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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주아 Dec 23. 2016

지금 이대로 충분해

내가 여기 살았다면 딱 내 모습일 텐데 싶었다


현재를 소중히 하고,
순간을 즐겨야 해.
언제까지나 머물 수는
없을 테니까.




밤새 감기 기운에 몸을 뒤척였다. 둥그렇게 웅크리고 온기를 찾아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이러면 안 되는데...... 어제부터 목이 간질간질하더니 결국 편도선이 부어올랐다. 침을 조금만 삼켜도 칼로 긁는 듯 따끔거린다. 체력을 너무 믿었다. 10년 넘게 출퇴근만 해오다가 갑자기 대륙을 넘나들고, 닥치는 대로 걸어 다니고, 새로운 것들을 접하느라 몸도 머리도 과부하가 걸린 듯하다. 그래도 목감기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다. 아니, 괜찮아야 한다. 지금 나에게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

 

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 솔직히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2009년 여름 아버지가 폐암 말기 선고를 받으셨을 때부터 2010년 겨울 돌아가셨던 순간까지, 그 시기를 제외하고는 시간 같은 거 빨리 가버렸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삶에게 미안할 만큼 무심했다.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학생 같은 마음으로 난 무엇이 끝나기를 바란 것일까. 그렇게 외면하고 미뤄뒀던 삶의 의미와 소중함이 여행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만나 다시 깨어나려 한다.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 기회가 있을 때 누려야 한다는 것은 여행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생애 첫 여행이 말한다. 현재를 소중히 하고, 순간을 즐겨야 한다고. 언제까지나 머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아직 아침 6시. 아침잠이 많은 편인데 이렇게 일찍 눈이 떠진 것이 신기하다. 몸을 일으켜 앉았다. 오늘 체크아웃을 해야 하니까 저 발코니도 마지막이다. 그래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지, 발코니에서의 아침.

일어나 잠옷 차림 그대로 카디건을 걸쳤다. 커튼을 젖히고 발코니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가니 날은 이미 밝았고 시원한 아침 공기가 떠다니고 있었다. 일주일 전 온통 비로 예보되었던 것과는 다르게 연이어 날씨가 맑다.

거리로 눈을 돌리니 출근하는 사람들과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몇몇 보이고 한산한 버스도 지나간다. 그다지 치열해 보이지 않는 나라다. 한국의 4.5배에 달하는 국토 면적에, 살고 있는 인구는 한국의 5분의 1. 본의 아니게 극과 극을 체험하고 있다. 어쨌거나 나는 출근하지 않는 평일에 스톡홀름의 호텔 발코니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감회가 매우 짜릿하다. 감기가 악화되면 안 되니 이쯤 해둬야겠다. 이따가 스웨덴 약국이나 가볼까? 새로운 도전 거리가 생겼다.


아침을 먹은 뒤 빨갛고 반들반들한 사과를 손에 들고 올라와 다시 발코니로 나왔다. 햇볕이 데워놓은 의자에 앉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사과를 먹으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심장이 쿵 내려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등을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딩- 딩- 딩-”


아름다운 오덴플란 거리에 묵직하고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울림을 느꼈다. 재촉하는 종소리가 아니었다. 10초쯤마다 한 번씩, 서두르지 않고 다가오는 경건한 신호였다. 힘들고 지친 자는 다 내게로 오라는 듯 자비심이 넘치는 아름다운 소리. 종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발코니 앞 중세풍 건물인 구스타브 바사 교회였다. 이곳의 일상적인 종소리가 여행자에게는 예상치 못한 감동을 주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까? 아니면 감동을 느낀 것은 당신의 일이라고 선을 그을까?


스톡홀름에 머문 지 얼마 되진 않지만 그런 선을 종종 느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곳엔 그런 경계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았다. 호텔에서 체크아웃할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마음 같아서는 내내 머물고픈 숙소였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 조금 일찍 내려갔다. 낮엔 스웨덴 여자가 프런트 데스크를 지키고 있었다.

"헤이 헤이(Hej Hej)" 그녀가 환하게 인사를 했다. (Hej는 '안녕하세요'란 뜻)

"요 앞 시립도서관에 잠깐 다녀올까 하는데요, 캐리어 좀 맡길 수 있을까요?"

