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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호 Jul 25. 2022

우당탕탕 라테

#처음 #시도 #새로움

원체 음식을 조합해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서로 다른 요소가 어우러져 혼자선 내지 못하는 맛을 만들어내서다. 커피를 마실 때에도 조합 본능이 어김없이 발동한다.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커피 머신의 전원을 켰다. 보통 머신으로 내린 에스프레소와 두유를 1:2 비율로 섞는다. 오전부터 영상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에는 얼음을 더하는 정도다.


처음에는 우유를 섞은 카페라테를 마셨다. 이따금 속에서 탈이 났지만 라테의 부드러움을 포기할  없었다. 그러다 일본 오사카에서 ’ 만났다. 오사카 일정의 마지막 날이었다. 시원하게 통창이  스타벅스에 들렀다. 관객의 입장에서 창밖으로 펼쳐진 도시의 분주함을 보면서 한적함을 만끽하고 싶었다. 어차피 다음 날이면 나도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부대 복귀  군인 마음이랄까. 


하지만 풍경 대신 텀블러 모양의 카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주문하려고 줄을 서 있는데, 다른 손님의 테이블 위에 놓인 텀블러 카드를 본 거다. 카드에는 소이 밀크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두, 유라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우유 대신에 두유로 만들어주는 라테인 모양이었다. 잠시 새로움과 익숙함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낯선 곳이니까 한 번쯤 낯선 걸 해보기로 했다. “소이 라테 구다사이.” 이내 점원이 내미는 소이 밀크 카드를 받았다. 처음 맛본 소이 라테는 쌉싸름하면서 고소했다. 기대 이상이었다. 아마 그때 시도해보지 않았으면 아직도 장을 쥐어짜내면서 라테를 마시고 있겠지.


사무실 냉장고를 열었다. 혀로 입술을 핥으면서. 냉장고 안을 보는데 두유가 없었다. 황성주 박사 두유는 물론이고, 귀리 우유도 소화가  되는 우유도. 미련이 남아서 쭈그리고 앉은  냉장고  깊숙한 데까지 들여다봤다. 하지만 없는  갑자기 생길 리가 없었다. , 나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손에서 냉장고 문을 놓아주는데 구석에서 ’파랑이’가 반짝였다. 동기 녀석이 아침마다 보약처럼 마시는 것이다. 나는 식욕을 돋우기는커녕 감퇴시키는 파란색 패키지 탓에 번번이 외면했었다. 한 번은 ‘풍부한 식물성 단백질’이라는 문구를 보고 먹어 봤다. 요즈음 부쩍 몸에 좋다면 사족을 못 쓴다. 하지만 비린 맛 탓에 두 번 다시 집어들진 않았다. 그때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동료가 말했다. “아몬드 우유 드시게요?”


에스프레소 캡슐을 머신 홈에 꽂고 뚜껑을 닫았다. 에스프레소 추출을 알리는 기계음이 사무실을 그득 찼다. 에스프레소는 360밀리리터 종이컵의 반의 반도 채우지 못했다. 나는 마트에서 시음을 하듯 에스프레소를 홀짝였다. 이내 미간을 찌푸리고 냉장고 문을 다시 열었다. 빈속에 에스프레소를 마시니 속이 쓰리기도 했고, 아쉬운 대로 아몬드 우유라도 넣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에스프레소가 담긴 컵을 기울여 아몬드 우유를 졸졸 따랐다. 에스프레소의 얇은 거품 층이  번에 사라지지 않게. 아몬드 라테를  모금 마셨다. 고개를 갸웃했다. 아몬드유의 비린 맛이 날까  걱정한  기우였다. 에스프레소의 강한 맛이 비린 맛을 잡아준 것이다. 라테에 기대하는 부드러움은 그대로 재현됐다. 두유나 귀리 우유에 비해 꾸덕꾸덕하지 않아 외려 깔끔했다. 그런데 아무리  안에서 커피를 동글려도 아몬드 맛을 느낄  었다. 마치 솜씨 좋은 요리사가 아몬드를 슬쩍 감춘  같았다. 금세 종이컵 바닥이 드러났다. 오늘 라테도 아침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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