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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Apr 04. 2022

손바닥만 한 취학통지서

잊을만하면 집에 한 번씩 찾아오시는 분, 통장님. 2019년 12월 어느 저녁에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셨다. 큰 아이의 초등학교 배정을 알리는 취학통지서와 기타 안내문을 가지고 오셨다. 아이들은 조르르 몰려나와 내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 섰다. 통장님은 아이의 이름과 안부를 간단하게 확인한 후 가셨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상상만 하던 일이 현실로 닥쳤다. 취학통지서는 손바닥만 했다. 초등학교 입학은 일생일대의 사건(?)인데... 이렇게 작다니? 왠지 실망스러운 기분부터 들었다. 뭐든 처음은 긴장되고 걱정스러운 데가 있다. 특히 첫 아이가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는 건 다른 시작보다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안고 있기 불안할 정도로 작고 연약했던 아이가 어느새 이만큼 커서 본격적으로 자기만의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사실은 아직도 작은데, 여전히 나에게는 아가인데. 감상에 젖을 찰나, 아참, 우리는 홈스쿨러다. 


월요일, 마음을 가다듬고 학교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홈스쿨을 하겠노라 연락하기 위해서다. 홈스쿨을 먼저 시작한 분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학교마다 반응이 제각각이다. 어떤 곳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어떤 곳은 홈스쿨 가정 경험이 많아 진행이 수월하다고 했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어떤 질문을 받을까, 약간 긴장된 마음이었다. 학교 대표전화는 행정실이었다. 행정실에서는 그런 업무는 보지 않는다며 교무실로 전화를 돌려줬다. 내 전화를 돌려받은 선생님은 이런 일은 교무부장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며 전화번호를 남겨 달라고 했다.


몇 시간 후 전화가 걸려왔다. 아나운서 같은 목소리를 가진 젊은 교무부장 선생님이었다. 긍정적이고 친절한 말투는 내 마음을 안심시켰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 다른 학교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아보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먼저 아이의 반과 이름 등을 확인하는데 학교는 그렇지 않았다. 아이의 이름이며 내 이름, 홈스쿨링 사유 따위는 묻지 않았다. 


"예비소집일에 오셔서 취학통지서 제출하면서 홈스쿨링 한다고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만약 그날 오지 않으시면 학교 측에서 소송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홈스쿨링을 따로 신청하는 절차는 없습니다. 등교하지 않으면 중간중간 연락이 갈 텐데, 90일 동안 출석하지 않으면 정원외 관리로 넘어가게 됩니다. 정원외 관리로 넘어가기 전에 운영위원회가 소집될 수 있습니다."


긴장이 무색하게 생각보다 간단했다.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잡혀가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학교는 의외로 개별 신상에 별 관심이 없는 느낌이었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은 다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고 공연히 학교와 척을 질 필요는 없다. 시민이자 학부모로서 의무를 다하고 학교에서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일을 끝내고 보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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