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나는 또 낑겨서 잤다. 자리를 조금 이동해 잠을 청해도 어느새 아이들 틈에 끼여 있다. 잠결에 나는 마치 햄버거 빵 사이에 낀 고기 패티같이 납작해졌다고 느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나와 떨어져 조금씩 독립하고 있지만 잠자리만큼은 엄마를 양보할 수 없다는 아이들의 신경전은 대단하다. 엄마 옆자리를 선점하려고 침대로 몸을 날리는가 하면, 이미 누워 있는 아이와 내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기도 한다. 아이가 둘이면 조금 나을 텐데 셋이라서 더하다. 내 옆에 누울 수 있는 순서를 정해두었지만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아빠의 곁이 쓸쓸한 만큼 엄마의 곁은 벅차다.
첫째 아이를 낳고 집에 있게 되었던 1년 간은 기자들로부터 종종 연락을 받았다. 매일 아이랑 단 둘이만 있다가 외부 세상으로부터 연락이 오는 건 생각보다 더 기쁜 일이었다.
'내가 아직 잊히지 않았구나!'
하지만 1년이 넘어가자 그런 연락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휴대폰 주소록에 남아있는 수많은 기자들의 이름은 이제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나는 '엄마' 아니면 '가정주부' 외에는 다른 수식어를 붙일 수 없는 여자 사람이 되었다. 지인 중 한 사람은 출산으로 그만둔 직장에서 다시 출근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육아에 필요한 배려를 다 해줄 테니 함께 일하자고. 그의 능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부럽기도 하고 한편 나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려면 돈이 더 필요한데 되레 일을 그만두었으니 허리띠를 있는 대로 졸라가며 생활해야 했다. 사회적 지위도 돈도 없는 나는 아무리 예쁜 것을 고르려고 해도 태가 나지 않는 수유복처럼 후줄근해 보였다.
간혹 우울감이 나를 찾아왔지만 내내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더욱 사랑스러워졌다. 힘껏 젖을 빠느라 두 볼이 상기된 채로 입을 약간 벌린 채 잠든 모습을 보노라면, 어디서 솟아오르는지 모를 사랑이 나를 벅차게 만들었다. 오물오물 밥을 씹는 입도 귀엽고, 아장아장 걷는 토실한 종아리만 봐도 기분이 좋았다. 그게 뭐 별거라고 "엄마, 해봐." 하고는 어눌한 발음으로 "엄마"하고 부르면 까르르하고 넘어갔다. 함께 먹고, 자고, 걸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아이에게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아이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어린시절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잊고 있었던 추억이 생각나고 감춰두었던 상처가 끄집어내졌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부족한 것 투성이였던 내 유년시절이, 그마저도 엄마 아빠의 애씀이 아니었다면 유지되지 못했을 모습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눈치채지 못했던 곳곳에 사랑이 묻어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나를 다시 키우는 일 같았다. 커리어는 잃었지만 정체성은 잃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로 살면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되었다. 알고 싶지 않은 모습도 많지만 말이다.
"엄마도 전에는 직장에 다녔었어. 그런데 너를 낳고 네가 너무 예뻐서 매일 너와 같이 있고 싶더라.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너랑 함께 있게 된거야."
처음 이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 아이의 눈은 반짝였다. 그리고 요즘은 종종 동생들에게 전설처럼 들려준다. 내가 직장을 그만 둔 이유가 '너 때문'이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내 선택이었음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아이에게 그 마음이 전달된 것 같다. 돈을 버는 직업이 없을 뿐 내게 일이 없는 건 아니다. 가정의 재정을 관리하고 아이들에게 영양가 있는 식단을 제공하고 집을 정갈하게 가꾸는 중대한 일을 맡고 있다. 내 손길 속에 아이들이 자라간다. 아이들의 사랑 속에 나의 존재는 의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