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부재 #집
확실히 두 눈으로 직접 봐야 바투 와닿는 게 있다. 회화나 조각이나 전시작품처럼. 실물을 영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하는 것이다. 재산세 고지서가 날아왔다. 그전까지 주민세 고지서를 여러 번 받았지만 재산세는 처음이었다. 한 달 전 취득세를 분할 납부했을 때에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저 높은 취득세에 입이 절로 벌어지고 몸에서 힘이 빠졌을 뿐이다. 그랬다가 노르스름한 실물 고지서를 우편으로 받아본 후에야 아파트 소유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몇 해 전 여름이었다. 뭐든지 서울보다 늦는 대전에도 부동산 투자 열풍이 불었다. 아파트 청약 당첨이 곧 로또 당첨으로 여겨졌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앞다퉈 아파트 청약 신청을 했다. 아직 삽도 뜨지 않은 아파트에는 금세 웃돈이 붙었다. 사람들은 아직 손에 쥔 게 없는 당첨자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면서 자신의 손에 쥐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그땐 회사에서 청약 신청을 했냐고 묻는 게 출근 인사일 정도였다.
“아파트 청약 신청했어요?”
“아니요, 오늘 어디 분양하는 데 있어요?”
아마도 같은 부서 동료 분이 이렇게 물었고 방학 숙제를 해치우듯 뒤늦게 청약 신청을 했으리라. 당시 나는 주식은 물론이고 부동산 투자에도 문외한이었다. 엄마가 첫 월급을 탄 내게 가르쳐준 건 급여의 반을 뚝 떼어 적금을 붓는 것이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벽돌을 쌓듯 적금을 부으면 언젠가 바벨탑처럼 하늘에 닿을 줄 알았다. 순진한 착각이었다. 전염병이 창궐하여 온 세상이 비정상으로 돌아가는 때에 정상이라고 굳세게 믿은 삶이 부정당하는 것만 같았다.
사실 당첨 확률이 낮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오래전 얼떨결에 만든 청약 통장이 전부였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녀가 없었으며 부양가족이 없었다. 게다가 무주택 기간도 짧았다. 달랑 입장권만 가지고 놀이동산에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별 기대가 없었기에 발표일도 청약 신청을 하라고 알려준 직원 분에게 듣고 나서야 알았다. 친구 따라 강남 가면 꼭 따라나선 사람이 되지 않나. 그렇게 나만 아파트 분양에 당첨이 됐다. 뜻밖의 일이라 얼떨떨하면서도 싫지 않았다.
문제는 중도금과 잔금 납부였다. 서울이 아니라서 분양가가 그리 높지 않을 줄 알았다. 이 또한 순진한 착각이었다. 전국 아파트 값이 다 오르는 판국에 대전만 예외일 리가 없었다. 보통 기혼이거나 결혼 예정인 사람들은 둘이 함께 대출금을 갚는다고 했다. 나에게는 법적인 배우자도 예비 신부도 없었기에 혼자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수밖에 없었다. 월급의 70% 이상을 적금에 붓기 시작했다. 아파트가 박씨를 물어다 준 까치처럼 짝꿍을 내 곁에 데려오지 않을까, 순진한 기대를 하면서.
어느덧 '새집 나들이 날'이 왔다. 건설사에서는 하자 점검일을 이렇게 불렀다. 마치 국립국어원에서 다듬은 말 같았다. 새집에 처음 가는 날이니까 나들이라는 낱말이 과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하자가 없는 집주인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어련히 잘 지었으리라고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벽지와 바닥에 흠이 있고 거실 등이 들어오지 않는 건 눈감아도 될 만큼 사소한 일이었다. 화장실에서는 양변기 레버를 내리면 바닥에 물이 샜다. 변기를 통째로 갈아야 했다. 하자 점검은 시작에 불과했다. 중문, 줄눈, 탄성코트에 취득세, 인지세, 등기까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입주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무렵에도 내 바람과 달리 나는 여자 없는 남자였다.
아파트 입주 첫날부터 관리사무소에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대부분 둘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남녀들인 것 같았다. 그들에게서 오랫동안 바라던 소망이 이뤄진 사람들 특유의 설렘이 묻어났다. 그날이 부부들에게 샴페인을 터뜨리는 새로운 기념일이 될 것을 나는 직감하고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계약서와 입주증 따위에 사인을 하고 도장을 찍었다. 건설사 직원은 잔금이 입급된 걸 확인하고 열쇠 꾸러미를 건넸다. 입주를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무슨 일인지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저 회사일을 하듯 해야 할 일을 했다는 기분이었다. 그때 전화벨이 연달아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현관 앞에는 중문을 설치하고 화장실 바닥에 줄눈 작업을 해주실 사장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집 나들이 즈음 나는 아파트 입주 여부를 결정했다. 더이상 늦출 수 없었다. 어영부영하다가 세입자를 들이지 못하면 골치만 썩일 게 틀림없었다. 부동산 중개업소 몇 군데에 전화를 돌렸다. 생애 첫 집을 세로 내놓았다. 어떤 특별한 감정이 들진 않았다. 그저 텅 빈 우주에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혼자 살기에 넓었다. 무엇보다 썰렁할 것 같았다. 퇴근하고 불이 꺼진 집에 들어가고 복도를 지나면서 빈 방을 볼 때마다 부재를 실감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소유의 기쁨이었을 일이 나에게는 부재의 슬픔을 일깨워 준 것이다. 그래도 2년 후에는 세입자 분께 내가 들어가서 산다고 말할 수 있겠지······. 또다시 순진한 소망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