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 결과는 유예되었지만 나는 계속 나아갔다
비행기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지만
나에게 그 길은 같은 길이 아니었다.
익숙한 일상을 향한 낯선 출발이었다.
엄격한 입출국 심사를 받을 때마다 마치
‘당신은 새로운 삶을 살 자격이 있는가?’도 함께
심사받는 것 같았다.
마음 하나 달라진 것만으로 인생이 변할 수 있을까.
나조차도 자신이 없었다.
심사 결과는 유예되었지만
나는 계속 나아갔다.
마지막까지도 떠나지 않는
과거의 주인공들이 나를 가로막았다.
그런다고 달라질 게 있겠느냐는 의심,
현실이 그리 만만하냐는 협박,
하고 싶은 게 있다 해도
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
이 모든 것이
또 하나의 발버둥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허무가
난기류처럼 마음을 흔들었다.
하지만 난기류의 경보가 대체로 정상화 되듯
마음도 곧 순조로운 기류를 되찾았다.
나의 비행은 나라를 건너온 것이 아니라
나를 건너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또 다른 나에게
도착했다.
- 배주아 『프롬 스톡홀름』
작가 소개 ㅣ 원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 가능한지 스스로의 삶으로 테스트해보기로 결심,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마음먹은 것들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아름답다는 말을 믿고 싶어서 증거를 수집하러 다니는 걸 좋아합니다.그러기 위해 떠난 여행을 통해 자신을 찾고 동시에 버리는 연습을 하구요, 거리에서 사람과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찍습니다.
2017년 10월 첫 번째 에세이 『프롬 스톡홀름』을 출간했습니다. 사진은 인스타그램에서 나눕니다 @jua_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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