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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May 25. 2024

셔츠 맨 밑의 단추 하나,

풀어두느냐, 꿰어두는냐.

저는 셔츠를 즐겨입습니다.

이유라 하면, 입고 벗기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색도 여러 개로 장만해놓습니다.

날씨에 따라, 또는 제 기분에 따라 맞춰입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긴팔 셔츠를 입고, 해가 쨍한 날에는 반팔 하늘색 셔츠를 입고, 

날이 조금 선선한 날에는 반팔 분홍색 셔츠를 입습니다.

저는 홍조가 심한 편이라 조금의 더위에도 금방 방울토마토처럼 변하는데

그 때문에 학교 실습을 나가서도 학생들에게 "얼굴이 아직도 빨개요." 라는 식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더운 날에는 분홍색 셔츠를 피합니다.

색 때문에 유난히 더 제 얼굴이 붉어보이기 때문이죠.


그런 셔츠를 입을 때면 저만의 규칙이 있습니다.

첫 번째, 위의 단추 두 개를 풉니다.

두 번째, 맨 밑의 단추 하나를 풉니다.


첫 번째 같은 경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예 다 잠그는 경우는 격식을 차려야하는 자리가 아니면 드문 듯합니다.

그러나, 맨 밑 단추를 푼다는 것은 드문 것 같습니다.

일단 제 주변에는 그런 친구들이 없기 때문이죠.


셔츠의 맨 밑 단추를 푼 것은 그닥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불과 몇 개월 전, 올해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원래 셔츠나 티가 길면 바지 안에 꼭 넣어입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조금 빼죠.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배 나와보이네?"


아뿔싸, 주변을 크게 인식하며 살아가는 저에게는 좋은 소리는 아닙니다.

아무렇지 않다가 그 얘기를 들으니 거울 속 제 모습에 꼭 D를 하는 모양처럼 배가 나온 듯 보였습니다.


'아...빼입을까..'


넣어입는 것을 즐겼기에 대부분 셔츠가 슬림했는데 빼서 입으면 핏이 그리 예쁘지 않았기에,

나름 길면서도 빼입기에 예쁜 셔츠를 몇 개 장만했습니다.

그게 올해입니다.


그렇게 빼서 입기 시작했고,

셔츠가 길기 때문에 단추의 개수도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위에 단추 두 개 풀고 그 밑으로 존재하는 모든 단추는 꿰었습니다.

거울을 가만 들여다보니 답답해보이더군요.

슬쩍 맨 밑 단추를 하나 풀었습니다.

아, 이제서야 자연스럽고 편안했습니다.


알 수 없었습니다.

넣어입을 때는 그닥 신경쓰이지 않던 맨 밑 단추가,

이제는 매우 신경쓰였다는 것과

맨 밑 단추를 하나 풀었을 뿐인데 그 신경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며,

더 해석해보자면, 인간미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왜 인간미냐구요?

모든 단추를 다 꿰었을 때 매우 지적이고, 딱딱해보입니다.

맨 위 단추를 풀었을 때는 자연스러워보이죠.

그 밑 단추를 하나 더 풀면 부드럽고, 편안해보입니다.

그런데 맨 밑 단추를 푼다?

사실상 하나 못 꿰고 놓친 것처럼 보이면서도, 자연스러움과 부드러움을 극대화시키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셔츠이든, 저는 공식적이거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가 아닌 이상

맨 밑 단추를 푸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한 가지 더,

미완의 느낌이 나기 때문입니다.

미완에 관련해서는 추후 새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분들이 보기에는 깔끔하지 못해 보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가요?

그게 중요한 걸까요?

사실상 맨 밑 단추를 푼다해서 깔끔하지 못하다고 단정짓는 사람은 드뭅니다.


저는 제 미완의 느낌에 대해 만족하고, 오히려 저라는 사람이 '편안한 사람이구나' 

하고 느끼게 해줄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특별한 이유가 생기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맨 밑 단추는 풀어두려고 합니다.

아마 예외를 제외하고 꿰어두는 날이 오게 된다면,

제게 심적인 변화가 생기는 날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여러분도, 통상적인 룰이나 틀에 대해 따를 필요없이 여러분이 원하는데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상

자신을 풀어놓을 수 있는 규칙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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