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입학식은 미뤄졌지만 홈스쿨링 입학식은 미룰 필요가 없었다. 3월 1일 휴일에 입학식을 열기로 했다. 어떤 홈스쿨 가정을 보니, 아빠를 교장선생님으로 세우고 지인들을 초대해서 나름 격식 있게 입학식을 열기도 했던데 우리는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렇게까지는 할 수가 없었다. 우선 우리 홈스쿨의 이름을 정하고 현수막을 만들었다. 식탁이 놓여 있는 주방 벽면에 현수막을 설치하고, 입학 선물로 책가방과 공책, 학용품 등을 준비했다. 아이 셋을 식탁에 쪼르르 앉혀두고 롤케이크와 다과를 세팅한 후 입학식을 거행했다.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아이들은 먹을 것과 선물에만 집중했다. 둘째는 어서 끝내고 먹고 싶어 했고, 셋째는 자기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없다는 걸 알고 꺼이꺼이 울었다. 첫째만이 아빠가 전달해주는 선물을 받고 앞니 빠진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야심 차게 시작한 우리의 홈스쿨. 그러나 코로나로 어린이집을 퇴소한 두 아들을 집에서 돌보며 큰 아이를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일어나자마자 배고프다는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차려 주고, 대강 정리한 후 큰 아이와 공부를 한다. 남은 두 아이가 저들끼리 놀면서 시끄럽게 하면 조용히 시키고, 싸우면 중재하며 오전이 흘러간다. 점심은 간단히 해결, 놀이터에 나가 논다. 옷을 입혀 나가야 하는데 누구는 나가기 싫다고 울고, 누구는 옷을 안 입겠다고 도망 다닌다. 달래고 설득해서 겨우 나가 한두 시간 놀고 들어온다. 씻기고, 간식 먹이고 설거지하면 금세 저녁 준비할 시간이 돌아온다.(그 사이사이 아이들은 싸우고, 울고, 무언가를 흘리며, 장난감과 장난감이 아닌 것들을 어지른다.) 저녁 먹이고 청소하고 잠 잘 준비를 한 후 읽을 책을 골라 넷이 쪼르르 눕는다. 책을 읽다가 하나 둘 잠이 들고 끝까지 책 다 읽고 쪼잘대던 큰 아이까지 잠 들고나면 그때부터 또 다른 시작! 이제 학습 교안 준비할 시간이다.
계획은 거창했다. 매달 하나의 주제를 정해 그와 관련된 책을 골라서 함께 읽고 독후활동을 하기로 했다. 도서관은 문을 닫았고 그렇다고 매번 책을 살 수는 없어서 집에 있는 책을 활용했다. 출판사에서 독후활동지를 배부해 주는 곳도 많은데, 집에 있는 책만 사용하다 보니 독후활동 내용을 정하고 교안을 만드는 일은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학습 계획은 한 달에 한 번 세우고, 세부 교안은 일주일에 한 번 만들지만 기록은 거의 매일 했다. 독후활동을 한 자료들은 파일에 따로 철해놓고,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 운영하는 블로그에 기록해두었다. 재미있고 보람도 있고... 피곤은 덤이었다.
아이들이 잠든 후에 할 일이 많은데, 애들 잘 때까지 기다리다가 덩달아 잠들기 일쑤였다. 어떤 날은 책을 읽어주다가 졸아서 책이 몇 번이나 얼굴로 떨어지기도 하고(누워서 읽다 보니), 결국 잠들어버린 나를 아이들이 깨우는 날도 있었다.
"여보, 체력이 약한 것 같아. 출근 전에 아이들 봐줄 테니 나가서 운동하고 와."
남편은 내 체력이 약한 것 같다며 아침 운동을 권유했다. 아이들이 깨기 전에, 일어나자마자 근린공원에서 30분 정도 가볍게 조깅을 했다. 그러기를 한 달쯤, 체력도 좋아지고 더불어 살도 좀 빠지기를 바랐건만 갑상샘 항진증이 도지고 말았다. 갑상샘 항진증은 좀 과로한다 싶으면 한 번씩 찾아오는 손님이다. 급격하게 살이 빠지고 머리카락도 빠지고, 미친 듯이 피곤한데 불면증에 시달리고,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며 신경질적이 되는 병. 나만 혼자 더워 죽겠는 병. 흔한 병이지만 증상이 결코 가볍지는 않다. 결국 운동을 관뒀다. 운동도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 내가 건진 수확이었다.
학습 교안을 만드는 일도 관뒀다. 도저히 할 수 없었다는 말이 더 맞겠다. 대신 1학년 교과서를 펴 들었다. 교과서도 아무나 만드는 게 아닐 텐데 아무렴 나보다 낫겠지. 고등학교까지 홈스쿨링을 한다면 12년, 아니지, 막내 홈스쿨 졸업까지 따지면 16년 동안 해야 하는 장거리 마라톤인데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자고 타협했다. 공부만 하자고 홈스쿨을 시작한 것도 아니니까. 시행착오는 필수불가결이다. 나를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