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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mco Sep 27. 2018

야경이 멋진 서울을 보고 싶다

알록달록 조명에 대한 단상

 서두를 일이 없거나 마음에 여유가 있는 날에는 자주 오가는 길도 새롭게 보일 때가 있다. 주로 퇴근길인 경우가 많은데 버스 시간이 안 맞아 역까지 걸어갈 때나 3호선 압구정역과 옥수역을 잇는 동호대교를 건널 때 창 밖의 풍경이 그렇다. 그때 음악까지 들으면 감성 돋는 퇴근길이 된다. 그렇게 회사 밖 세상 구경에 재미가 들 때쯤 유독 시선과 분위기를 잡아끄는 것들이 있다.

이 사진은 의도와 다르게 멋스럽게 나왔다

나는 내게 익숙한 낮의 다리, 분수, 건축물들이 밤에 무지개 조명으로 비추고 있으면 현자 타임이 온다. 서울을 조금만 돌아다녀보면 이런  조명들이 은근히 정말 많다. 그때마다 속으로 소리친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아 다오. 그냥 백색이나 노란색으로 통일하면 되잖아..'


나만 너무 예민한 걸까. 어쩌면 설문 조사에서 시민들 상당수가 알록달록한 조명이 이쁘다고 응답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작정 비난하기보다 알록달록 조명이 싫은 이유가 뭔지 생각해봤다.


1. 하나의 오브제에 무지개색이 균등하게 들어가 있는 것은 자연과 가장  인공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변에 어느 것과도 어울리지 못하는 돌연변이 같다.


2. 난잡한 조명이 건축물이나 구조물이 가진 고유의 특징을 모두 희석시킨다. 과장과 왜곡 없이도 형태적 특징을 드러내면서 눈에 띌 수 있는 조명 방식이 얼마든지 있다.


3. 한국적인 조명이 어떤 것일까 고민해보면 알록달록한 무지개 조명은 결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한옥의 단청, 한복, 비빔밥 그리고 무지개떡 때문에 조명마저 무지갯빛으로 알록달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4. 조명 색깔이 보라색, 초록색, 노란색으로 시시각각 변하니 기억에 남질 않는다. 사람들에게 건축물이나 구조물이 특정 장소의 상징적인 오브제(랜드마크)로 인식되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텐데, 사람들 기억 속에 단편적인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건 아닐까.


그러면 왜 알록달록 무지개 조명을 택한 걸까?

클라이언트의 마케팅 및 디자인 소양 부족 때문이라고 강하게 말하고 싶지만 여러 물질적 제도적 제약도 없지는 않았을 거다. 주변보다 그리고 옆 건물보다 화려한 조명색으로 당장의 시선과 관광객을 잡아끌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려하고 자극적인 속성은 일시적일 뿐 언젠가 더 화려한 대상에게 묻힐 수밖에 없는 치킨 게임 같다. 알록달록 화려한 조명쇼 외에 그닥 기억되는 게 없으니 장기적인 브랜딩 측면에서도 얻는 게 없다.

해외여행이 완전히 대중화되었고 여러 매체들로부터 다양하고 성숙한 디자인을 접할 수 있으니, 이제는 좀 서울 야경이 달라져야 할 때지 않을까.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조명이나 건축 도시 분야의 종사자가 아니어서 글쓰기 조심스러우면서도, 나 같은 일반인들의 목소리들이 모여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적어본다.


 도시 계획의 일환으로 서울은 철저히 계획된 야경을 가질 수 있다. 낮과 다르게 밤에는 도시의 가리고 싶은 곳과 보여주고 싶은 곳을 구분해서 보여줄 수 있다. 난 서울이 상하이나 라스베이거스보다는 부다페스트, 포르투, 세비야 같은 야경을 닮았으면 한다. 물론 내가 반한 도시들은 상업지구보다는 보존 및 관광지구에 가깝기 때문에 차이가 있지만 그들만의 옐로우톤 조명으로 은은하게 비추는 도시 야경이 너무 좋았다.

서울도 모든 조형물과 건물들에 알록달록 색을 입히는 게 아니라 가리고 싶은 곳은 백색이나 노란색으로 통일하고 구역마다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조명 포인트들만 다른 색상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로 초기 디자인 과정에 조명 디자이너가 합류하여 야간에 어떻게 보여질지에 대한 디테일한 고민이 들어가야 한다. 지금 초기 디자인에서는 적당히 CG로 야간 투시도를 그려보는 선에 그치지 않나 싶다. 구조물이나 건축물의 전 생애주기로 봤을 때 절반은 밤에 보여지는데 열심히 형태와 재료에 쏟은 노력들이 아깝다.

업계 구조상의 문제로 디자인 주체가 외관 / 실내 / 조명 등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맡은 것만 하자없이 잘하고 넘기면 돼~ 식으로 흘러가기 쉬운 것도 개선해야 할 과제다. 완성되어버린 오브제에 마지막 보정 효과 정도로 생각되는 조명이 아니라 구조물이나 건축물 형태와 기능의 독창성을 어두운 밤에도 오래오래 드러내 주는 조명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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