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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니 Aug 13. 2019

당신의 학창시절은 무사한가요

책 [다행히 졸업]을 읽고 쓰다



'학창시절'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의 대부분은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이다. 초등학교 시절은 파편처럼 조금씩만 기억나고, 중학교 시절은 지금의 나와 다른 생물(인간 말고 생물)이었던 것 같고, 대학교 시절은 왠지 '학창시절'에 포함시킬 수 있는 시간이 아닌 것 같고. 사실 다른 이유를 댈 것도 없이, 3년을 아침 7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 보낸 곳이니 당연한 결과일 테다. 스무 살이 넘어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끔 각자의 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하곤 했는데, 대부분이 그때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했고 나는 그게 신기했다. 나는 다시 하라고 해도 괜찮을 만큼 고등학교 시절이 좋았으니까.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친구들도 돌아가기 싫다고 했는데, 내가 이상한 건가.


어쩌면 내 고등학교 생활엔 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그 시절을 좋게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내가 들인 노력에 비해 모든 게 쉽게 풀렸다. 별달리 애쓰지 않아도 주변에 친구들이 많았고, 딱히 모범생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선생님들한테도 예쁨 받았고, 성적 스트레스도 없어서 모의고사 날은 빨리 끝난다는 사실에 행복하기만 했다. 사실 그 시절엔 세상이 끝난 것처럼 힘들었던 사건이 있기야 했지만, 그건 그냥... 10대의 순수함 같은 거라고 해두자. 여하튼, 평범한 한국 인문계 고등학생의 원앤온리 목표인 대학생이 되어서도 몇 번씩이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만큼 그때가 좋았다. 혹시 그때가 내 인생의 리즈 시절이었던 걸까...? 뭐야 내 리즈 돌려줘요..


이렇듯 평탄하고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내서일까. 온갖 좌절과, 절망과, 불안과, 비겁으로 가득한 [다행히 졸업]의 주인공들에게 마음 깊이 '공감'할 수는 없었다. 공감이 이해의 필요조건은 아님을 알면서도, 그게 자꾸만 미안했다. 내 학창시절에도 분명 이런 아이들이 있었을 테니까. 내가 친구들과 놀려고 점심시간만을 기다릴 때, 누군가는 철저히 혼자가 되는 그 점심시간이 오지 않기만을 빌었을 것 같아서. 나는 큰 관심도 없었던 모의고사 등수에, 누군가는 좌절하고 또 좌절했을 것만 같아서. 혼자인 시간이 길어지며 느릿하던 밥 먹는 속도가 빨라지고, 평범한 머리로 명문고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 시절은 내가 내 삶을 사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날들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고. 친구가 없으면 못난 인간이라고, 공부를 못하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라서.


우리나라의 10대들이 조금 더 무사한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참 좋을 때다"같은 소리나 하는 꼰대로 보이고 싶지는 않지만, 10대라는 나이에만, 학교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만 느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 나이가 영원할 것 같고 성인이 된 나를 상상할 수 없기에 가능한, 겁 많은 어른들의 눈에는 한심하고 철없어 보이는 생각과 행동들. 그것들을 전부 가두고 살기엔 학창시절이 너무 아까우니까.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졸업할 수 있다면,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덧) '10대라는 나이에만 느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데에는 당연히 학교 밖의 10대들도 포함. '학교 연대기'라는 책의 특성상 학교 안의 이야기만 하게 됐지만, 제도권 밖의 청소년들에게도 더 나은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덧2) 좋았던 단편을 꼽아보자면 <얼굴 없는 딸들>(우다영), <육교 위의 하트>(정세랑), <비겁의 발견>(전혜진), <11월 3일은 학생의 날입니다>(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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