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아이와 함께 「에너지 광복절」(출판: 고래이야기)이라는 그림책을 읽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 중 원자력 발전의 장점과 단점을 다루는 내용이었다. 원자력 발전은 적은 자원으로 큰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서 각광을 받는다. 하지만 폐기물 처리에 드는 비용이 매우 크고 방사능 유출 위험도 있어서 완벽한 에너지 자원이 아니다. 우리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파괴된 원전에로 흘러갔다. 원전 사고로 인해 방사능 오염수가 계속 쌓이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10년 동안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해 2023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는 심각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근방 국가 외에는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지는 않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아이는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창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심각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왜 다들 아무렇지 않은 거야?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일본 정부가 그런 결정을 내린 것도 놀랍지만, 그 소식을 듣고도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간다는 게 더 납득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아이의 말이 맞다. 온 세상이 떠들썩해야 할 문제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다. 코 앞에 닥쳐야만 한껏 떠들썩해질 테다. 생태학자들은 만약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일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세상을 바꿔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더라면 코로나 19라는 무서운 질병도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살기 위해, 당장의 손해를 줄이기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안전을 무시하는 일이 도처에서 일어난다. 아이는 질문했고 나는 적절한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나는 아이와 이런 나눔을 해가고 싶었다. 우리를 있게 해 준 하나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함께 하는 이웃, 그리고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 배움이고 배워 가는 과정이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 한 생각이 아니라 19세기 영국의 교육가 샬롯 메이슨(Charlotte Maria Shaw Mason)이 한 말이다. 아이와 함께 배워가면서 지식이 지식에만 그치지 않고 내가 살아가는 삶과 연결시킬 수 있기를 바랐다. 배움이 배우지 못한 사람과 나 자신을 나누는 기준이 되지 않고, 세상과 더 좋은 관계를 맺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경쟁에서 승리하는 방식을 배우기보다 서로에게 덕을 끼치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이 내가 꿈꾸는 홈스쿨링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