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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Jan 13. 2021

읽지 못한 편지에게







잊히고 싶지 않아. 영원히 잊히지 않으려면 죽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어. 아 그 죽은 애, 하면서 기억에 남을 테니까. 다시 보지 못할 그 사람, 하면서 그리움으로 남을 테니까. 사라짐으로써 실존을 선택하는 거지. 하지만 내가 죽어서 죄책감에 시달릴 A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어. 그러다 A가 따라 죽을까 봐 두려웠어. 지옥에 가는 건 나만으로 충분했어.


진실이 시퍼렇게 웃네. A는 죽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있어. 내가 죽지 않는 건 A 때문이 아니라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욕망 때문이라고,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안다고 말하고 있어. 진실의 조롱은 점점 날카로워져서 이젠 아플 지경이야.


멀어질수록 달은 더 밝은 빛을 내밀어. 메밀밭. 메밀밭을 찾아야 해. 희게 빛나는 진심을 찾아야 해. 진실 말고 진심. 지금 필요한 건 실재가 아니라 본질이야. 잊히지 않기 위해 망각해야 할 것이 있어. 사랑받아 마땅하다는 충만함. 비난당해도 싸다는 자멸감. 더 이상 웃지 않는 A의 입가. 그걸 바라보는 내 눈동자.


다신 보지 말자,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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