"네 그러세요. 그런데 우린 그냥 저기에 둘 뿐이에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프런트 데스크 바깥쪽 로비 코너였다. 대여섯 개의 검은 짐가방들이 놓여 있었다. 태그나 번호표는 없었다. 한마디로 컨시어지 서비스는 없고 그냥 놓고 갈 테면 가라는 거였다. 덧붙여 자신들은 분실에 대한 책임이 없음을 강조했다. 캐리어를 끌고 도서관에 가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불안불안한 곳에 가방을 두고 가기도 뭐했다.

"솔직히 저기에 두고 가긴 좀 그렇네요. 책임도 안 지신다고 하니." 나는 고민이 됐다.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그녀는 나의 사정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럼 거기 안쪽에 좀 두시면 안 될까요?" 나는 마침 눈에 들어왔던 그녀 등 뒤의 공간을 가리켰다.

"네 그러세요." 그녀는 나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캐리어를 넘겨주고 나오며 드는 깊은 깨달음.

'이 도시는 남을 위해 먼저 나서서 배려를 베푸는 세상이 아니구나...... 자기 것은 자기가 챙겨야 하는구나......'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의 외관은 독특하다. 톤다운된 짙은 살구색의 사각형 건물 위로 같은 색의 나지막한 원통형 기둥이 솟아 있다. 도서관의 살구색은 담장의 상아색과 나무들의 초록색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더욱 빛을 발한다. 색감의 조화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되어 기분을 좋게 한다. 분명 촌스러울 수 있는 밋밋한 건물인데 볼수록 정감이 간다. 파란 하늘까지 어우러지고 예쁜 폰트까지 가세하니 점점 더 사랑스럽다.


도서관 출입문을 밀고 들어섰다. 어마어마한 높이의 직사각형 통로가 입구의 분위기를 압도했다. 행여 발소리가 날까 조심해가며 서가로 이어지는 반들반들한 돌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올라갔다. 새로운 세계로 이어지는 듯한 통로를 지나 꼭대기에 올라서자 놀랄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투박하다 생각했던 원통형의 설계가 이렇게 아름다운 내부를 품고 있을 줄 몰랐다. 원통의 내벽을 둘러싸며 3개 층에 걸쳐 수많은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설계자인 군나르 아스플룬드라는 사람은 천재임이 확실하다.


책들은 마치 거대한 오케스트라처럼 한꺼번에 펼쳐졌다. 꼭대기의 불투명한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과 높은 천장 한가운데 떠있는 은은한 조명등 때문에 공간 전체가 부드럽고 차분한 빛으로 가득했다. 매일 오고 싶은 공간, 머물고 싶은 공간이었다. 스톡홀름에 와서 특히 느끼는 것은, 이곳은 평범한 것들이 모두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아름다움의 가치는 눈의 즐거움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영혼 깊은 곳까지 풍요롭게 한다. 영혼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세상도 조금 더 아름답게 변하지 않을까.


대부분 스웨덴어 책들이라 읽을 수는 없었지만, 무슨 책이라도 꺼내 읽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겼다. 1층부터 3층까지 장르별로 구분되어 있는 서가를 천천히 걸었다. 얼마 안 되는 영어책 섹션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한 권 꺼내 펼치니 오래된 책 내음이 난다. 이마저도 좋다. 고요를 깨트리며 여기저기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도 좋다. 책을 고르는 사람과 책을 읽는 사람, 나처럼 구경하러 온 여행객 등 풍경도 제 각각. 서가 뒤편의 좀 더 은밀한 장소에서는 방해받고 싶지 않은 독서 분위기가 한창이다. 백인 여자, 흑인 남자, 백발의 할아버지... 다양한 사람들이 앉아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다. 책 속으로 빠져들어 집중하고 있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이렇게 스톡홀름에 빠져든다.




오후에는 스톡홀름 시청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시청 근처 정류장에 내렸다. 5분쯤 걸어가니 바로 나타난 시청 건물. 하지만 그 너머에 얼핏 보이는 멜라렌 호수가 더 반갑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길의 끝자락까지 걸어가 물가에 섰다.


'눈부시게 아름답다!'


하늘 한가운데서 내리쬐는 태양 아래, 섬과 섬 사이를 흐르는 잔잔한 물결. 그 위로 투명한 보석이 한가득 뿌려져 있다. 호수는 목소리를 잃은 요정처럼 고요하게 빛난다. 청초한 파란빛이 신나게 하늘 가득 펼쳐지고, 새하얀 뭉게구름이 즐겁게 모양을 빚어낸다. 먼발치에는 몇 세기 동안 자리를 지켜왔을 바로크풍 건물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곳곳에 서있는 초록 나무들은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결에 잎사귀를 나부낀다.


