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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호 Jul 29. 2022

파스타는 처음이라서

#처음 #요리 #실수 #인생

프라이팬을 위아래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면서 찬밥을 볶는 일에 이력이 붙어  때쯤 파스타로 눈을 돌렸다. 성탄절이 보름 앞으로 다가온 때였.  손잡이를  쥐면 팔뚝의 핏줄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허공에 폭죽처럼 터지는 찬밥 알갱이가 마뜩지 않았던 것이다. 찬밥과 연말은  어울리지 않는  쌍이었다.


우리  주방 찬장에 이국에서  건너온 파스타가 있을 리가 없었다. 국수라면 모를까. 대학 시절에도 정문  쏘렌토를 스쳐 지나가기 일쑤였지만,  블록 떨어진 은성 칼국수에는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칼국수는 항상 붙어 다니는 시커먼 놈들과도 아무런 사이가 아닌 여자와도 먹을  있었다. 파스타는 그렇지 않아서 유감이었다. 쏘렌토 건물에는 산토리니를 연상시키는 순백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앞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어떤 결심을 했는데 졸업할 때까지 끝끝내 뜻했던 바를 이루지 못했다.


하는  없이 에코 백을 들고 마트에 갔다.  코너에는 코발트빛을 빼닮은 패키지의 파스타가 진열되어 있었다. 마치 파란색 책등의 론리플래닛만이 가득히 꽂혀 있는  았다. 일순간 아찔했다. 모두 바릴라 제품이었다. 선택할 수고를 들이지 아도  좋았다. 패키지에는 큼지막하게 LINGUINE라고 쓰여 있었다. 한편으로 죄다 알파벳이어서 신뢰도가  계단쯤 올라갔다. 아무래도 이태리 음식이니까 본토에서 수입한  나을  같았다.


모든 파스타의 기본은 알리오 올리오다. 이태리어로 알리오는 마늘, 올리오는 올리브유를 뜻한다.  정직한 이름이다. 파스타는 처음이니까 기본부터 익히기로 했다. 뭐든지 기본기를 단단히 닦아야 응용도   있는 법이니까. 요리 유튜브에서는 냄비에 , , 소금을 100:10:1 비율로 넣으라고 했는데 막상  앞에 서자 머릿속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되어 버렸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 실제가 아닌 이상이 적혀 있었던  같다. 너도 나도 그대로 하지 않았고 선생님조차 그대로 하는 아이를 보면 놀라곤 했다.  그랬듯이 제멋대로 물은 냄비의 칠부 능선만큼, 면은 500 동전 크기보다 조금 많이, 소금은 대강 집어서 서너  뿌렸다.


파스타 갑을 큐브를 맞추듯 이리저리 돌려봤다. LINGUINE 밑에 그보다 작게 9 MINUTES라고 적혀 있었다. 핸드폰 타이머를 8분으로 설정했다. 펄펄 끓은 물에서 익힌 면을 프라이팬에서    볶을 것이어서 1분을 남겨. 한쪽에서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마늘을 볶았다. 아무리 마늘 파스타이지만 마늘만으로는 심심해 보였다. 냉장고에서 등심을 꺼냈다. 된장찌개를 끓일  넣으려고 남겨 놓은 것이었다. 자고로 음식에는 남의 살이 들어가야 맛이 산다.


그때 알람이 울렸다. 냄비 물에서 면을 꺼내 프라이팬에 올렸다. 이제부터 면에 소스를 붙이는 과정이다. 진간장  숟가락을 골고루 뿌렸다. 왠지 이국의 파스타에서 익숙한 맛이   같았다. 새로운  시도할 때에는 낯섦과 익숙함 어름이 불안함을 덜어준다. 1~2  불을 껐다. 이제 시식할 시간. 포크로 면을 돌돌 감아서 입에 넣었다. 순백의 쏘렌토 코발트빛 지중해 떠올리면서. , 파스타를 대여섯  씹어도 목으로 넘기기 어려웠다. 계속 씹다가는 턱이 빠질  같았다.


아무래도 조리 시간이 문제인  같았다. 파스타 갑의 알파벳을     다시 읽었다. “AL DENTE” PERFECTION IN 9 MINUTES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모르는 단어는 큰따옴표 안의  덴테뿐이었다. 큰따옴표로 표시했다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일 터. 해답도  안에 숨어 겠지. 재빨리 핸드폰으로 검색을 했다. 아뿔싸,  덴테는 치아에 면이  정도로  익은 상태를 말했다. 팬에서 익히는 시간을 감안해 냄비에서 완전히 익히지 않는 것이다. 바보 아서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  덴테 9분이라고 하면 냄비에서 9분간 면을 삶고 팬에서 2~3분간  익히라는 뜻이다.  12분간 익혀야 하는데 나는 10분도 안되어 불에서 내린 것이다.


알리오 올리오를 실패하고   시간이 지난 뒤에  파스타에 대해 공부했다. 토마토 파스타와 크림 파스타를 조금 능숙하게 만들 때쯤이었다. 파스타가 이태리어로 반죽으로,  요리를 통칭한다는 것과  파스타와 리본 파스타, 쇼트 파스타로 나뉜다는  알게 됐다. 특히 파스타의 동의어로 알고 있었던 스파게티가  파스타의 일종이라는 사실에 흠칫 놀랐다. 적어도 내게는 지동설을 처음 듣게  조상들의 심정이 되어 버린 것이다. 파스타 패키지 적힌 LINGUINE 비밀도 풀렸다.  파스타에서 스파게티, 부카티니 다음으로 굵은 면이 링귀니였던 것이다. 그제야 턱이 아플 정도로 면이 익지 않았던 의문이 완전히 해소됐다. 자욱한 안개가 말끔히 걷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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