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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May 22. 2022

산으로 들로 다니지는 않지만

도심 속의 홈스쿨러

 홈스쿨링을 하는 가정들 중에는 제주도나 양평 등 자연과 벗 삼아 살 수 있는 지역으로 이사하여 사는 경우가 왕왕 있다. 파도가 밀려드는 모래사장을 아이들이 벗은 발로 총총이 걷는 사진이나, 우거진 산림 속에서 자연을 누리는 한 인간으로, 혹은 자연의 일부가 되어 노니는 아이들의 사진이 '홈스쿨링'이라는 단어와 함께 내 머릿속을 맴돈다. 학교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적어도 그런 곳에서 마음껏 나무와 꽃들을 친구 삼아 살아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학업과 성적으로부터 자유로운,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경쟁보다는 협력으로 '살아갈 것 같은' 홈스쿨러 아이들은 도시보다는 자연이 더 어울릴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곳은 수도권에 있는 신도시다. 집과 상가들로 빼곡한 서울의 여느 동네보다는 근린공원이나 호수공원 등이 잘 조성되어 있는 경기도 신도시도 나름 괜찮은 선택지 아닌가? 하지만 도심의 자연과 시골의 자연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구경하는 경관일 뿐이며, 후자는 누리는 자연이다.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 아파트 내 수목에서 떨어진 낙엽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자연은 놀이터이므로 스스럼없이 낙엽을 발로 차고 던져도 보고 바스락 소리를 들으며 밟아보기도 했다.

"이놈들! 여기서 놀지 말아라!"

낙엽을 청소하는 청소원이셨다. 떨어진 낙엽을 한쪽으로 다 쓸어 놓았는데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바람에 여기저기 흩어지고 말았다. 아저씨 입장에서 충분히 짜증날만 했다. 거기까지 미쳐 생각하지 못해 내 마음도 화들짝 놀라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로 갔다. 하지만 내가 어릴 적 시골에서 뛰어놀던 때가 생각나서 서글퍼졌다.


 꽃이며 풀이며 따다가 돌멩이 위에 짓이겨 음식이랍시고 만들어 놀고, 꿀벌이라도 된것 마냥 친구들과 아카시아 꽃을 따서 뒤꽁무니 꿀을 빼먹던 기억. 나무에 올라가 사슴벌레를 잡기도 하고, 논두렁 앞에 앉아 꼬물대던 올챙이를 바라보던 기억도 났다. 하지만 사람이 돈을 들여 심어놓고 가꾸어 놓은 꽃과 나무는, 혹은 돌멩이까지도 거기 그대로 있어야 할 존재라서 그저 바라만 볼뿐 소꿉놀이로 잠깐 사용한데도 마음이 불편하다. 아이들에게 자꾸만 '하지 말라'라고 얘기하게 된다.


 도시의 홈스쿨러가 학교에 다니지 않음으로 획득한 시간과 공간의 자유는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 걸까? 아이들은 어디서든 잘 놀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 빈약한 놀잇감들, 모두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장난감이나 키즈카페뿐이라서 못내 씁쓸하다. 그러므로 똑같은 크기의 교실과 똑같이 생긴 네모 학교를 벗어나도 충분히 놀 수도 없다. 그러나 만약 이 시간을 모두 공부하는 데 써버린다면 굳이 학교를 다니지 않을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솔직히 오전에만 잠깐 공부하고 오후에 피아노나 미술학원을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놀 시간이 별로 없다. 우리의 생활이 학교 다니는 것과 크게 다른 것은 무엇이지? 오히려 더 안 좋은 것은 아닐까? 종종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어질러진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은 생각이 확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강한 멘탈을 가졌다고 짐작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경우는 다르다. 내가 이 길을 선택하여 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자주 상기하고, 내가 바라는 바가 꼭 홈스쿨링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건지 여러 번 생각한다. 그렇지만 결국 '아무도 완벽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는다'는 말을 되뇌게 된다. 완벽하고 온전한 환경을 주고 싶은 마음이 나쁜 마음은 아니겠지만 성공할 수 없는 목표라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만 덜 방황하고, 덜 조급할 수 있다.


 친구들과 경쟁하고, 경쟁의 결과로 서로의 우열을 가리고, 그것이 존재가 되어버리는 성과 위주의 교육환경을 벗어나 있다는 것만으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되었다. 좋은 대학이 목표가 되지 않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것도, 본연의 속도와 관심사대로 배워간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감사할 것을 찾아 '지금', '여기에' 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을 기뻐해야지. 그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삶으로 보여주고 물려줄 수 있는 마음의 재산이기도 할 테다. 그리고 가급적 자주 산이나 혹은 공원에서 자유롭게 자연을 즐길 시간도 주어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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