한 켠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의자에 앉아 강렬한 햇볕에 몸을 맡긴 채 늘어져 있는 사람들. 내가 스톡홀름에 살았다면 딱 내 모습일 텐데 싶다.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 멜라렌 호숫가에서는 욕심이 사라진다.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충분하다. 이런 충만감을 언제 느껴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트려놓기 일쑤였지만 더할 나위 없이 가득 찬 느낌을 조금이라도 오래 담아두고 싶어, 나는 오랫동안 그 자리를 맴돌았다.


호숫가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시청사 앞이다. 시청 앞 정원은 여기저기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스톡홀름 치고는 모처럼 분주하다. 오래간만에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섞여서 복작거리는 풍경이다. 아이들은 잔디밭을 운동장 삼아 뛰어놀고, 커플들은 물가 경치를 배경으로 몇 번이고 기념사진을 다시 찍느라 집중한다.

시청사 건물은 실제로 직원들이 근무 중인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공식적인 가이드 투어로만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나는 3시에 시작하는 오늘의 마지막 가이드 투어에 참가하기 위해 서둘러 시청 안으로 들어갔다.


길거리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던 관광객들이 여기 다 모여 있었나 보다. 어둑어둑한 로비에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꽉 채운 인파 사이를 겨우 헤집고 스탭 중 한 명이 다가와 모국어가 뭐냐고 묻는다. 한국어라고 하니 A4용지에 한글로 인쇄된 자료를 한 장 준다. 스웨덴에서 만난 한글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한글 자료까지 준비하고 있는 그들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낀다. 가이드 투어는 스웨덴어와 영어, 2가지로 진행됐고 나는 대부분의 동양인이 포함된 영어 그룹을 따라갔다.


우리의 가이드는 웬만한 남자보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여자였다. 뿔테 안경을 낀 단발머리의 그녀는 아마 수백 번도 더 반복했을 법한 숙련된 설명을 시작했다.

스웨덴의 건축가, 랑나르 웨스트베리(Ragnar Osterberg,1866~1945)의 설계로 1911년부터 1923년에 걸쳐 건축된 스톡홀름 시청사. 이 투어의 첫 출발점은 매년 12월 10일 노벨상 수상자들의 축하만찬이 열린다는 1층의 ‘블루홀’이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파란색은 보이지 않는다. 이름이 블루홀인 이유는 뭘까. 사연은 의외로 단순했다. 원래는 푸른 벽돌로 지으려고 계획했던 것을 설계자가 중간에 붉은 벽돌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영 효과에 반해버려 설계를 수정하게 되었는데, 첫 설계 때 이미 블루홀이라는 이름이 너무나도 유명해졌던 탓에 그 이름을 그냥 사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 결정을 했을 땐 100년 넘게 전해질 이야기가 되리라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결과는 언제나 스토리를 선사한다. 인생에서도 스토리를 원한다면 완벽을 멀리해야 할 듯하다.


블루홀에서 계단을 올라 더욱 깊숙한 내부로 들어가면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장인의 손길이 곳곳에 펼쳐지기 시작한다. 중세 이탈리아 왕궁의 양식을 따라 지은 만큼 복도와 천장, 계단 등 건축물 전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나 다름없다. 시청이란 장소의 관념이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다.


가이드가 이끄는 행렬을 따라가다 들어선 어느 붉은 방. 이곳은 스톡홀름 시 회의장이다. 19미터에 달하는 천장에는 바이킹의 배를 뒤집어 올려놓은 듯한 독특한 장식이 돋보이고, 중앙에는 2개의 커다란 샹들리에가 은은하게 빛을 비춘다. 창가에는 동양적인 문양의 벽을 타고 붉은 커튼이 길게 드리워져 있고, 중후한 원목과 붉은 가죽으로 장식된 가구들이 공간을 알차게 채우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한 전통적인 느낌의 회의장이 문화재가 아니라 바로 현재 사용 중인 공간이라니, 서울의 한 시민으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경복궁이 시청이라면 비슷한 느낌일까?


시의원은 101명이고 매 격주 월요일 저녁마다 바로 이곳에서 회의가 이루어진다. 회의장 위쪽 공간에 마련된 일반 방청석에는 약 200명 정도의 시민이 참석할 수 있다.


