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기스 플랜>을 보고 쓰다
영화는 뉴욕 거리를 힘차게 걸어가는 매기(그레타 거윅)를 따라가며 시작된다. 빠른 걸음걸이에 이어 공원에서 만난 친구(빌 헤이더)와 주고받는 핑퐁 같은 대화,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선언. "나, 아기를 가져야겠어."
그러니까 첫 번째 '매기스 플랜'은 남편 없는 출산과 육아다. 6개월 이상 관계를 지속할 자신도 없고,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찾기도 어려울 것 같고, 대학의 카운슬러라는 직업과 그만큼의 경제력도 갖춘 매기는, 거침없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나간다. 수학을 전공한 대학 동창 가이(트래비스 핌멜)에게 정자 샘플을 받아내고 임신 시도까지 했지만, 계획은 엉뚱하게도 같은 대학의 방문 교수인 존(에단 호크)를 통해 실현된다. 임신을 시도하던 날 밤, 매기의 집으로 찾아온 존과 사랑을 나누게 된 것이다. 잘 나가는 교수인 아내 조젯(줄리안 무어)의 뒤치다꺼리에 지쳐있던 존은, 자신의 꿈이자 이상인 소설에 열광적으로 반응해주는 매기에게 빠져들어 조젯과 헤어진다. 그렇게 매기와 존, 조젯-존 부부의 아이들, 그리고 매기가 낳은 딸 릴리가 함께 살게 된다.
두 번째 '매기스 플랜'은 그로부터 2년 후 시작된다. 존과의 결혼 생활은 매기를 점점 지치게 만든다. 집필에 빠져있는 존을 대신해 도맡아 하는 세 아이 육아와 가사노동, 도통 완성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존의 소설, 전처의 고민을 들어주느라 중요한 미팅도 미루는 존의 모습. 그러던 와중에 만나게 된 조젯은 마녀 같았던 존의 묘사와 달리 매력 있고 자신감 넘치는 멋진 여성이다. 그래서 매기는 남편과 전처를 다시 이어주겠다는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그냥 존과 헤어지면 되지 뭘 그렇게까지 남의 인생에 개입하나 싶기도 하지만, 러닝타임 내내 표현되는 매기의 대책 없는 선량함을 생각하면 납득이 되기도 한다. 이러나저러나, 두 번째 계획도 매기의 생각처럼 흘러가지는 않으니 마냥 매기의 행동을 욕할 수도 없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답답하고 짜증 나고 어이없을 법한 내용인데도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게 해 준 힘은, 매기가 보여주는 명쾌함과 낙관성이다. 영화 시작부터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낳고 키우겠다는 중대한 문제를 단호하게 결정하고 추진해나가는 매기의 모습은 불안하면서도 왠지 모를 믿음을 준다. 그리고 그 믿음은 배반당하는 일이 없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계획에 우왕좌왕하고 때로는 힘겨워하면서도 매기는 계속해서 나아간다. 계획을 수정하더라도 주저앉아 체념하는 일은 없다. 완성되지 않는 소설이든 바바리안 피클이든, 지금보다 나아질 방법은 찾으면 된다. 그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야말로 'que sera sera'.
그리고 이런 태도는 삶을 살아가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계획을 세운다. 초등학교 방학 때 그리던 생활계획표부터 시작해서 학생은 공부 계획, 직장인은 신년 계획, 회사는 중장기 계획, 나이 들어서는 노후 계획 등등. 계획을 세울 때의 마음만큼은 칸트 저리 가라지만 세상만사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3월이 되면 다이어리는 깨끗해지고, 헬스장은 텅텅 비는 게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늘 그렇듯 계획은 나몰라라 살고 있는 나를 문득 발견했을 때, 자책하기보다는 매기를 떠올려보면 좋을 것 같다. 명쾌하고 낙관적으로, 지금까지 잘 쉬었으니 내일부터 다시 시작해볼까, 뭐 이런 마음. 이건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보다는 '어떻게든 (하면) 되겠지'라는 식의 낙관이다. 'que sera sera'의 진짜 뜻도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