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제나 Aug 28. 2024

남을 통해 나를 본다는 것은

달리기 모임 초심자를 응원하다가 든 생각

‘제가 책임지고 도와드릴께요. 할 수 있어요.’



이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 분명히 친절한 말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운동에는 진심이지만 서비스에 서툰 헬스장 관장님이 멸치 신입에게 건넬 말처럼. 사실 이 말은 달리기 클럽에 새로 온 사람에게 내가 자주 건네던 말이었다. 내 딴에는 달리기가 두려운 초심자의 용기를 풀-충전하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말을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 들으니 느낌이 사뭇 달랐다. 막상 들어보니 오늘까지만 나오고 정중히 도망치고 싶었다. 달리기가 두려운 게 아니라 그룹에 폐를 끼치는 게 더 걱정되는 사람의 마음을 처음 느꼈다.


가끔 이렇게 남을 통해서 나를 본다. 예컨대, 내 모습을 타인에게서 본다. 거울을 볼 때는 몰랐는데, 피부가 푸석푸석해서 아쉬운 상대를 보고 반성하는 거다. 아. 그동안 내 피부에게 실례했구나! 선크림 바르는 걸 너무 자주 까먹었구나! 내 모습이 아니라 내 행동을 타인이 고대로 보여줄 때도 있다. 더운 날씨에 상해 버린 개떡같은 질문을 던지고 지루하게 답하는 글을 읽으며 깨닫는 거다. 제기랄 이 쉰내 나는 글. 완전 내가 쓰는 글 같은데. 그렇다면 지금껏 내 글에 반응해 준 사람들은 친절했거나 아니면 짤방만 보고 글을 읽지는 않았구먼. 내게는 이렇게 타인을 보면서 오히려 나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더 알게 된 순간이 적지 않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내가 객관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그걸 아는 하나의 방법은 타인이 나에 대해 말하는 바를 충분히 듣는 것일 텐데, 내 주위 사람은 내게 친절하면서도 동시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나는 그런 인풋을 충분히 들어본 적이 없다. 흔히들 그 대안으로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귀 기울이라 권한다. 내 주위에는 명상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심지어는 묵언수행을 떠나고 돌아온 후에 자신을 더 알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방법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편이다. 그렇게 찾은 내 모습은 평소의 내 모습이라기보다는, 내가 누군지 찾으려 발버둥 치는 순간의 모습이 아닐까. 마치 국어 시간에 읽던 시에서 온갖 의미를 뽑아냈듯이.



그래서 나는 별생각 없이 타인을 보다가 ‘어, 저거 내 모습 아닌가?’라고 느끼는 순간에야말로 그나마 객관적인 나 자신을 만나는 것 같다. 대체로 그런 순간에는 남에게 받은 평가에 에고가 날 서 있지 않다. 휴가를 내고 낯선 여행지를 돌아다니며 드디어 자신을 돌보는 것 같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가족이나 친구에게서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아 자존감이 기세등등한 상태도 아니다. 타인에게서 나를 보는 경험은 오히려 무방비 상태의 내 자아를 만나는 체험이다. 목욕탕에 갔는데 나체인 채로 예상치 못한 지인을 만나는 일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에, 목욕도 끝마치지 않은 채 서둘러 자리를 떠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렇게 깨닫는 내 객관적인 모습은 나의 흠결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것이 가끔은 현재의 내 모습이 아니라 과거의 내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면 나는 비로소 내가 단순히 늙기만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깨끗이 세신을 한 사람처럼 그동안 내 부족한 부분을 약간이나마 더 갈고닦았다고 느낀다. 내가 객관적으로 개미 발톱 만큼은 더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면 나 자신에게도, 과거의 내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 사람에게도 조금이나마 더 넉넉한 마음이 생긴다.



그런 순간의 예시를 생각하다가 작년 이맘때쯤 어떤 졸업반 여학생이 내게 한 말이 떠올랐다. ‘인스타 스토리를 보면 여자친구 없는 사람 같아요.’ 당시 나는 달리면서 헐떡거리는 내 모습과 꽃, 바다, 책 사진 따위를 심심찮게 찍어 올리던 중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내 인스타 스토리와 그 말의 인과관계를 이해했다. 나와 비슷한 감성의 스토리를 올리는 지인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솔로였다. 그리고 그의 인스타에서는 진한 솔로 향기가 났다. 친절한 그 학생은 내게 완곡하게 말해준 거였다. ‘솔로탈출 하려면 그런 쉰내 나는 아재 콘텐츠 좀 제발 그만둬요.’ 놀랍게도 그런 콘텐츠를 양산했던 나는 솔로 탈출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솔로이자 아재스타그램 외길을 걷는 지인에게 상냥하게 말해주고 싶다. 아재스타그램 콘텐츠 생산 라인에서 얼른 도망치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만을 기다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