100개의 둥근 모양이 교차식으로 조각된 아치형 천장을 지나 들어선 ‘원형방’. 이 곳은 1600년대 말 프랑스 보베 지방에서 직물 한 고블랭직 카펫이 벽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지만 그다지 와 닿지는 않는다. 그보다도 더 귀를 솔깃하게 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이 방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 특별한 시민 결혼식이 거행된다고 한다. 30초 만에 끝나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스피드 결혼식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까지 이미 예약은 꽉 차 있단다. 외국인도 가능하다고 하니 괜히 혹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원형방을 지나자 빛이 부드럽게 들어오는 아름다운 복도가 나타났다. 시청사 건축 당시의 국왕은 오스카르 2세였는데 그의 막내아들, 유겐 나폴레온 니콜라스는 왕자이자 화가였다. 멜라렌 호수의 풍경을 사랑했던 왕자는 이 복도에서 보이는 창밖의 풍경을 그대로 반사시켜 창의 반대쪽 벽에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왕자의 한붓 한붓이 스며있는 이 곳은 그래서 이름도 ‘왕자의 방’이다. 실제로 창 밖을 내다보니 왕자의 마음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어마어마한 길이의 벽을 가득 채운 작품을 보고 있자니 왕자의 애정과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뿐만 아니라 창가 쪽 벽에는 거울에 달려있는 반쪽짜리 샹들리에가 눈길을 끈다. 반쪽 샹들리에가 거울에 비친 반쪽과 만나 온전한 하나로 보인다. 이 또한 이 방의 ‘반사’라는 컨셉에 맞게 장식된 것이다.


금박을 입힌 세 개의 샹들리에와 중국의 비단으로 장식된 ‘왕관방’을 지나면 마지막으로 시청 투어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황금의 방’이 나타난다. 이 공간은 700명을 수용하는 대연회장으로, 사면의 벽과 천장이 모두 황금색으로 덮여있다. 호화로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1,800만 개의 금박 모자이크 장식이 사방에서 번쩍이자 시끌시끌 사람들의 말이 많아진다. 한쪽 벽면 중앙에는 여성의 모습이 거대하게 모자이크 되어 있는데 멜라렌 호수의 여왕이라고 한다. 여왕의 미모가 참 개성적이라 자꾸만 웃음이 난다. 멜라렌 호수의 아름다움에도 못 미치는 듯하고, 스웨덴의 미녀 이미지와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여왕이나 여신의 외모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기도 그렇고, 꼭 미인이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가질 필요도 없지 않냐고 스스로 반성하고 있는데 가이드가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준다. 사실 당시에도 여왕의 미모에 대해서 여러모로 불만이 많았는데 이걸 도저히 다시 만들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내내 스웨덴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다는 후문. 아무리 그래도 예컨대 이탈리아였다면 바꾸지 않았을까? 블루홀에 블루 컬러가 없어도 이미 유명해져 버린 이름이라고 유지하는 것, 여왕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장식에 실패했어도 이미 다 만들었으니 유지하는 것. 유지하면서 내내 왜 그런지 설명하는 것. 이런 스타일 자체도 어쩌면 스웨덴 사람들의 특징인지도.


투어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유겐 왕자가 사랑했던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도 이곳이 좋아요, 하고 대답하고 싶다. 스톡홀름의 하늘은 어쩜 이리도 선명한 파란색일까. 스톡홀름의 구름은 어쩜 이리도 휘핑크림처럼 달콤해 보일까. 파스텔톤의 구시가지 풍경과 바다를 닮은 멜라렌 호수 그리고 여린 초록빛 숲과 나무들 또 청명한 공기와 바람...... 스톡홀름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도시다.

생애 첫 나 홀로 여행지가 스톡홀름이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한다. 뉴욕이나 파리, 런던이 아니어서 그런가. 이유를 생각해보면 비교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때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디로 여행 가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을 원했고, 내가 좋은 곳으로 선택했다. 가장 개인적인 욕구가 가장 특별한 여행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2년이 지난 지금, 결과적으로 그러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만의 것을 찾아야 한다고 가장 먼저 알려주었던 곳이 바로 스톡홀름이었다. 자기 것은 자기가 찾아야 한다고...... 나는 앞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다거나 남들이 추천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보다 내 마음속 가장 깊은 목소리가 조심스레 속삭인다는 이유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 길 위에 가장 아름답고 진실한 시간이 숨겨져 있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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