조절할 만큼의 지혜가 부족했다.
혁이와 나는 두 사람이 각자 사는 도시의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혁이를 만나러 가는 길은 나의 첫 제자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다. 20대 후반의 나를 다시 마주하는 걸음이기도 하다.
어느 제자들의 근황이 가장 궁금할까. 아무래도 아슬아슬한 사춘기를 보냈던 제자들이다. 궁금증이라기보다는 염려에 가깝다. 여전히 위태롭게 걷고 있는지. 제 선로를 찾아 굳세게 나아가고 있는지.
"호현이는 어떻게 지내?"
"호현이요? 샘, 진짜 골 때리는 얘기 해드릴까요?"
호현이는 말썽쟁이 중에 말썽쟁이였다. 급식에서 나온 바나나를 먹고는 껍질을 굳이 학교 담 건너 집 지붕에 올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는 사물함 뚜껑을 뜯어내어 썰매로 활용하는 창의성을 발휘하였다. 겨울 호수의 얼음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아보기 위해 손수 얼어붙은 물 위를 걷다가 얼음이 깨져 하반신을 홀딱 적시기도 했다. 여름방학 중에는 삶의 현장을 생생히 체험하고 싶었는지 가출을 해서 꽤 오랜 시간 숨바꼭질을 해야만 했다. 누나만 셋이어서, 늦둥이여서 오냐오냐 키웠더니 엄마 말을 듣지 않는다며 눈물을 보이시던 호현이 어머니의 시름과 주름은 깊어져만 갔다. 머리는 좋아서 수학만큼은 곧잘 했다. 당시 그 학교는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이 많아서 시험이 어려웠는데도 수학 시험에서 여러 번 100점을 맞아 모두를 놀라게 했다. 수학은 100점인데 전 과목 평균은 40점대였다. 이런 학생이었다. 그래도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는 야비함은 없었다. 스스로를 괴롭게 하고, 뒷수습하는 부모님과 교사를 힘들게 할 뿐이었다.
호현이는 철들지 못하고 졸업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산만한 소식뿐이었다. 두뇌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중학생까지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노력하지 않으면 우수한 성취도를 나타낼 수 없다. 호현이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날개를 달았다. 미성년자여서 암암리에 해야 했던 많은 것들이 하루아침에 그의 세상에서 합법이 되었다. 그는 즐거울 때도, 짜증 날 때도, 슬퍼할 때도 알코올과 함께 했다. 군대 가면 철이 좀 들려나. 전역 후에도 일관성을 잃지 않았다. 이제 27살. 27살이면 경제적 활동을 할 나이다. 호현이는 어떤 생산적인 일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술, 술, 술이었다. 그러다 대학 병원에 입원할 만큼 술병이 나버렸다.
어느 화창한 날. 눈부신 햇살이 그의 병실에 비춘다. 다소 몸이 회복된 그는 산책하고 싶어 진다. 수액 거치대를 지지대 삼아 걷던 중 저 멀리 보이는 하얀색 가운을 입은 여자가 낯이 익다. 누구였더라?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기억이 선명해진다. 희주다. 벚꽃놀이를 하고 해수욕장에서 물장구를 칠 때도 빠지지 않았던 그 희주다. 자전거 타고 잔치국수를 먹을 때도, 겨울 산에서 눈썰매 탈 때도 같이 있었다. 그 희주가 지금도 함께 있다. 다만 12년 전에는 둘 다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입고 있는 옷도 다르고 불리는 명칭도 다르다.
"혹시 희주니?"
"어? 호현이 아니야?"
"맞아."
"대박."
희주는 호현이가 반갑다. 호현이도 희주가 반가웠지만 속이 쓰리다. 병원에 있는 동안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속이 아려온다. 호현이에게 일생일대의 현실 자각 타임이 온 것이다.
"샘, 호현이가 병원 퇴원하고 뭐 샀게요?"
"뭔데?"
"중학교 수학 문제집 샀데요."
"수능을 보겠다는 건가?"
"네, 약대 간데요."
"허허."
"근데, 중학교 1학년 수학도 너무 어렵다고 그러네요."
호현이가 병원을 나와 가장 먼저 들른 곳이 포차나 칵테일 바가 아니라 서점이었다는 건 참 반가운 소식이다. 그 좋은 머리로 정신 바짝 차리고 노력한다면 그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실현될지도 모른다. 다만 그의 두뇌는 더 이상 15살 때만큼 휙휙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지금까지 마음 이끌리는 데로 살아온 삶의 관성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의 발목을 부여잡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제는 많이 지치셨고 늙으셨기에 부모님께 마음 편히 용돈 받으며 공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각자의 때가 있다지만 그 시기가 조력자들의 때와 어긋나면 고생은 2배, 3배가 된다. 제자를 응원하지만 어려운 과정임을 알기에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
초, 중, 고 학창 시절, 놀기도 잘 놀았지만 공부도 열심히 했던 희주는 원하던 대로 흰 가운을 입게 되었다. 꿈을 이룬 희주라고 왜 속이 쓰릴 때가 없었을까. 학원에 더 보내려는 엄마와 싸우고는 담임교사 앞에서 울고 불고 하던 희주였다.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조금만 더 늦게 도착하도록 천천히 가면 안 되냐고. 도착하면 바로 학원에 가야 한다며 속상해했다. 고등학생 시절, 한 문제 실수로 1, 2등급이 왔다 갔다 하는 시험을 12번이나 치르면서 얼마나 많이 마음 졸였겠으며 모의고사 성적이 나오지 않을 때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속이 쓰리고도 쓰렸으리라. 의대에 가서도 끝없는 공부, 공부, 공부. 이제 전공의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안갯속을 걷고 있다. 병원에 남아야 하는지, 밖으로 나가 저항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번민의 시간이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착실하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의사가 되어 대학 병원에서 근무하는 잘난 제자에게나, 지붕 위로 바나나 껍질이나 던지고 술병 나서 대학 병원에 환자로 입원한 못난 제자에게나 삶이 만만하지 않은 건 동일하리라. 웃음과 풍요와 행복만 가득하면 좋겠다만 삶은 예측을 허락하지 않고 원치 않는 손님은 늘 우릴 기다린다.
또 한 번 12년이 지나 혁이를 다시 만나면 어떤 소식들을 접하게 될까. 부디 그들의 삶에 행복한 순간이 더 많길.
ps.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